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동네 예체능

소치 동계 올림픽, 브라질 월드컵, 그리고 인천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2014년. 디자이너들이 당신의 에너지 넘치는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응원하고 있다. 올봄 가장 위력적인 예술주의로 포장된 스포티즘!

스포티즘이 아트를 만나면? 이슬처럼 맺힌 주얼 장식의 민소매 레드 원피스와 종아리만감싼 니삭스, 역시 주얼 장식의 테바 샌들은 모두 프라다(Prada).

눈꺼풀 한 번 깜빡했을 뿐인데 벌써 3월! 더는 엉덩이를 푹신한 의자나 침대에 뭉개지 말고 자신에게 D-DAY를 선포한 뒤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기다. 새해 목표 가운데 ‘운동’이 1순위였다면 축하 메시지를 날리고 싶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은 며칠 못 가 좌절하고 만다. 다이어트나 금연처럼 운동을 방해하는 일상적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 그들을 위해 꽤 적절한 동기부여가 400m 계주처럼 준비됐다. 2월 7일부터 23일까지 소치 동계 올림픽, 6월 13일부터 7월 14일까진 브라질 월드컵,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 아시안게임! 게다가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응원하는 디자이너들이 함께 전지훈련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일제히 스포티즘에 빠졌으니, 워밍업 하기에 지금이 딱이다.

2014년만큼은 유산소운동이든 근력 헬스든 필라테스든 스트레칭이든, 당신의 운동 계획이 성공을 이루도록 패션을 맘껏 이용해도 좋다. 게다가 한반도는 물론 러시아 대륙과 남미를 넘나들며 손에 땀을 쥐게 할 명승부들이 펼쳐질 테니, 당신은 몸이 근질근질해 가만있지 못할 것이다. 소치 동계 올림픽 관전을 시작으로 몸에서 뭔가 알 수 없는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과 의지가 일단 ‘업’됐다는 신호. 이제 디자이너들의 동작을 끈기 있게 잘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스포티즘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캣워크 여기저기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처럼 시원스럽게 나타났다. 하지만 2014년 스포티즘은 작년이나 재작년과 달리 좀더 ‘뽀대’ 나는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올해 초강력 트렌드였던 ‘예술 지상주의’의 바통을 이어 받아 아티스틱하게 변신한 채 패션 트랙에서 전력 질주할 전망.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각자 다룬 스포티즘 솜씨는 가히 예술이다. 에르떼의 일러스트와 아르누보 양식을 스포츠 메시 스웨트 셔츠와 헐렁한 박서 쇼츠에 결합한 구찌, 길거리 벽화를 레그워머 겸 축구 선수용 양말이나 고무 소재 스포츠 하이힐로 마무리한 프라다, 1950~60년대 가정용 패브릭의 믹스에 재패니즘과 스포티즘까지 들이부은 마르니, 권투 챔피언은 물론, 농구 선수와 스쿠버 다이버를 이태리 팔라초 아트와 뒤범벅한 에밀리오 푸치, 아프리카와 현대미술과 길거리 문화와 드레이핑을 스포티즘과 능수능란하게 혼합한 셀린, 디자이너 특유의 러닝 스타일에 아카이브의 고매한 예술성을 곁들인 발렌시아가, 타이포그래피 아트와 그래픽을 도입해 신형 스포티즘을 제안한 알렉산더 왕, 그래픽적인 아가일 무늬로 빼입은 경기장의 멋쟁이 심판을 표현한 사카이, 원초적 아름다움인 동물무늬를 동원해 스트리트 스포츠를 보여준 몽클레르 감므 루즈, 전혀 뜻밖의 육체미와 예술적 퍼포먼스를 무대로 끌어들인 릭 오웬스 등등(이렇게 쫙 나열하고 나니, 패션 올림픽 개막식의 선수단 입장처럼 보인다).

옷도 옷이지만 스타일링의 최종 단계이자 비율 완성에서 핵심인 신발은 당장이라도 트랙을 질주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우리가 전한 테바 유행이 전반전이라면, 곱디고운 예술적 꽃신으로나 익숙한, 오뜨 꾸뛰르 무대를 밟은 운동화들의 빅 매치가 후반전을 예고한다. 샤넬의 마사로 공방에서 파이톤, 레이스, 진주, 트위드로 제작된 운동화는 약 3,000유로를 호가한다(라거펠트의 스포츠 정신은 무릎과 팔꿈치 패드나 변형된 스포츠 의류까지 포함한다). 꽃 모양 비즈로 촘촘히 장식된 디올의 스니커즈는 스피도 상표가 찍힌 서프 슈즈의 꾸뛰르 버전쯤 된다(이 두 신발이 ‘스타일닷컴’에 뜨자마자 재치 만점의 패션 블로거들은 저렴한 스니커즈와 서퍼 슈즈를 한 켤레씩 두고 각각 레이스와 비즈, 핀셋과 글루건을 동원해 DIY하는 요령을 알려주느라 바쁘다). 샤넬과 디올의 꾸뛰르 운동화가 육지에 처음 발자국을 남길 때, 리카르도 티시는 지방시 꾸뛰르를 한 번 쉬는 대신 나이키와 발을 맞댔다. 티시가 협업한 ‘나이키 RT’는 그 자체로 반향을 일으키고 남을 만한 걸작이다. 릭 오웬스가 아디다스를 통해 만든 우주선 같은 하이톱 슈즈도 마찬가지. 올봄 스포티즘이라는 도움닫기 덕분에 이 두 켤레의 출현은 아주 적절하게 보인다.



