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플랫폼 슈즈

하이힐의 위태로운 매력보다 플랫 슈즈의 편안함이 좋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힐이 꼭 필요한 여자들이라면?
70년대 유행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 나온 플랫폼 슈즈가 정답이다.

굽 전체를 자카드 소재로 감싼 프라다(Prada)의 플랫폼 샌들.

사샤 피보바로바와 캐롤린 월터가 등장한 3월호 미국 <보그> 화보 ‘Hustle and Flow’와 이달 <보그 코리아> 화보 ‘The Way We Were’ 속엔 올봄 강력한 트렌드인 70년대 아이템들이 잔뜩 들어 있다. 길고 늘씬한 맥시 스커트, 벨바텀 팬츠, 보헤미안 드레스, 스웨이드 블레이저와 데님 등등. ‘스튜디오 54’ ‘스티브 닉스’ ‘히피’ ‘데이빗 보위’ 등 70년대 아이콘들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한 이 화보들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플랫폼 힐! ‘Hustle and Flow’를 기획한 패션 에디터 카밀라 니커슨은 “당시 피라미드 실루엣(벨바텀 팬츠를 의미)을 하고 현란한 춤사위를 펼쳤던 제임스 브라운은 사람들의 시선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플랫폼 슈즈가 필요했다”라며 화보 속 모든 룩에 플랫폼 힐을 매치했다. 또 슈즈 디자이너 타비타 시몬스가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한 미국 <보그> 화보 ‘Touch the Sky’엔 테니스 경기나 아베돈 전시는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프닝 등 다양한 T.P.O 룩을 위해 각양각색 플랫폼 힐이 등장했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사실이 자명해진다. 올봄엔 플랫폼 힐이 대유행할 것이라는 것! 몇 년 전 미니멀리즘과 놈코어 룩이 패션 마이너리그에 머물던 플랫 슈즈와 스니커즈를 끄집어 냈다면, 70년대 스타일은 높디높은 플랫폼 힐의 유행을 부추겼다. 올봄 조니 미첼에게 푹 빠진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과 미우치아 프라다가 그 선두 주자다.

먼저 생로랑의 ‘캔디 슈즈’는 달콤한 이름과 달리 화려한 글램 룩 무드로 가득한 플랫폼 샌들. 4.5cm 높이(키튼 힐 높이)의 엄청난 앞굽과 나팔 모양으로 떨어지는 12.5cm 힐이 특징이다. 프라다 런웨이에는 자카드 소재로 장식된 우드 플랫폼 슈즈가 등장했다. “이번 봄 프라다는 1700년대, 1800년대는 물론 1950~7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앤티크 패브릭을 연구했습니다. 그 패브릭은 의상은 물론 슈즈에도 사용됐죠.” 프라다 하우스는 카프 가죽이나 페이턴트 소재로 완성한 어퍼(발등을 덮는 부분)에 들어간 밑창과 힐 전체를 자카드, 양단, 클로케 소재로 감쌌다고 설명했다.

<보그 코리아>가 3월호 트렌드 총정리 기사에서 예상했듯, 고급스러운 앤티크 원단을 사용한 높고 견고한 플랫폼 슈즈는 꽃무늬 양말과 함께 지금 패션지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톰 포드도 글래머러스한 로큰롤 파티를 위해 펄럭이는 플레어 팬츠에 엄청난 높이의 플랫폼 슈즈를 등장시켰다. 드리스 반 노튼, 미우미우, 아뇨나, 코치 등도 마찬가지. 확실히 이번 시즌 플랫폼 슈즈들은 꽃무늬와 진주, 스터드가 가득하고, 자카드, 파이톤, 송치, 페이턴트 등 다양한 소재로 완성돼 어딜 가나 한눈에 시선을 붙잡는다.

크리스털, 메탈릭 뱀피 등 반짝이는 장식을 더한 플랫폼 샌들은 생로랑(Saint Laurent).

하지만 14cm의 높디높은 힐을 보는 순간 과연 이 위에 안전하게 올라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혹은 예전에 비슷한 플랫폼 힐을 신고 위풍당당하게 나섰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 내동댕이친 기억이 있거나). “4.5cm 앞굽 높이를 빼면 실제 힐의 높이는 8cm 남짓. 그래도 앞굽이 높아 편해요.” 요즘 캔디 슈즈를 애용한다는 생로랑 하우스의 홍보 담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착용감을 칭찬했다. “파리에서 열린 F/W 쇼 날에도 하루 종일 신었지만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어요!” 프라다 슈즈 역시 앞굽을 제외하면 뒷굽의 높이는 7.5cm로 생로랑 슈즈와 비슷하다. “킬 힐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어요.” 하지만 ‘The Way We Were’를 위해 가지각색 플랫폼 힐을 신었던 모델 이혜정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신었을 땐 편안하지만 무거운 건 사실이에요. 너무 오랫동안 신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누리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손원수 과장은 보다 전문적인 의견을 들려줬다. “플랫폼 슈즈의 경우 스틸레토 힐보다는 균형을 잡을 수 있어 발목 손상 염려가 적습니다.” 이는 전족부(발가락 부위) 부위의 두꺼운 가보시 힐 덕분에 발 전체가 지면에 닿는 면적이 스틸레토 힐보다 상대적으로 넓기 때문. 발의 균형은 중족골(발가락과 발이 만나는 부위)이 닿는 부위와 발뒤꿈치가 지면에 잘 안착되고 발의 아치(중간 부위)가 잘 유지돼야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요. 그나마 덜 나쁜 슈즈인 건 맞지만 운동화보다 좋은 신발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모델 한혜진은 불편함을 솔직하게 호소했다. “플랫폼 힐을 신고 걸을 때는 앞굽이 있어도 불안해요. 발바닥 전체로 중심을 잡아야 하니까요.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스틸레토 힐보다 훨씬 위험할 거예요. 무거워서 발목에도 무리가 많이 가요.” 신발이 무거우면 발가락 신전과 굴곡, 발목 신전 굴곡 간 인대에 무리가 가는 건 사실. 손원수 과장은 희망적인 답변도 들려줬다. “신발의 무게 증가는 움직임 장애나 불편함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발 변형의 주요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발 변형은 앞코가 좁을수록, 힐이 높고 가늘수록 쉽게 일어난다. 나처럼 무지외반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겐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손원수 과장은 발 건강을 위해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알려줬다. 집에 돌아오면 발에 따뜻한 찜질을 해주고 발바닥 부위를 가볍게 마사지해주는 것. “신전과 굴곡을 통해 발가락을 충분히 스트레칭해줍니다. 벽을 미는 자세로 발을 뒤로 내밀며 뒤꿈치는 지면에 붙이는 거죠. 족저근막 통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힐을 신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면, 착용 시간을 최소화하는 습관(운전 중엔 드라이빙 슈즈를 신거나 사무실에선 편안한 실내화를 신는 등)을 들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힐을 신을 땐 두꺼운 양말을 함께 신어주면 좋은데, 전족부에 힘이 실릴 때 쿠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대한 가벼운 구두창을 고른다면 힘들게 비틀거리지 않고도 쉽게 하늘 높이 올라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