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배우, 브래들리 쿠퍼

〈행오버〉에서 브래들리 쿠퍼는 맞춤옷을 입은 것 같았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에 이르자 그 외에 그 역할을 연기할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나왔다. 그는 지금 완벽히 대체 불가능한 배우다.

화이트 티셔츠는 랙앤본(Rag&B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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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을 가기 전, 브래들리 쿠퍼는 언제나 대본 6페이지를 소리 내어 낭독했다. 사투리는 자동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사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언어 코치 팀 모니크가 권한 방법이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브래들리 쿠퍼에게 큰 도전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사투리를 말하지 못하면,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다. 텍사스에는 많은 텍사스 사투리가 존재한다. 특유의 모순적인 억양이 있었으며 단면적으로는 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쿠퍼는 텍사스 출신 가수 로버트 얼 킨의 ‘Feelin’ Good Again’이라는 노래를 시작했다. ‘피터 파이퍼’ 같은 발음을 사투리로 최대한 빠르게 구사했다. 마치 정확히 발음하면서 가글링을 하듯 말이다. 브래들리 쿠퍼는 필모그래피에서 놀라우리만치 넓은 범위를 소화해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두 번 후보로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쿠퍼는 연기에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연기력이 좋다는 증거이지만 그가 연기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독이자 친한 친구인 데이비드 러셀은 쿠퍼가 연기를 심각하게 여기는 타입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그의 연기에 진지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제 자체가 어둡고 복잡하며 깊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배우는 잘해낼 수 있는 역할, 즉 ‘안전지대’를 갖고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해군 SEAL 팀 소속 스나이퍼 세 명, 크리스 카일, 스캇 매큐언, 짐 드펠리스가 공동 집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는 이라크전 당시 네 개 부대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정확한 명사수로 꼽혔던 인물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라크의 위험한 분쟁 지역 한가운데로 잠입한 전쟁 경험을 담아냈을 뿐 아니라 두 아들의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모습도 그려냈다. 영화 제작 중에 생긴 비극 역시 담겼다. 한 나라의 영웅이자 전설적인 군인이었던 크리스는 반란군들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었는데, 2013년 2월 2일에 텍사스 스티븐빌 근처 사격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크리스는 FITCO라는 비영리단체의 공동 창업자로, 정신적·물리적으로 고통받는 퇴역 군인들을 위해 가정용 헬스 기구를 공급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용의자는 해병대 출신의 에디 루스다. 몇 차례 전쟁에 나간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던 인물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특급 살인 혐의를 받아 지금도 복역하고 있다.

최고의 배우들은 최고의 연기를 위해 실패를 무릅쓴다. 하지만 쿠퍼의 경우 실패의 위험이 더욱 컸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출연하면서 브로드웨이 복귀작으로 버나드 포메란스의 <엘리펀트 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엘리펀트 맨>에서 흉측한 외모의 존 메릭 역으로 그는 연기 인생에서 새로운 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존 메릭 역할은 그동안 그가 맡았던 외향적인 성격의 역할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환경에서도 가장 미친 듯한, 완전히 내향적인 역할이었다. 꽉 조인 그의 턱을 표현하는 건 대사만큼이나 중요했다. 과장되지 않은 표정이어야 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다음 달이면 마흔이 된다. 하지만 그 나이로 보이진 않는다.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소년 같은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보는 즉시 빠져들 것 같은 코랄빛 바다색의 눈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추임새를 넣곤 하는데 가끔은 앞에 넣기도 하고 뒤에 넣기도 한다. ‘bro’와 ‘dude’를 사용하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할리우드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쿠퍼는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내고 라이달 교외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과 여전히 함께 놀러 다닌다.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라이달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메릴린 치증권 중개인이었고,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저먼타운 아카데미를 다녔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었다. 그런 그가 배우의 꿈을 꾸게 만든 건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이다. 열두 살 때 처음 그 영화를 보았고, 존메릭의 인간성에 대해 울고 감동하면서 자신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쿠퍼는 현재 약혼에 대한 생각을 조금 하고 있고 이런저런 일에 사로 잡히는 편이며 호기심이 가득하다. 바이크를 다섯 대나 가지고 있다. 먹는 것도 좋아한다. 이탈리아계인 외가와 아일랜드계인 친가가 같이 모이는 가족 모임을 좋아한다. 7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찰스의 죽음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쿠퍼는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를 포옹했고 아버지의 결혼반지를 손에 꼈다. 그는 아버지가 결혼반지를 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눈은 아버지 쪽 아이리시 계열의 눈을 닮았다. 확실히 잘생겼지만, 어떤 관객은 그의 캐스팅에 대해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할리우드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외모에서 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에서 그는 섹시함 그 이상을 보여줬다.