사실, 지상 최대 스포츠 행사와 상관없이 패션계에서는 진작부터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중이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들이 스포츠 명문 팀의 유니폼을 디자인하거나 속옷 광고에 몸 좋은 운동 선수를 홀딱 벗겨 출연시키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요즘은 디자이너 스스로 스포츠에심취해 몸을 만들고 가꾸고 있다. 이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은 근육질의 마크 제이콥스, 릭 오웬스, 존 갈리아노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남자 디자이너들이 패션 역사에서 이토록 노출에 너그러운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파리에 있는 ‘L’Usine’이 그들의 단골 피트니스 클럽으로, 브랜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들이 모여 상사들 씹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르마니는 ‘올림피아 밀라노’라는 이태리 농구 팀을 소유한 패션 갑부이며, 인류 역사에서 몇 안 되는 다이어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라거펠트는 파리 저택을 대형 체육관으로 변신시킬 때도 있다. 스포티즘에 빠진 패션 스타들은 한둘이 아니다. 꼭두새벽같이 일어나 테니스를 치는 안나 윈투어, 제레미 스콧이 만든 트랙 수트에 열광하는 카를린 서프 드 두질르, 매일 수영하는 톰 브라운, 서핑을 배운 뒤 올봄 컬렉션 영감을 바다에서 건진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 등등.

서울 패션 필드 역시 스포티즘 열기로 후끈하다. 양영자와 현정화가 500원짜리보다 살짝 큰 흰색 공으로 세계를 제패해 겨레의 자랑이 됐던 80년대 이후, 이토록 탁구 열풍이 분 적이 또 있을까. 심지어 탁구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패피들까지 탁구장을 들락거리며 민첩하게 팔을 휘저어 스매싱을 날리고 있다. 트렌드에 뒤처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경리단길의 ‘서울 핑퐁 펍’에 몇 차례 들렀을 것이다. 또 멀티숍 비이커의 오픈 1주년 파티나 박승건의 패션쇼 애프터 파티장에도 탁구대가 놓이는 시절이다. 한편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디자이너, 홍보 담당, 패션 기자 등은 승마, 필라테스, 골프, 테니스를 위해 따로 시간을 빼고 있다. 할렐루야! 또 윤진욱, 오안, 강철웅, 박지운 등 남자 톱 모델들로 조직된 ‘FC 처음처럼’이란 축구 팀이나(돌체앤가바나 광고에 나오는 이탈리아 축구 대표 팀만큼 섹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멀티숍 오너와 모델 등은 러닝 모임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뛰고 또 뛰는 게 현재 서울 풍경이다(러닝은 비로소 패션 피플들의 필수 운동이 됐다).



요새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며 정신없이 바쁜 고태용에게 스포티즘은 이 젊은 디자이너의 패기와 활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테마였다. 그는 올봄을 위한 서울 패션 위크 무대를 피트니스 클럽으로 꾸몄다. 이름 하여 ‘Beyond Closet Gym’에서는 잘생긴 청년들이 사이클을 타랴 역기를 들어 올리랴 캣워킹하랴 땀을 뻘뻘 흘렸다. 신인 디자이너 권문수는 패션쇼장을 아예 축구장으로 둔갑시켰다. 초록 잔디가 런웨이를 대신했고, 마지막 피날레 장면은 축구 팀이 경기 시작 전에 갖는 단체 사진 포토 세리머니! 서리얼벗나이스도 여행 테마 사이사이에 스포티즘을 끼워 넣기 위해 탄력 있는 네오프렌 의상을 디자인했다. 럭키 슈에뜨 역시 모터사이클 재킷의 뒤를 이어 유행의 스파이크를 날릴 스타디움 점퍼로 패션 올림픽에 참가했다. 보드 문화에 푹 빠진 스티브와 요니 커플을 빼놓고 서울의 스포티즘을 어떻게 규정할까. 그들은 ‘로맨틱 스포티즘’으로 또 한 번 활기 넘치는 무대를 마련했다. 도회적이기 짝이 없는 앤디앤뎁 부부 역시 펜싱, 사격, 양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들의 컬렉션 이력 사상 가장 에너제틱한 순간을 남겼다. 그리고 캣워크라는 물살을 가로지르던 송자인의 수영복 스타일까지.

이렇듯 최소 10분간의 런웨이 게임을 통해 승리한 국내외 대표 팀을 보며 푸치의 피터 던다스가 외쳤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들은 스포츠의 여왕이에요!” 이제 캣워크라는 경기장에서 스포티즘을 제외시켰다간 맥 빠져 보인다. 그건 스포티즘이 젊음과 비슷한 말도 된다는 얘기다. 패피들이 운동을 즐기는(‘하다’보다 ‘즐기다’라는 동사가 더 적절하다) 이유 역시 건강한 몸 관리, 다시 말해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젊음을 향한 회귀 본능이 깔려 있어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당신이 해볼 만한 운동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깜짝 선물처럼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에 대체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결승점이나 결승골을 남긴 상황처럼, 패션 디자이너들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러너스 하이’에서나 경험할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을 분비시킬 만한 새 옷을 흔들며 여러분이 2014년 패션 게임에서 막판까지 완주하길 외치고 있다. 그러니 이번 시즌만큼은 최정예 트레이너 겸 최고의 운동심리학자가 바로 패션 디자이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