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10:00 1 Oct, Paris

지방시 하우스의 첫 여성 수석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데뷔 쇼에 배우 이동욱이 초대됐다. 데뷔 18년 만의 첫 파리 패션 위크에 〈보그〉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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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션 위크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지방시 하우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 첫 쇼에서
여성복과 남성복을 모두 선보이는데, 한국에서는 남자 셀러브리티를 초대할 예정이에요. 키가 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인물로 누가 있을까요?”

체크 패턴의 브라운 롱 코트와 팬츠, 블랙 니트 풀오버와 더비 슈즈는 지방시(Givenchy).

체크 패턴의 브라운 롱 코트와 팬츠, 블랙 니트 풀오버와 더비 슈즈는 지방시(Givenchy).

블랙 울 터틀넥 톱과 레드 라이닝의 코트, 컬러 블록 스니커즈는 지방시(Givenchy).

블랙 울 터틀넥 톱과 레드 라이닝의 코트, 컬러 블록 스니커즈는 지방시(Givenchy).

그로부터 한 달 뒤, 파리 패션 위크가 중반으로 접어들던 9월 28일. <보그>와 전화 통화를 마친 지방시 하우스에서는 이동욱의 이름이 호명됐고, 그가 데뷔 18년 만에 처음으로 파리 패션 위크에 참석하게 됐다. 지방시의 블랙 풀오버와 팬츠, 스니커즈 차림으로 인천 공항을 빠져나가는 공항 룩 사진이 SNS에 도배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고 도착했기에 다소 피곤한 상태였지만, 패션쇼 참석을 위한 공식 일정까지는 이틀간의 자유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오후, 몽마르트르부터 생토노레 쇼핑가까지 파리 명소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그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자 소식에 밝은 팬들이 그의 호텔 앞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심지어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곳곳에서도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소녀 팬들의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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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첫 지방시 쇼가 공개되는 10월 1일. 지방시 패션쇼는 이날의 첫 쇼로 아침 10시 정각에 예정돼 있었다. <보그 코리아> 팀은 쇼장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친 이동욱과 먼저 조우했다. 첫 파리 패션 위크 참석인 만큼 꽤 상기돼 보였지만, 특유의 쾌활하고 여유로운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보그> 인스타그램을 위한 인사말 녹화를 위해 방돔 광장 한가운데 선 이동욱은 미리 준비해 건넨 멘트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얘기했다. 심지어 “방금 지나간 트럭 소리 좀 거슬리지 않아요? 다시 하죠!”라며 스스로 재촬영을 제안할 정도로 사려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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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브라운 톤의 체크 롱 코트와 날씬한 팬츠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이동욱이 쇼장에 도착했다. 장소는 패션쇼를 위해 처음 개방되는 파리 최고 재판소. 프랑스 최고의 사법 중심지인 데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만큼 매우 엄중한 보안 검색이 이뤄지고 있었다. 포토콜 타임 등을 감안해 약간 여유롭게 도착했지만, 이미 쇼장 앞은 이동욱의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칸에서 날아온 국제 팬클럽 헤드를 비롯, 밀라노에서 방금 도착했다는 팬과 한국 팬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이동욱! 이동욱!”을 연호했다. 이날 쇼장에는 줄리안 무어와 판빙빙, 케이트 블란쳇 같은 슈퍼스타들도 입장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도깨비만큼 거대한 팬 군단을 이끌고 온 사람은 없었다. 매너 좋은 신사답게 이동욱은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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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쇼는 파리 최고 재판소의 거대한 복도를 통째로 런웨이 삼아 시작됐다. 전임자보다 좀더 현실에서 입을 수 있고 실용적인 여성복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엔 요즘 멋쟁이 남자들이 선호할 만한 스키니 실루엣의 옷도 이어졌다. 매력적인 스타일링의 남성복 룩이 등장할 때마다 프런트 로에 앉은 이동욱의 눈길도 바빠졌다. 68벌이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등장했다 사라졌고, 첫 쇼를 무사히 치른 디자이너가 등장하자 이동욱 역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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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를 뚫고 겨우 쇼장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렸다. 그러나 <보그>와 이동욱의 파리 일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동욱과 함께 비 오는 파리 거리에서 화보 촬영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콜타임은 물론, 점심도 거른 데다, 우중 촬영이라니. 이거야말로 셀러브리티 촬영의 악재 세 가지가 모두 합쳐진 상황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렉상드르 다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걱정은 소심한 눈치 보기에 불과했을 뿐. 날씨처럼 푹 가라앉은 스태프들의 분위기를 눈치챈 이동욱이 오히려 촬영장 공기를 가볍게 띄우듯 쾌활하게 말을 건넸다. “여기 참 예쁘군요. 저 아래 센강에 배도 지나가고, 분위기 정말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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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코트가 흠뻑 젖을 만큼 세차게 비가 내렸지만, 그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카메라 셔터를 즐겼다. 비 내리는 파리 분위기에 감정 이입이라도 한 것처럼 완벽히 몰입한 듯했다. 파리는 비에 젖었지만, 마음만은 보송보송해져 콧노래가 흘러나왔던 10월의 첫날.

‘When October goes. The same old dream appears. And you are in my arms. To share the happy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