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공감

패션이 ‘엔터테인먼트’가 된 덕분에 우리 시대 여자들은 다들 패션의 달인이다. 그로 인해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해진 사안이 있으니, 바로 패션 공감 능력! 2015년 가을을 위해 누가 어떤 공감 능력으로 여자들을 사로잡았을까?

 

하트, 좋아요, 엄지척, 리트윗, 리그램… 디지털 세상에서 놀다 보면 특정 기사나 누군가 올린 사진과 글에 반응하지 않곤 못 배길 때가 있다. 그건 이런저런 이모티콘이나 제스처, 혹은 댓글로 표현된다. 특히 네티즌 의견에 반응하려면 공감과 비공감, 바꿔 말하면 위로 향한 엄지와 아래로 향한 엄지를 누르느냐 마느냐다. 이렇듯 공감 백배나 폭풍 공감 같은 용어는 물론, <스페이스 공감>과 <다큐 공감> 같은 TV 프로그램과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는 어떻게 공감을 얻는가> <잘 먹히는 공감실 전화술> 서적까지 그야말로 공감 전성기다. 사전적 의미대로 치자면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게 느끼거나, 혹은 그리 느끼는 기분’이 중요한 시대인 것.

공감은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한 달쯤 열린 2015 F/W 패션 위크에서도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캣워크와 관객 사이에 공감이 부족하면 실패한 쇼라는 얘기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맞이하는 객석의 여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저 10분짜리‘쑈’를 만든 셈. 이 시대 여자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옷들은 그저 뜬구름 잡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물론 패션쇼 임무 가운데는 판타지(제정신이 아닌 듯한 미친 카니발이라해도) 선사도 중요하지만, 여자들에게 살아 있다는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컬렉션은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요즘. 디자이너들이 여성들과 의사소통을 진정성 있게 나누려면 폭넓은 연령층과 다양한 인종의 여자들이 고객이 될 수 있고, 이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덕분에 많은 여자들에게 패션이 다시 재미있다고 느껴진 몇몇 순간이 들이닥쳤다. 당대 패션계의 막강 리더들은 여자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포인트를 건드리는가 하면, 친근하거나 특정 여성상을 제안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많은 여자들이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털어놓은 순간은? 바로 ‘할머니 옷장’이다(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할머니 네 명이 식탁에 앉아 수다 떠는 모습을 불편하게 여기는 여자가 있을까?). 런던 출신으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여는 여류 삼인방은 다들 영국 시골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할머니 옷장에서 보물을 건진 듯 보였다. 소박하고 옛날 냄새가 훈훈하게 풍기는 컬렉션을 준비했으니까. 셀린의 피비 파일로에겐 그 보물이 빛 바랜 얇은 솜이불이었고(살짝 뚱뚱해 보이긴 하겠지만 방한 효과에다 소매를 붙이고 뗄 수 있는 실용적 외투), 스텔라 맥카트니에겐 코바늘로 뜬 부엌 식탁보였으며(규칙적인 문양으로 손맛 나게 듬성듬성 뜬 그물 드레스는 안에 뭘 입느냐에 따라 표정이 100가지), 클로에의 클레어웨이트 켈러에겐 어린 시절 허리에 두르며 놀던 빈티지 패치워크 담요였던 게 분명하다 (갖가지 벨벳 옷감을 솜씨 좋게 패치워크했다). 또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데뷔 컬렉션과 LVMH 프라이즈 두 번째 수상자인 마르케스 알메이다 등은 할머니가 처녀 시절모양내고 다녔던 사진을 눈여겨본 게 아닐까. 아무튼 한때 유행했던 ‘할머니 옷장에서 건진’이라는 패션 표현이 올가을 패션지에서 다시 한번 자주 쓰일 전망이다.

 

할머니 옷장을 열어 놓고 놀던 소녀들 가운데 많은 여자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옷차림(20대 아가씨처럼 보이려고 애쓰던)을 런웨이에서 발견하며 애틋한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특히 미우치아 프라다의 달콤한 사탕발림 앞에서 매혹되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옷감과 실루엣의 다소 불편한 제약을 감내할 만한 마시멜로 색감과 어여쁜 장신구란!). 정말이지 패션 롤리타 신드롬이 프라다 주도에 의해 다시 일어날 조짐이다(카라 델레빈이 미국 <보그> 최신호 표지에 보랏빛 엠파이어 미니 드레스를 입고 플라스틱 꽃 브로치를 단 모습이야말로 이번 시즌 롤리타 신드롬의 간판 격). 샤넬의 칼 라거펠트, 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 로샤스의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지암바의 지암바티스타 발리 등도 인형놀이 삼매경에 빠진 소녀들을 묘사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물론 생로랑의 에디 슬리만 베이비돌 드레스를 입은 펑크 소녀는 어색할지 모른다(짙은 스모키 화장에 다 찢어진 망사 스타킹을 신은 펑크 키드). 그러나 세상의 모든 소녀들이 전부 착한 건 아니지 않나?

