인터뷰

“스스로 세상을 녹화하는 카메라라고 여깁니다”- 무라타 사야카

2025.09.15

“스스로 세상을 녹화하는 카메라라고 여깁니다”- 무라타 사야카

교우 관계, 취업, 연애, 결혼, 출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의 과업에 천진난만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반기를 드는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자신의 사소한 질문에서 무서운 기세로 자가 증식한 이야기가 모두를 인식의 저편으로 데려가는 광경을 그가 즐거이 응시한다.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Murata Sayaka)에게 마감 일정상 일주일의 답변 기한을 내걸며 질문 20개를 건네는 일은 다소 미안했다. 최근 그녀의 인스타그램(@sayaka_murata_)에 올라온 소식에 따르면 그녀는 원인 불명의 위장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고, 코로나19에 걸려 로마에서 열리는 문학 축제에도 불참한 차였다(그는 팬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싱그러운 장미 사진을 업로드하며 “따뜻한 메시지 고맙다. 상황은 좋아질 거다”라고 안부를 전했다).

그러나 반드시 무라타 사야카여야 했다.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편의점 인간>(2016)을 발표한 후 그는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편의점 인간>은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소멸세계>(2017), <살인출산>(2018), <멀리 갈 수 있는 배>(2018), 무라타 사야카의 첫 에세이 <아 난 이런 어른이 될 운명이었던가>(2020),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2020), <무성 교실>(2022), <지구별 인간>(2022), <신앙>(2024) 등 국내 출판사에서도 그의 책을 경쟁적으로 번역했다. 팬데믹 시기였던 2022년에는 무라타 사야카와 정세랑을 비롯해 총 9명의 젊은 아시아 작가가 합작한 앤솔로지 작업인 <절연>이 국내 출간됐다. 놀라운 것은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번역되는 속도만큼 빨리 무라타 사야카가 정상과 상식, 규범에 대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현대인의 마음을 휘어잡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라타 사야카 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시라하 씨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체되고 있을 뿐, 줄곧 같은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편의점 인간) “착취당하고 있잖아. 그렇게 몸속에서 자라난 사랑이라는 감정과 성욕에 휘둘려서 엄청난 돈을 쓰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음모 아닐까?”(소멸세계) “내 자궁은 이 공장의 부품이며, 마찬가지로 부품인 누군가의 정소와 연결되어 아이를 제조할 것이다. 암컷과 수컷은 공장의 부품을 몸 안에 감춘 채 너 나 할 것 없이 둥지에서 꿈틀거린다.”(지구별 인간)

가정 폭력, 성폭력, 근친상간, 따돌림, 살인 등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만 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그의 소설 속에 끈질기게 등장하지만, 나는 그 안에 내재된 무라타 사야카라는 현대인의 고뇌와 그의 이야기에 수많은 독자가 호응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갔다. 그리고 궁금했다. 정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디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을지, 과연 무라타 사야카는 소설을 통해 그 답을 찾았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도쿄에서 진행된 <보그> 촬영에 응해주었고, 기한 안에 답변을 보내왔다.

인스타그램에서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려했습니다. 지금은 회복되었나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기증과 구토로 완전히 드러눕고 말았는데요. 다행히 조금씩 몸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매우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집필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어요.

맞아요. 다만 요즘은 정오쯤 외출해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일하곤 합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다른 카페로 이동하고, 피곤하면 약간 산책을 즐긴 뒤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일을 이어가죠. 카페 두 곳과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세 곳의 장소에서 일할 수 있는 날에는 꽤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어요. 요즘은 느긋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편을 쓰는 중이죠.

어떤 식으로 쓰나요? 구상 단계에서 단편과 장편을 구분하는 확고한 기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등장인물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요. 그리고 등장인물이 생활하는 방 구조나 그 지역의 지도를 그리죠. 그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후에는 이야기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걸 구체화하기 위해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장편소설을 쓰다가 일본 문예지 등의 의뢰를 받으면 단편 작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그동안 쓰던 장편 작업은 중단하는데 그럴 땐 머릿속이 리셋되는 기분이에요. 이야기를 구상하는 순서는 장편과 단편 모두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단편은 장편보다 훨씬 더 모험하기 좋은 환경으로 느껴집니다. 화자를 인간이 아닌 커튼으로 설정한다든지, 여태껏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는 도전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과정에서 장편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독자에게도 단편은 매력적으로 느껴질 듯싶어요. 작가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고, 단편이라서 가능한 세계와 표현 방식을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은행나무출판사를 통해 한국에 출판된 당신의 소설은 셜리 잭슨상에 노미네이트된 <신앙>입니다. 사이비 종교와 복제 인간 등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것들에 대한 6편의 단편과 2편의 에세이를 실었죠. 책에 수록된 ‘마지막 전시회’의 이야기에 빗대어, 인류가 멸망한 후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에게 당신의 책을 딱 한 권 소개할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남기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대상이 우주인이라면 지구의 현재 모습과 일본 문화를 담고 있는 소설이면 좋을 것 같군요. 최근 집필한 <세계 99>는 평행 우주를 다루긴 하지만, 현실 세계를 응축한 느낌이 있기에 만약 우주인이 그걸 읽어준다면 다수의 인류가 생존하던 시기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상상만 해도 재밌군요.

