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랄프 로렌의 영화적 여정

2026.05.25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랄프 로렌의 영화적 여정

팔라초 랄프 로렌에서 더없이 영화적인 두 여정을 오가다.

2026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이다. 2,000여 개 브랜드가 로 피에라(Rho Fiera)에 모이는 공식 박람회 외에도 도시 전역에서 1,000개 이상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제한된 시간에 어디를 방문할지 출장 다이어리를 엑셀로 정리하는 것부터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시작한다. 매번 변함없이 상위권에 랭크되는 곳 중 하나가 팔라초 랄프 로렌(Palazzo Ralph Lauren)이다. 이 공간은 디자인 위크 기간에 ‘랄프스 밀란(Ralph’s Milan)’으로 바뀌며 브랜드의 가을 홈 컬렉션을 공개하는 ‘런웨이’가 된다.

비아 산 바르나바(Via San Barnaba)에 자리한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브론즈로 된 폴로 플레이어 조각상과 풍성한 식물이 자리한 안뜰이 드러난다. 나는 이 아늑한 정원에서 샴페인 한 잔부터 들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그간의 벅찬 일정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이 건축물은 건축가 미노 피오키(Mino Fiocchi)가 장식 요소를 배제하고 기하학적 형태와 균형 잡힌 비례를 통해 건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20세기 이탈리아 모더니즘 건축 사조인 래셔널리즘(Rationalism)과 균형과 비례를 중시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클래시시즘(Classicism)을 결합해 지었다.

이 저택은 랄프 로렌이 인수하기 전까지 밀라노 안나 보노미(Anna Bonomi) 가문이 관리해왔다. 랄프 로렌은 이 공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매거진 <타운 & 컨트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건물의 현대성에 매료되었어요. 시대를 초월한 감각과 고전적인 우아함을 동시에 지녔고, 제 컬렉션을 구현하기에 완벽한 공간이었죠. ‘랄프스 밀란’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표현이었고, 이 특별한 도시에서 집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랄프 로렌은 꿈을 다루는 디자이너기에, 이 꿈에는 특별한 배경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이 팔라초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마법 같은 공간이며, 아직도 공유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어요.”

올해 그 이야기는 자연에서 도시로 이어진다. 그 시네마틱한 여정을 랄프 로렌 홈 ‘새들브룩(Saddlebrook)’ 컬렉션과 ‘스털링 스퀘어(Sterling Square)’ 컬렉션으로 연출했다.

새들브룩 컬렉션이 자리한 공간은 자연과 가족을 사랑하며 승마를 즐기는 모험가의 집 같았다. 오크 패널 벽면과 태피스트리에서 영감을 받은 레오파드와 딥 블루 벨벳, 오베르진 태피스트리 같은 패브릭이 따뜻한 공간을 연출했다. 가구는 헤리티지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탈리아에서 제작했다. 브루탈리즘과 아르데코 요소를 결합한 오크우드 소재의 비콘 바 캐비닛(Beacon Bar Cabinet), 블리치트 마호가니 소재의 팔러 다이닝 테이블(Parlor Dining Table), 가죽 트레이와 브론즈 베이스가 결합된 신고전주의 스타일 마르키즈 칵테일 테이블(Marquise Cocktail Table)이 자리한다. 조명 컬렉션 중에선 야생화를 수작업으로 그린 할펀 테이블 램프(Halpern Table Lamp)와 진달래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언 휘톡 샹들리에(Iron Whittock Chandelier)가 눈에 띈다. 다이닝 공간에는 랄프 로렌 테이블웨어가 놓여 있었다. 샹티이 포슬린(Chantilly Porcelain)에서 영감을 받은 플로럴 모티브의 이사벨라 디너웨어(Isabella Dinnerware)다. 혼밥이 아니라 정겨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대가족의 식사 시간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새들브룩 컬렉션은 장인 기술에 대한 랄프 로렌의 존중을 담고 있다. 그중 한 예가 랄프 로렌 홈을 위해 도예가 클레어 포터(Clare Potter)가 제작한 아트워크로, 18세기 유럽 도자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해석한 플로럴 오브제다.

이제 모험가의 집에서 도심 속 펜트하우스로 이동할 시간. 스털링 스퀘어 컬렉션으로 꾸민 공간은 한마디로 모던하고 세련됐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간결한 가구는 연녹색 계열의 셀러돈과 크림, 카멜 톤 컬러 팔레트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브리스틀 칵테일 테이블(Bristol Cocktail Table)에 사로잡혔다. 실버 프레임의 간결한 테이블 같아 보이지만 모서리에 아르데코 스타일의 기하학 모티브를 새겨 넣었다. 역시 가치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조명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영감을 받았고 광택 소재로 반짝이는 벡슬리 테이블 램프(Bexley Table Lamp)부터 주름 장식이 특징인 원형 벨모어 스콘스(Belmore Sconce)가 놓였다. 이번 스털링 스퀘어 컬렉션은 영국의 유서 깊은 주석 제조사 잉글리시 퓨터 컴퍼니(English Pewter Company), 스코틀랜드의 전통 울 공장 존스톤스 오브 엘긴(Johnstons of Elgin)과 협업했다.

밀라노의 유서 깊은 쇼핑 구역인 콰드릴라테로 델라 모다(Quadrilatero della Moda)에 자리한 비아 델라 스피가 플래그십 스토어 또한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새 단장을 했다. ‘스포츠 앤 스타일’을 주제로, 바람에 부풀어 오른 돛과 요트에서 영감을 받아 외관을 꾸몄으며, 매장 윈도는 배의 원형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듯 연출했다. 창을 통해 해안가의 낭만을 담은 남성 및 여성 브랜드와 더블알엘(Double RL) 컬렉션이 보인다. 이곳에 들른다면 랄프스 바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랄프 로렌 홈 패브릭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코트야드에서 아메리칸 퀴진을 즐길 수 있다. 번화한 밀라노 시내를 잠시 잊고 미국 상류층의 별장에 초대를 받은 듯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2026년 가을에는 비아 델라 스피가에 브랜드 최초의 단독 홈 스토어를 연다. 1983년부터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에 장인 정신과 혁신을 담아온 랄프 로렌 홈의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패션과 홈 컬렉션을 나누어 말할 수 없는 시대, 랄프 로렌만 보아도 둘은 더 밀착할 것이다. VK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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