 

패션쇼 객석에 앉은 여자들 백 명이면 백 명 모두가 할머니 옷장만 뒤지고 앉아 있거나 소녀 시대에 주저앉아 있는 건 아니다. 과격한 성향의 남자 디자이너와 도발적 기질을 지닌 여자 디자이너들은 유별난 취향의 여자들을 위해 선택사항을 마련해뒀다. <아담스 패밀리>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젤리카 휴스턴과 심혜진처럼 폐허가 된 중세 유럽식 호러에 심취한 검은 여인들 말이다. 파리지엔느다운 완벽주의, 영국 빅토리아풍, 멕시코 촐라갱스터를 어둡고 세련되게 조합한 리카르도 티시 덕분에 더 극적으로 변신한 지방시를 그녀들은 대환영할 듯. 반면 알렉산더 왕은 스스로 전매특허라고 여길 만한 ‘스트리트&스포티즘’을 벨벳 하이킹 부츠의 메가플랫폼 힐 위에 한 가득 풀었다. 이거야말로 21세기 고스 걸의 전형! 마크 제이콥스의 고딕판 다이애나 브릴랜드, 알렉산더 맥퀸을 위한 사라 버튼의 핏빛 장미의 나날 또한 더없이 적절하다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한편 뉴욕, 런던, 밀라노를 거쳐 파리에 안착한 패션쇼 유람객들은 이 도시에서 다문화주의라는 이상적 주제가 캣워크 곳곳에서 떠오르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자신의 다양한 인생 경험과 창조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옷 한 벌 한 벌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일 년치처럼 완성한 랑방의 알버 엘바즈를 보자. 장교복과 투우사복, 70년대 이브 생 로랑의 히피 디럭스 시대, 북아프리카산 젤라바, 뉴욕에서 비롯된 제프리 빈풍의 현대미학, 모로칸 스타일의 카프탄 회색 울 코트, 간결한 외투에 타이로 맨 검정 태슬 등이 각각의 옷차림에서 마구 소용돌이쳤다. 엘바즈 내면에서 일어난 수많은 아이디어의 충돌이랄까! 사실 이런 룩에는 별다른 자막이나 설명 따위가 필요 없다. 그저 한눈에 봐서 즐겁고 신나면 그만이니까. 다양성과 다문화주의는 보헤미안식 해석 아래 이자벨 마랑, 버버리 프로섬, 클로에, 드리스 반 노튼, 안나 수이, 랄프 로렌, 디스퀘어드2, 토리 버치, 에트로쇼에도 등장했다. 여자들은 이제 디자이너들이 옷을 제공하는 개념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터득했을 것이다. 옷들이 더 깊고 풍부한 여성적 욕구와 감정들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다문화주의와 절충주의에 빠진 숙녀들 곁엔 다분히 현대적인 용모의 아가씨들이 진을 쳤다. 옛날 옛적, 빈티지, 혹은 앤티크에 사로잡히지 않고, 바로 지금 패션의 현재적 정의에 더 익숙한 그녀들 말이다. 그들은 루이 비통, 파코 라반, 디올, 셀린, 로에베, 캘빈 클라인, 까르벵을 향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특히 발렌시아가 시절 사수와 부사수쯤 됐던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패션 가문에 초현대적 비전을 성공적으로 주입하고 있다(그들의 결과물은 현재와 미래 중간쯤이라고 해야 적절하다). 모더니티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 이번 시즌 루이 비통이라며 여자들의 피를 들끓게 한 쇼라고 패션 전문가들이 고백할 정도. 심지어 지난 몇 시즌과 달리 사이즈도 넉넉해진 데다 선택의 폭도 넓었으니 그들의 반응이 호들갑처럼 들리진 않았다. 파코 라반으로 치면, 대도시 풍경을 프린트와 실루엣에 도입, 세련된 힙스터의 정체성을 수립해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맨해튼에서 일하는 직장 여성들의 자신감을 유럽인의 관점으로 해석한 라프 시몬스의 디올도 여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얻었다.

사실 현대적이다, 모던하다는 표현은 바로 지금을 일컫는 말. 그렇기 때문에 당대 모더니스트들의 공감 능력은 이번 시즌에 유효할지 모른다. 이런 2015년판 모더니즘에 시대초월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결국 미니멀리즘으로 귀결된다.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되돌려 놓은 채 옷의 본질(옷감, 재단, 색상, 그리고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완성된)에 집착하는 여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클린’한 컬렉션들이 편안해 보인다는 사실이야말로 여자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물론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의 에르메스는 돈이 꽤 드는 편안함이긴 하지만, 투자 가치가 높다는 데는 어느 여자라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질 샌더,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등은 패션 현대사에서 거의 모든 여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산 90년대식 차가운 미니멀리즘이 아닌, 좀더 위로와 평안을 제공하는 온기 있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줬다. 또 프로엔자 스쿨러, 빅토리아 베컴, 보스, 톰 포드 등의 뉴요커들은 물론, 밀라노의 막스마라까지(특히 막스마라에 대한 여기자들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그야말로 ‘여자여자’인 마릴린 먼로를 내세웠으니까).

 

올가을 캣워크가 여자들로부터 공감을 산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여러 세대와 다양한 인종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톱 디자이너들일수록 자신의 옷을 젊은 백인 모델들에게만 입히진 않았다(요즘 같은 세상에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인물이 있다면 존 갈리아노처럼 업계에서 매장당할지 모른다). 대신 다국적 모델들이 런웨이에 등장해 여성상의 다문화주의를 보여줬다(동서양 혼혈을 포함, 수많은 인종의 모델들이 대거 등장한 적은 이번이 처음). 호주에 사는 분홍 머리의 동양인 소녀 페르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미카 아르가나라즈, 멕시코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 리시 등등. 이런 다양성이 여성상의 수평축을 형성했다면, 수직축으로는 여러 세대의 여성들을 아우르며 공감을 얻었다. 1978년생 에린 오코너(마크 제이콥스)부터 1985년생 사샤 피보바로바(샤넬)는 물론, 10대 후반 흑인 소녀 리니지 몬테이로까지, 거의 20년이란 세대 격차를 보여줬다. 물론 40kg 정도밖에 안 되는 비쩍 마른 모델들로 인해 체형에선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