대표작 <편의점 인간>을 통해 당신의 작품 세계에 입문한 독자가 많을 거라 예상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가장 고맙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저를 또 다른 언어의 세계로 데려다주었다는 사실이죠. 이후 해외 문학 축제나 서점에서 저와 다른 언어를 쓰는 작가나 번역가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그 경험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제가 지닌 아주 독특하면서도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에 자각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스로 세상을 녹화하는 카메라라고 여기는데요. 그 카메라 기능이 조금 더 업그레이드되어 그동안 보지 못한 장면까지 확장해서 비추게 된 것처럼 느껴져요. 그로부터 얻은 새로운 영감을 무척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3년 전 개최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죠. 한국 독자나 출판계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반응이나 이야기가 있나요?

페스티벌 참여차 한국을 방문해 많은 분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최근 한국의 어느 젊은 독자가 정말 많은 한국 사람이 <지구별 인간>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해주셨는데 이유를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소통이 안 됐나 싶었지만, 그래도 기뻤어요.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그 이유를 듣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내향적인 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만남의 기회에서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다고 고백합니다. 잊지 못할 만남의 기억이 있다면요?

2019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스튜디오 크레올(Studio Créole)’에 참가할 때였어요. 여러 작가를 만나 ‘모국어로 쓴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케냐 출신 응구기 와 티옹오 씨의 키쿠유어 낭독이 마지막에 노래로 전환된 순간의 전율을 잊을 수 없어요. 응구기 씨의 사망은 저에게도,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슬픈 소식이었죠.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와의 만남도 아주 인상 깊었어요. 어느새 우린 소중한 친구가 되었죠. 저는 인간끼리 연대한다기보다는 뭔가를 받아들여 흡수한다는 느낌으로 다른 소설가와의 만남에 임하는 편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육체와 경험, 언어와 문화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글을 쓸 준비가 된” 생명체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죠.

영어를 꾸준히 배우는 이유도 그런 만남에 대한 기대 때문인가요?

아직도 영어는 거의 못하지만,(웃음) 모처럼 작가들과 만났을 때 언젠가 그 지역 언어로 더 제대로 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갈 길은 멀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요.

<편의점 인간>은 실제 편의점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자전적 소설로 알려지며 더 이슈가 되었죠. 2016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점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요. 실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소설에 자주 투영하는 편인가요?

저는 사소설(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쓴 소설로 일종의 고백문학을 일컫는다)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좌절하고 픽션밖에 쓸 수 없었던 스타일의 작가입니다. <편의점 인간> 속 주인공의 초상화, 살고 있는 집의 구조, 연표나 사고 구조 등은 실제와 꽤 다르죠. 실재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주인공이 근무하는 편의점도 가공의 체인점이었고, 그 주변으로도 가공의 가게를 제멋대로 건축했어요. 편의점 동료들의 초상화도 소설을 쓰며 전부 새로 그렸죠. 인간에게는 무의식의 지하 세계 같은 곳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거기서 작은 결정(結晶)을 주워 올 수는 있을 테지만 제 기억 속에는 <편의점 인간>에 등장하는 어떤 에피소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쓴 모든 소설이 다 그래요. 굳이 꼽자면, 말버릇이나 말투 등 의외의 부분에서 저나 제가 본 것과 유사한 점이 발견되는 정도랄까요.

그럼 반대로 소설을 쓰면서 한동안 몰두하게 된 세계나 삶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나요?

그렇게까지 주인공에게 몰두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진 않습니다.(웃음) 하지만 집요하게 돌아보고 싶은 것에 대해 집필 전후로 다른 감각을 갖게 되더군요. 그 점을 기쁘게 여깁니다. 소설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나의 상상력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그 경지로 갈 수 없다면 딱히 소설을 쓸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소설 안으로 뛰어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사회의 애매한 경계, 성, 연애, 결혼, 가족, 출산의 목표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당신의 이야기에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최근 제가 인터뷰한 일흔의 예술가는 “예술가는 결국 단 한 가지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에 관해 어떻게 여기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분투하나요?

저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이기보다는 이런저런 실험을 즐기는 작가예요. 방금 그 문장을 읽고, 그분의 말씀에 동의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약간 다른 감각을 갖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저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 분이 있었어요. “데뷔작에 작가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요.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단편으로 데뷔한 후 줄곧 하나의 긴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이 긴 강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의 테마가 개별적인 이야기 안에서 점점 진화하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테마를 찾는다기보다는 하나의 의문이 점점 진화해 변화하고, 계속 형태를 바꾸는 거죠. 근원은 같지만, 다른 생명체로 계속 탈피하는 것처럼요.