그 역시 스타덤에 오르면서 상당한 편익을 누려왔다.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고(2004년에 정신을 차렸다) 쉼 없이 쏟아지는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경험들은 쿠퍼에게 자신만의 관점을 부여했다. “가까이했던 누군가를 잃거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쿠퍼가 말했다. “제가 20대일 때 세상은 흑백이었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두 가지뿐이니 살기 힘든 방식이죠. 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을 회색으로 봅니다. 제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행오버> 감독 토드 필립스는 그를 두고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행오버>는 쿠퍼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다. “쿠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경험을 받아들이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요.” 시아나 밀러는 그의 아우라에 대해 말한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자기를 보지 않아요.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면도 지니고 있어요. 그런 점은 매우 순수하죠.”

쿠퍼에게 연예인병은 없는 것 같다. <엘리펀트 맨>공연을 위해 타임스 스퀘어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탄다. 오리털 파카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박 수프를 담은 백팩을 멘 채 말이다. 이 모습은 마치 포틀랜디아의 배역을 따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가는 누군가 같기도 하며 대학 때부터 프루스트를 읽으며 필요 이상으로 공부한 안내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등으로 졸업한 조지타운대학교 영문학과, 저먼타운 아카데미 연극영화과 모두 출석률이 좋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야구를 했고, 덩치 큰 상대도 이길 만큼 복싱을 잘했지만 뭔가 하나를 밀어붙일 만큼 자신감이 있진 않았다. 항상 긴장하는 성격의 쿠퍼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난 삼아 뉴욕에 있는 액터스 스튜디오 드라마 스쿨의 석사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다. 오디션을 봐야 했기 때문에 아무 연기 경험도 없는 조지타운대학교의 교수님을 연기 파트너로 데려갔다. 당연히 그 오디션은 완벽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임스 립톤 학장은 쿠퍼의 연기에 관심을 보였다. “불완전하지만 그에게 있는 무언가를 알 수 있었지요. 자신의 내면에 접근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쿠퍼가 오디션에서 낸 용기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라는 직업에서 좋아하는 점이 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하나였어요. 바로 위험성이라는 단어죠.”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는 프라다(Prada), 부츠는 보스(B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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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쿨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J.J. 에이브럼스(J. J. Abrams)의 앨리어스(Alias) 역할을 맡고, 컬트 클래식 <웻 핫 아메리칸 썸머(Wet Hot American Summer)>에서 게이 캠프 카운슬러의 역할을 연기했다. 또한 2005년 <웨딩 크래셔(Wedding Crashers)>에서 눈길을 끄는 조연을 맡았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알코올과 마약에 빠졌다. 친구들이 오후 2시에 그를 깨웠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2004년 8월 그는 제정신을 차렸고 지금까지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않았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위해 몸을 만들 때 각성제도 거절했다. “그 어떤 인위적인 시도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3개월 만에 몸을 만들 수 있을까? 13kg가량의 근육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도 몰랐어요. 운 좋게도 제 몸은 운동에 반응이 매우 빨랐어요.

2006년 그는 줄리아 로버츠, 폴 루드와 함께 브로드웨이 연극 <3일 간의 비>에 출연했다. 그동안 경력을 봤을 때 매우 매력적인 기회였다. “만약 이 연극이 아니었다면 저는 배우를 직업으로 삼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문학을 가르치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줄리아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 연극은 특별히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쿠퍼의 역할은 상당히 비중이 있었다. 10분 가까이 독백을 해야 했다. 이것이 그에게 힘이 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저는 언제나 감독과 전면에 서서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것이 언제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영화 제작에 뛰어들지 않으면 연기를 오래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요.” 그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매사추세츠 주의 윌리엄스타운에서 <대역(The Understudy)>의 주연을 맡았다. 연극이 끝나기 전 그는 토드 필립스의 메일을 받았다. 그와는 6개월 전에 영화 <행오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하지만 쿠퍼는 메일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무절제하고 부주의하지만 본성은 착한 필이 그가 연기해야 할 역할이었다. 쿠퍼는 이 영화에서 편집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연기나 분량과 상관없이 이야기에 따라 과감히 편집을 했다. “그가 좋은 영화 제작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죠.” 토드가 말했다.

