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의 윤리

돼지를 좋아하지만 삼겹살 중독이다. 동물 보호에 동의하지만 닭 다리 애호가다.
지구, 환경, 그리고 동물 복지를 위한 마음은 항상 잡식의 밥상 앞에서 작아진다.
우린 양심을 위해 식욕을 멈출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 씨네 가족은 육식 마니아다. 그녀는 보쌈을 즐기고, 네 살배기 아들 도영과 마트에 갈 때면 푸드코트에서 돈가스를 골라 나눠 먹으며, 집에서도 종종 돼지고기로 요리를 한다. 야생동물 수의사로 일하는 남편 영준 역시 육식 마니아. 그가 좋아하는 건 치킨이다. 멸종 위기의 아슬아슬한 생명체를 구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영준은 “먹거리는 스스로 고를 권리가 있다”며 잡식의 식성을 옹호한다. 동물 보호의 이상과 식탐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이 가족의 식탁에 대이변이 일어난다. 구제역이 충청도 인근의 농장을 덮치면서 350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된 것이다. 버둥거리며 땅속으로 떨어지는 돼지들과 도움을 갈구하는 그들의 괴성. 보쌈과 삼겹살, 그리고 돈가스의 재앙 같은 이면과 마주한 황윤 감독은 식단을 재고한다. 음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고 동물에 대해 생각한다. “살처분 장면을 보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예전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 푸드 네이션>이란 영화를 보고 잠시 고기를 끊은 적이 있는데 다시 이 문제를 다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잡식 가족의 딜레마>다. 2014년 완성돼 전주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고, 5월 개봉하는 이 영화는 출산과 육아를 맞이한 감독 자신이 돼지의 일생을 좇아간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새끼 돼지가 어미와 젖을 떼고 무럭무럭 자라나 도축장으로 향하는 아픈 여정이 엄마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황윤 감독은 공장식으로 축산되는 돼지의 잔혹한 현실을 바라보며 먹는 고기로서의 돼지가 아닌, 생명체로서의 돼지를 바라본다. 밥상 위의 돈가스가, ‘불금’ 저녁의 치맥이 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2000년대 초 폴 맥카트니는 육식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며 “만약 도살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거다”라고 말했다. 공장식으로 길러져 잔인하게 도살되는 축산업의 현실을 고발하는 멘트였다. 실제로 돼지, 소, 닭, 타조, 오리 등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육류는 비인도적인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진다. 암탉은 날개 하나 펼 공간 없는 케이지 안에서 알을 낳는 기계로 생을 살고, 돼지들은 빠른 번식을 위해 주사를 맞고 몸이 배로 뻥 튀겨진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공장식 축산 농장과 복지 축산(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동물 보호를 고려한 방식) 농장을 교대로 보여주는데, 몸 돌릴 공간조차 없는 스톨 속 돼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농담으로 4D 영화로 만들어야 했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냄새가 독하다. 이건 돼지들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비좁은 공간에 수십 마리의 돼지를 몰아넣고 사육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스톨과 케이지 사육이 불법이 됐다.” 살처분 후 황폐화된 농장을 다녀온 황윤 감독은 이후 한 달 넘게 피부병을 앓기도 했다. “포드 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식의 조립 공장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도축 공장에서 얻었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사육되는 방식이 그만큼 비인간적이라는 거다.” 도살의 현장은 더 끔찍하다. 영화 <패스트 푸드 네이션>에서 도살장 바닥은 피범벅이었고, <잡식 가족의 딜레마>에 등장하는 돼지들의 살처분 장면은 끔찍한 공포영화다. “촬영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편집하며 펑펑 울었다.” 구덩이에 내던져져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바라보는 돼지의 모습은 그저 맛의 탐닉을 위해 돈가스, 보쌈, 그리고 치킨을 즐기던 우리 밥상에 둔탁한 충격을 준다. 돼지는 고기 이전에 생명체였다.

채식과 육식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사실 지난하다. 채식주의자들은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채식의 우수함을 주장하고,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먹거리의 선택권을 근거로 그 주장에 반대한다. 어느 한쪽도 틀린 소리는 없다. 학계의 논쟁도 팽팽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전 세계 교통수단을 다 합친 것보다 축산업으로 인한 온난화가 더 심하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2008년 책 <잡식 동물의 딜레마>에서 육식을 자연 순환의 한 축으로 서술했다. 둘 다 환경문제를 고려한 해법이지만 결론은 정반대다. 그래서 착하게 길러서 착하게 먹자는 복지 축산 방식으로 타협하는 이들도 있다. 케이지에 가두어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방목하고, 성장 촉진제 등을 사용해 비정상적인 고기를 생산하는 대신 자연 상태에서 사육한 건강한 육류를 섭취하자는 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동물 복지 축산 농장 인증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잡식 가족의 딜레마>에서 복지 축산 농장에서 자란 돼지 ‘돈수(황윤 감독이 직접 이름을 붙였다)’는 스톨 축사에서 사육된 돼지들과 길 위에서 만난다. 자란 환경은 달라도 결국 이들의 목적지는 도살장이다. “복지 축산도 완벽하진 못하다. 복지 축산 농장에서 사육의 용이함을 위해 꼬리와 이빨을 자르진 않지만 평균보다 빠른 시기에 새끼 돼지와 어미를 분리하고 거세도 시킨다.” 실제로 영화 속 새끼 돼지 한 마리는 거세 이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결국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축산 시장 안에서, 잡식의 식탁 위에서 동물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남편은 ‘채식하던 스티브 잡스도 빨리 죽지 않았느냐’며 채식한다고 오래 사는 건 아니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물론 고기 먹을 권리 있다. 자동차 탈 권리 있다. 전기 사용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 농장을 돌려야 하고, 핵 발전소를 세워야 하고,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 그걸 알아버렸는데 내 권리만 요구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차려 먹는 밥상이다. 고기 애호가에게 소고기의 마블링은 포기하기 힘든 유혹일 수 있다. 하지만 내 밥상을 위해 누군가 고통에 신음한다면 쉽게 밥숟가락이 넘어가진 않을 거다. 황윤 감독은 이송희일 감독이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남긴 글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맛으로만, 단백질로만 추상화된 돼지, 소와의 애달픈 관계를 지적한 구절이었다. 1인분에 7,000원짜리 돈가스의 돼지가 아닌, 함께 들판을 뛰놀던 돈수란 이름의 돼지. 잡식 식탁에 미안한 찜찜함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