당신이 전개하는 이야기는 천진난만한 듯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고, 꽤 폭력적입니다. 무라타 씨를 특징짓는 ‘디스토피아 작가’라는 표현에 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 의도해서 쓰는 편이 아니라 제 소설이 디스토피아에 가까운지, 유토피아에 가까운지 잘 모르겠어요. 늘 이야기가 제 의식이나 뇌를 초월하길 바라며 집필하기 때문에 왜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저도 모르는 경우가 많죠. 맨 처음 노트에 묘사한 인물들이 알아서 이야기를 생성해나가는 느낌에 가까워요. 제가 인간이 지닌 폭력성이나 동물적인 행동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그런 면이 부각된 인물들이 자주 탄생하는지도 모르죠.

<소멸세계>와 <지구별 인간>은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편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정세랑 작가와 나눈 <절연> 간행 기념 대담에서 “이제 소설 속에서 인간의 눈을 버리고 싶다. 비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조금 이상해 보일 정도로 알고 싶어 집착하고 있다”고 한 이야기가 새로운 도전을 암시하기도 했어요.

사실 유치원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지구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며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상의 생명은 지속될 거라는 생각이요. 동물이나 곤충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자주 상상했죠. 아마 친오빠가 좋아했던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에서 본 이미지가 깊은 잔상을 남긴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그 후로 인간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든지,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인간을 바라볼 때의 감각을 늘 직접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인간으로 살아가는 저와 제가 쓴 소설에서 작동하는 장치가 되어 제가 딛고 살아가는 세상과 스스로를 더 격리하는 원인이 되었죠.

‘가고 싶다’ ‘알고 싶다’는 욕망이 집필의 동력이라고 자주 언급합니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상상력은 어느 정도 허용하고, 어느 시점에서 제한하는 편인가요?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소설은 제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설 자체가 세계를 형성하고, 그 세계가 점점 예상외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가깝거든요. 글을 쓸 때도 늘 소설이 제 예상을 빗나가고, 제멋대로 확장해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스스로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강연에서 “인류는 배신하더라도 소설은 배신하지 않을 결심입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죠. 제 상상력보다는 언제나 소설 자체의 변화와 진화를 더 믿고, 응원해요. 앞으로도 소설이 지닌 가능성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소설가로서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소설이 내 손을 떠나 한없이 진화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죠.

글 쓸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요?

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 집필의 자유를 잃는다는 것보다 너른 의미에서 한 말인데요. 저를 소설이 탄생하기 위한 장치로 여기기에 그 작동 논리가 파괴된다거나 소설이 소설만을 위한 것이 아닐 때, 저에겐 사망 선고를 받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물론 저와는 다른 동기로 소설을 쓰는 모든 작가를 존중하지만 제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가장 꾸준히 좋아해온 소설가나 작품은?

마츠우라 리에코는 제게 특별한 작가예요. 마츠우라의 책을 읽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윤곽이 뚜렷해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추럴 우먼> <엄지발가락 P의 수행시대> <최애의 아이> <견신>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가와 요코, 가와카미 히로미, 호리에 도시유키 등을 비롯한 많은 일본 작가들이 마츠우라 리에코의 문학을 즐겨 감상하고, 여전히 그의 새로운 문장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젠가 “소설이 곧 나의 신앙”이라고 이야기한 당신이 ‘소설가로서의 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을까요?

최근 육체가 무너지면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인간인 나’를 계속 지구에 (특히 일본 사회에) 푹 담근 채 세상을 녹화해오면서 ‘인간인 나’는 소설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여겨왔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나’와 ‘소설가로서의 나’가 개별적인 육체를 지닌 것은 아니기에 글쓰기를 위한 장치로서의 육체도 소중히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현기증과 구토에 시달리지만, 차츰 건강을 되찾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강연이나 모임에서 타인(특히 작가 지망생이나 소설 애호가)에게 이야기를 건넬 기회도 많을 듯합니다. 그럴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면요?

저는 소설 쓰는 일을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걸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과 만나 대화하면 늘 생경한 감각을 느끼게 돼요.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소설가는 인간의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씀하셨는데 동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해요. 이미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소설은 특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계속 집필해주세요.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라고 충고하곤 해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당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으며 ‘이상한 건 당신만이 아니야’라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믿는 이야기의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인가요?

앞서 계속 말했듯이 저는 이야기를 만들 때 인간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 소설 안에 뭔가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느꼈다면, 그건 제가 소설을 통해 건네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생명력 있는 존재 자체가 그런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저는 본질적으로 ‘알고’ 싶어요. 인간이 살면서 의식하는 정신세계 저변에 퍼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 터무니없을 만큼 광대한 지하 세계 같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크게 느끼죠. 그냥 살아가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더 알고 싶고, 닿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껏 예감한 것처럼, 그 장소로 가기 위한 가장 유용한 수단은 소설, 말,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VK

J ISSUE

한국과 일본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가깝고도 먼 우리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해왔다. 〈보그〉가 주목한 동시대 일본 문화 예술인들이 간극을 더 좁혀가리라 믿는다.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히다카 유키토, 종합 격투기 선수 미우라 코타, 뮤지션 크리피 너츠,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가 K에 보내는 J 컬처.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정효진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공인아
헤어 & 메이크업
Miyazaki Ke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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