이스트우드 역시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촬영하며 제작자로서 쿠퍼의 재능을 봤다. “그는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해요. 엄청난 호기심으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든 걸 알고 싶어 해요. 그런 모습에서 제 초보 시절도 생각났고요.” 시에나 밀러가 거침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는 훌륭해요. 물론 영화감독으로서는 악몽 같을 수도 있죠. 누구도 가만두지 않을걸요.”

<행오버> 이후에도 뛰어난 배우들과 함께하는 좋은 역할들이 들어 왔다.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한 <리미트리스(Limitless)>, 제레미 아이언스와 함께한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The Words)>,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러셀과 함께 작업한 <실버라이닝 플레이 북>이 있었다. 러셀은 쿠퍼의 이전 작품들을 좋아했지만 여전히 ‘정수를 건드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러셀은 뉴욕의 그리니치 호텔에서 그를 만난 시간을 기억한다. 팻 솔리타노 배역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 외에도 살아온 얘기, 행복하지 않은 시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언제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러셀이 말했다. “그의 답변은 매우 솔직하죠. 아직 영화에 담아내지 못한 경험과 감정도 많아요.” 그는 쿠퍼를 솔리타노 역할로 캐스팅했다. 솔리타노는 양극성이 섞여 있는 인물이다. 사랑을 동경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간다. 즉, 다중적인 면모를 지녔다. 쿠퍼는 이 영화로 2013년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처음으로 후보에 올랐다. 러셀 감독과는 영화 <아메리칸 허슬>도 함께했고 2014년 또 한 번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랐다.

쿠퍼는 시나리오 작가인 제이슨 홀에 의해 <아메리칸 스나이퍼>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온 것을 좋아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이전에 승인했으나 쿠퍼가 제시한 부가 사항을 더했다. 책과 관련한 저작권을 쿠퍼의 제작사인 22&인디아나 픽처스로부터 구입하는 조건이었다. 크리스 카일은 저작권이 팔리고 자신의 역할을 쿠퍼가 맡은 것에 즐거워했다. 비록 그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를 내 트럭에 묶어서 거리를 질질 끌고 다닐 것이며 그를 없애버릴 것이다.” 크리스는 쿠퍼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2014년 1월 말, 쿠퍼와 이스트우드는 크리스의 아내인 타야, 부모님인 웨인과 데비, 형제인 제프와 그의 아내 에이미를 만나기 위해 텍사스의 미들로디언으로 날아갔다. 크리스가 사망한 지 1주년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만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타야는 솔직하고 너그러웠으며 영화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크리스의 모든 것을 기꺼이 알려주었다. 그의 아버지 웨인은 친절했지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저는 제 아들이 직접 조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들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싫다고 맞섰어요.” 웨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가 작업의 주요 부분을 보여주자 안심했다. 그러나 그는 “쿠퍼는 도시적으로 보였고 연기를 잘했지만 저희는 그를 잘 알지는 못했죠”라고 덧붙였다. “만약 제 아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경우가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전 3개월간의 준비 기간 동안, 주말을 빼고 매일 2시간 동안 발음 훈련을 받았다. 발음 훈련 사이에는 운동 스케줄이 있었다. 크리스와 같은 체형을 만들기 위해 운동만으로 18kg 가까이 되는 근육을 만들었다. 하루에 5,000cal를 먹었다. 나중에는 188kg짜리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었으며 여덟 가지 운동을 각각 5세트씩 할 수 있었다. 해군 SEAL이었던 릭 월리스와 케빈 락즈 역시 쿠퍼에게 크리스가 다뤘던 다양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쿠퍼는 크리스가 이라크전에서 했던 것처럼 1,920.24m 거리에서 명중시킬 수는 없었지만 548.64m 거리에서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었다. 쿠퍼는 촬영 내내 영화 속 인물로 생활했다. 여자 친구 수키 워터하우스와 대화할 때도 영화 속 인물처럼 말했다. 어느 날 저녁, 밀러와 이스트우드와 함께 찾은 레스토랑에서 쿠퍼는 텍사스 사투리로 고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워너 브라더스의 시사실에서 95% 정도 완성된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관람했다. 당시 나는 폭력과 전쟁의 열기에 몸을 꼬았다. 시계를 쳐다보았을 때였다. 얼음장같이 냉정한 성격의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쿠퍼가 등장할 때마다, 정말이지 놀라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대를 거듭할 연기력이자 밤새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안전지대를 벗어났고 모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