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피터 프레이저와 보테가 베네타가 공유하는 것

2026.04.28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피터 프레이저와 보테가 베네타가 공유하는 것

‘길바닥의 모든 것을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라는 밈이 한참 떠돌았죠. 쓰레기통 옆에 널브러진 햄버거 세트나 폐차 직전의 자동차, 정체 모를 그래피티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히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어 하는 ‘힙스터 심리’라고 폄하할 테죠. 하지만 여기에는 꽤 깊은 철학적 토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을 평생 파고든 사람이 영국 사진가 피터 프레이저(Peter Fraser)입니다.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우주는 사소한 것이 모여 구성되어 있으므로, 작거나 큰 물체 사이에 계급적 차이는 없다.” 피터 프레이저는 사물의 문화적 위상보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감각을 우선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피터가 ‘시적 진실’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시적’이라는 표현도 어렵고 ‘진실’이라는 개념도 좀 모호하지만, 간단합니다. 잘 쓴 시 한 구절이 마음 한구석에 콕 박혀 오래 남듯, 논리보다 먼저 다가와 사람을 붙잡는 직관적인 힘이 피터에게는 곧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특별한 시선을 지닌 피터 프레이저와 보테가 베네타가 손을 잡고 프로젝트 ‘For the Arts’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둔 이미지 27점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는 작가와 브랜드의 태도가 맞닿은 결과입니다. 패션 화보가 다른 예술 작업처럼 시적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요? 피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고 어느 시대에나 가닿는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역시 위대한 회화나 조각처럼 삶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 이바지하며 시적 진실을 구현하죠. 물론 제가 젊었을 땐 대답이 달랐겠지만요.”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루이스 트로터가 이끄는 2026 봄/여름 컬렉션의 시작이기도 한 이번 작업에서, 피터 프레이저는 자신만의 시선을 자유롭게 전개합니다. 피터는 보테가 베네타가 1966년 출발한 뿌리가 남아 있는 베네토(Veneto) 지역, 그중에서도 베네치아를 선택했습니다. 피터가 보는 베네치아는 ‘관념이 형상화된 도시’입니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현실로 툭 튀어나와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다면서요.

사진 속에선 전경과 디테일이 뒤섞입니다. 베이비 보테가 백이 낡은 다리 파편 옆에 자리하고, 17세기 대저택 안에 구두가 툭 놓여 있습니다. 클로즈업과 넓은 풍경이 번갈아 나오며, 무엇이 주인공이고 무엇이 배경인지 경계를 흐립니다. 피터에게는 사물 사이에 위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방이 더 중요하고 풍경이 덜 중요한 게 아니라, 오직 시야에 들어올 때 얼마나 강렬하게 느껴지느냐가 전부입니다.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제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서 풍경인지, 자동차인지, 정물인지 구분하지 않죠. 모두 하나의 일관된 접근 방식입니다.” 이 지점에서 ‘Whatness(본질)’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피터는 이를 “오렌지를 오렌지답게 만드는 ‘오렌지성'”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색, 형태, 향을 따로 분석할 필요 없이, 한눈에 “오렌지네!”라고 느끼게 만드는 그 고유한 순간이요. 이 집요한 시선 덕분에 사진 속 패션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와 같은 층위에서, 배경과 동일한 조건으로 놓입니다. 패션이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더불어 호흡하는 요소가 된 셈입니다.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의 미감은 전략이 아니라 유전처럼 자연스럽습니다. 1960년대 팔라디오 양식 빌라들 사이에서, 비첸차(Vicenza) 장인들이 기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죽을 얇게 잘라 손으로 엮은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또 1980년대에는 티치아노(Tiziano)의 ‘참회하는 성 히에로니무스(Saint Jerome in Penitence)’ 복원 사업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패션 브랜드의 문화 후원이 흔해지기 전부터 보테가 베네타는 실천하고 있었죠.

이번 프로젝트는 배우 제이콥 엘로디와 화가 포피 존스가 참여하고 듀안 마이클스가 촬영한 ‘What Are Dreams’ 캠페인에 이어, 루이스 트로터가 구축해가는 창의적인 세계관을 더욱 견고하게 연결합니다. 찰나를 포착해 시적인 울림을 주는 감각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멈추게 만드는 이미지’가 귀합니다. 보테가 베네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눈이 가는 이유입니다.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Peter Fraser ‘For the Arts’. Courtesy of Bottega Veneta
하솔휘

하솔휘

웹 에디터

2025년 4월 <보그>에서 시작했습니다. 패션 감각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글을 씁니다. 많이 듣고, 다니고, 읽고,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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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esca Faccani
    사진
    Peter Fraser
    Courtesy of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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