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붓한 베트남, 앙사나 랑코
“내가 왜 따뜻한 난방 시설과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내 방을 두고 굳이 이 고생을….” 정대건 소설가는 여행 첫날 밤 침대에 누워 읊조렸다. 집을 사랑하는 나도 늘 이 딜레마에 시달린다. 그러니 이왕 떠날 거라면, 그곳은 내 방처럼 아늑하고 따뜻해야 한다. 앙사나 랑코(Angsana Lăng Cô)처럼.

베트남은 처음이었다. 경기도 땅으로 인정받은 다낭도 방문한 적이 없다. 호찌민과 하노이, 하롱베이를 시작으로 호이안, 나트랑, 푸꾸옥과 달랏까지 한국인들이 부지런히 발자국을 찍는 와중에도 베트남은 내게 미지의 땅이었다. 가족 휴양지라는 점이 첫 번째 연유였고, 결정적으로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여행지를 선호하는 패턴도 크게 작용했다. 다낭에서 한 발짝 들어섰을 뿐인데, 앙사나 랑코는 두 가지 이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모든 여행자를 감싸안는다. 다낭 공항에서 에스코트를 받아 1시간쯤 달렸을까. 도심을 벗어나 베트남에서 제일 긴 하이 반(Hải Vân) 터널을 지나면 파도까지 쉬어 가는 작은 어촌, 랑코(Lăng Cô)가 나온다. 수백 개의 장대를 꽂아 굴을 키우고, 그 풍경이 세계의 포토그래퍼들을 불러 모은다는 곳. 마을을 지나 15분 정도 좁은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그 끝에 앙사나 랑코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이 없던 시절 리조트 회장이 직접 배를 타고 와 고르고 고른 터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리조트 뒤는 울창한 산맥이 든든하게 감싸고, 앞쪽으로는 푸른 바다와 3km에 달하는 프라이빗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풍수 전문가를 대동한 것이 아닌가 싶게 건물이 앉은 모양새까지 가지런한데, 덕분에 어느 방을 고르든 탁월한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 총 222개의 객실은 전망, 개인 풀 유무, 해변과의 연결성, 무엇보다 여행 구성원에 따라 풀 스위트, 로프트, 패밀리 스위트 등으로 나뉜다. 내가 머문 곳은 루프톱에 인피니티 풀이 마련된 3층짜리 로프트로, 입구인 2층으로 들어서면 거실과 다이닝이 있고 한 층 밑으로 2개의 침실이 있는 객실이었다. 모임 여행으로 와도 넉넉할 7인용 공간이라 밤에는 적적할 것 같다고 우려했으나, 침실 문 하나만 닫아도 안온한 느낌이 들어 간만에 숙면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엔 침대 앞 통유리 너머로 번지는 따뜻한 태양 빛에 눈을 떴다. 커피 한 잔을 내려 루프톱에 올랐는데, 파도 소리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리조트 뒤편, ‘바흐 마(Bạch Mã) 국립공원’은 조류 보호구역으로 무려 363종의 새가 서식 중이다. 그 때문에 새를 관찰하고 촬영하기 위해 리조트를 방문하는 ‘탐조가’들이 많은데, 이들의 사진을 모아 리조트 내에 갤러리를 열었다. 여행지이자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반얀트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계획되긴 했지만, 자발적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직원 대부분이 랑코 지역 주민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리조트가 제공하는 집에 거주하며 아이가 있다면 함께 출근하고, 리조트 내 어린이집에 맡긴 뒤 근무가 끝나면 같이 퇴근한다고 했다. 덕분에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면서 공항에서 에스코트해준 직원이 가장 먼저 침이 마르게 칭찬한 부분이기도 했다. 지역사회와의 끈끈한 연대감은 ‘101가지 액티비티’로도 확장된다. 일행은 고깔처럼 생긴 베트남 모자 ‘논라’에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는데, 커뮤니티에 도착해보니 붓을 쥐고 서예에 푹 빠진 꼬마 친구들의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수상 스포츠도 빼놓을 수 없다. 겁이 많은 나는 리조트 내 950m 길이의 운하를 따라가는 카약을 선택했는데, 팔이 떨어져라 노를 젓고 나니 땀으로 흠쩍 젖어 바닷바람이 간절했다. 파도는 다소 거셌지만, 안전 요원과 함께 제트스키를 몰며 베트남 동해 바다에서 엔진 동력의 맛을 잔뜩 누렸다. 우리 뒤로 10대 후반 친구들이 가족과 패들 보드를 준비 중이었다. 날씨만 좋다면 바나나 보트나 웨이크 보드를 즐길 수 있고, 일출과 일몰 시간에 맞춰 사이클 혹은 하이킹을 하며 자연 탐방을 할 수도 있어 어느 나이대의 아이들이 와도 놀거리가 풍성할 듯했다.
하이라이트는 리조트 전체를 굽이굽이 감싸고 유유히 흐르는 300m 길이의 유수 풀, ‘메가 프리폼 리조트 풀(Mega Free-Form Resort Pool)’이다. 국내와 비교해봐도 넓고 긴 유수 풀을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다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규모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이 모인 메인 풀로 발이 절로 움직일 정도. 어른을 위한 놀이터도 근사했다. 메이저 6회 우승에 빛나는 닉 팔도(Sir Nick Faldo)가 설계한 ‘라구나 골프 랑코(Laguna Golf Lăng Cô)’가 5분 거리에 어깨를 맞대고 위치한다. 산과 바다, 논 뷰까지, 다양한 경관 속에서 18홀 라운딩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물소가 풀을 뜯는 푸르름과 파도가 자아내는 절경에 반해 골프 못 치는 나도 언젠가 골프 여행을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화로운 입지 덕에 <골프 트래블>이 선정한 아시아 톱 100 골프 코스에 이름을 올렸다고.



풍광으로 정서가 포만해졌다면, 위장의 허기는 해변가 레스토랑 뭄바(Moomba)에서 채우면 된다. 달빛 비치는 해변에서 즐기는 만찬은 오징어 샐러드와 새우 비스크, 연어 스테이크까지 신선한 지역 해산물로 구성한 모든 메뉴가 만족스러웠다. 식재료가 좋으니 다음 날 일식 레스토랑 라이스 바(Rice Bar)의 참치 다타키나 스시의 수준도 꽤 높았고, 튀김과 된장 라면 등 해산물을 잘 못 먹는 사람이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메뉴도 구비되어 있다.

해 질 녘, 리조트 가장자리의 객실까지 가기 위해 리조트 내부에서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 동안 투숙객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특별한 객실 설계로 고립을 자초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물장구에 실려 아스라이 들려오고, 풀벌레들의 속삭임과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파도, 발끝으로 느껴지는 태양의 따끈함까지, 진정한 행복은 공존 속에서 찾아왔다. 모든 것이 정답고 오붓했던 순간. 문밖의 평온이 앙사나 랑코에 있었다.
- 포토
- 앙사나 랑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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