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내면의 눈을 가진 제임스 진

2019.05.28

by VOGUE

    내면의 눈을 가진 제임스 진

    삶의 면면을 신화의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아티스트 제임스 진이 〈보그〉 6월호 표지에 또 하나의 옷을 입혔다. 언젠가 꿈결에, 어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그는 우리 삶에 환상과 상상을 보탠다.

    Aurelians, 2016, Acrylic on canvas, 152.4×183cm ©2019 James Jean.

    예술가란 내면의 눈을 가진 존재다. 제임스 진(James Jean)의 ‘Descendents-Blue Wood’의 시작점이 롯데월드타워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명제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부분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로 설명하는 123층 건물을 보며 <잭과 콩나무>를 떠올리는 사람은 몹시 드물고 그 생각을 시각화하는 경우는 더 드물기에 제임스 진은 독보적이다. 그가 창조한 환상적 세계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꽃씨처럼 절대다수에게 각기 다른 영감으로 가닿는다. 그는 자기 작품이 인간의 잠재력과 고귀함 그리고 상상력의 본보기로 남을 거라고 믿었다. 그 바람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상당 부분 이루어진듯하다. 일단 롯데월드타워에 하늘에 도달하려는 소년의 내러티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자리한 제임스 진의 작업실은 영감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보그> 표지 작업은 태블릿으로 이루어졌다. 놀라움을 자아내는 작업 과정은 <보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공개할 예정이다.

    제임스 진의 작품은 환상적이다. 동화나 신화 같은 구석이 있다. 지상과 천상 사이 어딘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 보인다. 롯데뮤지엄에서 9월 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를 보고 나면 더 확실해진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현실과 환상이 혼합과 변형을 거쳐 재창조된 시공간은 ‘제임스 진의 세계’라고 명명할 수밖에없다. 대만계 미국인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느꼈던 작가의 정체성은 오히려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변종을 낳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과 다르지 않다. 어릴 적 해부학에 골몰했던 시기는 그림체를 완벽에 가깝게 만들었고 미국 코믹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역적 구분이나 공통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심리적 무국적 예술가에게 보내는 관심은 동서양 구분할 것 없이 뜨겁기만 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미세하게 환각마저 일으키는 작품은 무의식의 발현 같지만 그 출발점은 상당히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미국과 멕시코가 정치적 문제로 이주자와 자녀를 분리한 사건, 과거 새를 훈련시켜 물고기를 잡던 중국 전통의 변질, 이상 기온으로 꽃이 한꺼번에 만개했던 순간 같은 뉴스와 사건이 영감이 된다. 삶의 다양한 면면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환상적인 신화의 공간으로 변모했을 뿐 그의 작품에는 현실과 현재가 담겨 있다. 이 연결 고리가 던지는 질문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제임스 진은 이번 전시에 길이 10m의 초대형 회화 여섯 점을 선보였다.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은 ‘오방색’을 주제로 삼았다. 사이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사이를 걸어갈 때 전해지는 흡입력은 대단하다. 분명 평면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인데도 수많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를 모른 채 주관적 감상에 의존해 바라봐도 그렇다. 한 폭의 그림이 책 표지이고 그 뒤로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이 시작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내러티브의 세계가 견고한 이유를 2001년부터 그래픽 노블 잡지 표지를 그렸던 경력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독창적인 상상력이 점철된 작업으로 제임스 진은 아이스너 어워드를 5년 연속 수상하고, 하비 어워드 ‘최고의 커버 작가’로 총 네 번 선정되었다. 그래픽 마블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쌓은 그는 2008년 본격적으로 순수예술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폭의 그림으로 전체 이야기를 담는 작업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마더> <블레이드 러너> <사자> 같은 영화 포스터로도 이어지고 있다. 프라다와 협업으로 거대한 풍성한 주름이 잡힌 스커트, 주머니가 여럿 달린 벨트 백, 사각형 클러치 등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작년 한 해 우리는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핑크 토끼로 가득한 프라다 가방을 손에 넣지 못해 안달한 바 있다). 누군가에게 <보그> 표지를 맡긴다고 가정했을 때 제임스 진보다 더 기대되는 이름은 없었다. 설명 없이도 이야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예술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보그>는 지금 가장 떠오르는 모델 윤보미, 박희정이 여릿한 수풀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동화’를 이룬 사진 한 컷과 세 가지 키워드 ‘Wild’ ‘Natural’ ‘Girls’를 적어 제임스 진의 로스앤젤레스 작업실로 보냈다. 그리고 한 달 뒤, 수풀을 거닐었던 소녀들의 한순간에 꿈결 같은 이야기가 더해진 결과물이 돌아왔다. <보그> 표지에 덧입힌 세계는 제임스 진이 본명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시원한 그늘을 찾는 것처럼 어린 소녀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서로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소녀들을 둘러싼 많은 식물과 동물의 모습이 마치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 같았지요. 더위를 머금은 여름의 흙에서 잘 자라는 꽃봉오리가 떠올랐습니다. 두려움 없이 덩굴나무에 매달린 꽃봉오리는 젊음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작은 아기 염소는 농부의 테이블 아래 그늘에서 낮잠을 잡니다. 소녀의 등에 자리 잡고 앉은 백조 한 마리는 변화의 메신저입니다. 크고 튼튼한 날개로 소녀들을 또 다른 세계, 다른 계절로 안내합니다. 그렇게 백조와 소녀들은 하나가 됩니다.”

