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 식당

서울 도심이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하다. 이태원을 중심으로 지금 서울에선 BBQ 식당이 성황이다. 근데 왜 우리는 우아한 레스토랑의 먹방을 포기하고 실내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을까. 지금 가장 와일드한 서울의 테이블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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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그릴 레스토랑 세븐스프링스가 지난 8월 BBQ 페스티벌을 열었다. 폭립, 윙봉, 새우 등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프로모션이었는데, 건강한 채식을 중심으로 어필하는 레스토랑의 행사로는 꽤나 거했다. 기욤의 고향 집 캐나다로 놀러 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청년들도 질펀한 육식의 한 상을 차렸다. 이들은 넓은 정원 한쪽에 그릴과 석쇠를 깔고 직접 고기를 구우며 칼로리 폭식을 했다. TV에서도, 동네 레스토랑에서도 바비큐가 붐이다. <아메리칸 셰프>의 쿠바 샌드위치, 그리고 조금씩 인기를 탄 미국 남부 스타일의 퀴진 트렌드는 이제 서울을 완전히 연기 자욱한 육식 마을로 만들고 있다. 이태원 바비큐의 시초라 할 만한 ‘라이너스 비비큐’에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문 앞에 줄을 서고, 바비큐의 사이드 메뉴인 그릴드 콘은 길거리 군것질거리로도 인기 좋게 팔린다. 이태원, 경리단길, 그리고 해방촌에서 지금 맛집으로 검색되는 BBQ 레스토랑은 거의 열 곳에 이른다.

사실 바비큐는 요리 이름은 아니다. 굳이 의미를 나누자면 단시간에 강한 불로 굽는 게 그릴, 장시간에 중간 불, 연기로 고기를 구워내는 게 바비큐고, 통례적으로 케이준 스타일을 비롯, 미국 남부의 돼지고기 식문화를 총칭한다. 장작에 지핀 불로 장시간 구운 돼지는 거칠게 뜯거나 빵에 넣어 샌드위치로 먹고, 사이드로 코울슬로, 옥수수 콘, 구운 브로콜리 등을 더해 플레이트를 완성한다. 고기 맛 못지않게 훈제의 향이 중요하고, 그래서 바비큐를 커피의 로스팅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녹사평대로 한쪽에 위치한 ‘매니멀 스모크 하우스’는 그 정통에 가장 가까운 바비큐 레스토랑이다. 좁은 입구에 들어서면 장작이 가득 쌓여 있는데 고기가 그만큼 적절한 훈제의 맛을 낸다. 메인 메뉴인 풀드 포크(Pulled Pork)는 오랜 시간 쐰 연기가 고기에 구수한 향을 내고, 포크 스페어 립(Pork Spare Rib) 역시 두툼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이 제대로 고기 먹는다는 기분을 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의 장점은 작은 사이드 메뉴 하나 하나가 충실하다는 거다. 크랜베리로 드레싱한 코울슬로는 상쾌한 입가심으로 어울리고, 알맞게 구워 살짝 간을 한 브로콜리는 고소하다. 분명 영어, 혹은 거친 한국어로 서빙할 것처럼 생긴 다소 거친 인상의 외국인 점원들 서비스도 친절해서 좋다. 메인 메뉴 하나에 사이드 두 개만 시켜도 맛과 무게 모두 밸런스 맞춰 즐길 수 있는 곳. 이태원 바비큐집 중 으뜸이다.

요리는 지역 따라 맛도, 형태도 달리한다. 미국 남부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 쪽은 좀더 시큼한 소스를 뿌려 먹고, 렉싱턴 스타일(Lexington Style)이라 불리는 바비큐는 케첩을 주요 드레싱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서울에선 그게 아마 플레이트 메뉴로 정착 중인 것 같다. 이태원의 바비큐 레스토랑은 대부분 풀드 포크에 빵, 그릴드 콘, 브로콜리 등을 한 접시에 차린 플래터로 바비큐를 서비스한다. 이태원 ‘라이너스 비비큐’의 인기 메뉴는 풀드 포크, 양지머리를 의미하는 브리스킷을 각각 프렌치프라이, 번, 코울슬로와 매치한 플래터며, 그랜드 하얏트 호텔 올라가는 길의 ‘로코스’ 역시 양지, 립 등을 야채 번 등과 조합한 메뉴를 서비스한다. 해방촌의 ‘홀리 스모크,’ 녹사평 언덕길의 ‘킨더’도 플래터 메뉴가 중심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린 접시가 다 그렇게 조화로워 보이진 않는다. 바비큐 레스토랑이라면 고기가 메인이 되어야 함에도 가늘게 썰어 튀긴 감자가 더 푸짐한 접시도 있고, 고기보다 빵이 더 큰 접시도 있다. 그리고 정말로 20~30시간 훈제로 조리했나 의심스러운 질감과 향의 고기도 있다. 특히나 그저 구색 맞추기용으로 보이는 사이드 메뉴는 없느니만 못하다. 마요네즈로 버무린 코울슬로는 고기도 물리게 할 정도로 느끼하고, 양념만 가득 친 옥수수 콘은(마약 옥수수라 불리며 인기 상품이지만) 그냥 음식이라할 수 없을 정도의 재앙이다. 게다가 샌드위치로 먹으라고 나온 빵과 고기의 질감이 따로 노는 수준의 플래터도 있다. 그저 푸짐하게 쌓아 올리면 돈값은 한다는 비루한 생각의 결과다. 허울 따라 거창하게 차린 BBQ 테이블에 맛의 실속은 없다.

갈비살, 항정살, 양지머리살, 가브리살. 먹방 타고 돌고 돌던 트렌드가 지금 BBQ 테이블에 도달했다. 시간 내 야외 피크닉을 즐기지 못한다면, 훈제 냄새 가득한 고기의 육즙을 즐기고 싶다면 레스토랑 탐방하며 바비큐 한 판은 어떨까. 잘만 찾으면 미국 남부의 와일드한 테이블이 서울 한복판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