    잡지 표지 작업을 즐기는 편인가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주얼적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과정을 즐깁니다. 보통 텍스트를 먼저 읽고 스크립트를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한 폭의 그림으로 전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저는 표지 그림이 사람들을 끌어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독자들이 그림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속에 담긴 비밀과 디테일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오방색을 주제로 한 신작이 인상적입니다. 오방색을 들여다보면 우리 조상이 색깔에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 색깔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거나 특정 색깔로부터 감정을 느끼기도 하나요.
    파란색과 남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도자기 색깔에 항상 눈길이 갑니다. 이 두 색은 아주 표현적인 색인 동시에 어두우면서 밝고, 역동적이면서도 차분하다고 생각해요. 깊은 바다와 하늘을 연상케 하고 명상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 푸른색과 대조적으로 핑크색을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 푸른색에 핑크색으로 하이라이트를 주는 식이지요.

    롯데월드타워를 보고 여행하는 소년을 떠올려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롯데월드타워는 한국에서 굉장히 현대적인 건축물입니다.
    롯데월드타워가 현실감이 없이 너무 높아서 신화같이 느껴졌습니다. <잭과 콩나무>가 떠올랐지요.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인데, ‘디센던트’에는 동서양 어디에도 속하지않는 제 정체성이 담겨 있어요. 꿈을 꾸는 동안에는 계속 떠다니는 거죠. 제 아들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해요. ‘Descendent’와 ‘Descendant’가 각각 ‘하강하다’와 ‘후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 두 단어로 재미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디센던트’라는 캐릭터는 하나이고 제 안에서 페인팅, 조각,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옵니다.

    회화 작품의 경우 정지한 장면이라기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한 편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림은 새로운 차원으로 통하는 창이자 모든 세계를 담고 있는 용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깊고 충분한, 여러 층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우리 내면에 자리한 무의식을 끌어내고자 합니다. 깊은 곳 어딘가에 공통적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거든요.

    신이라든가 요정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를 믿나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작업을 할 때는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거든요. 무의식이 영적인 어떤 곳으로 가려고 하면, 제 의식은 세금이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웃음). 둘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의식이 무의식의 창조적인 면을 지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종류의 사고에 열려 있어요.

    꿈도 자주 꾸나요.
    네, 자주 꿉니다.

    10m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사이즈로 작업했습니다. 사이즈가 주는 압도감이 있습니다.
    작업을 하기 전에 전시장을 두 번 정도 방문했는데 굉장히 크고 긴 벽이 무섭게 느껴지는 동시에 영감을 줬어요. 캔버스로 여겨졌고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이들어서 흥분됐죠. 이번 신작은 오직 이 공간을 위해서 완성된 작품입니다. 뉴욕에 자리한 프라다 센터에 그린 벽화의 경우 한 블록을 다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긴데 이 뮤지엄의 벽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연작처럼 걸어가면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벽화는 일주일 정도 한정된 시간 동안 작업을 하지만 전시장에 있는 큰 그림을 위해서는 1년이라는 훨씬 긴 기간 동안 작업을 해야했어요. 온몸을 다 사용한 작업 자체가 새로웠어요. 보는 이들에게도 엄청나게 느껴졌겠지만 저한테도 그랬어요. 이번 작업을 끝내고 평소 작업 사이즈로 돌아왔는데 너무 작게 느껴졌죠(웃음).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정말 새로운 작업이었습니다.

    Descendents-Blue Wood, 2019, Acrylic on canvas, 335.2×1097.2cm ⓒ2019 James Jean.

    매일 정확히 7시에 작업실에 가서 작업을 했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인가요.
    심혈을 기울여서 조심스럽게 작업하지는 않아요. 매일 스튜디오에 있을 뿐입니다.

    너무 정교해서 손으로 그렸는지 디지털로 구현했는지 구별이 안 돼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봤습니다. 작업 기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완벽한 드로잉을 구현하나요.
    의도한 적 없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영감으로 작용하는 것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항상 새로운 알레고리와 신화를 접하려고 합니다. 그 안에서 정체성과 의미를 찾으려고 해요. 각기 다른 문화가 여러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근원에는 공유하는 지점과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픽 노블 잡지 표지를 그렸던 경험은 어떻게 남아 있나요.
    전통적인 동화에 어둡고 무서운 캐릭터와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화를 새롭게 탐험하고 연구하면서 어른에게 접목시키는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런 내러티브가 새로운 페인팅에 영향을 주기도 했어요.

    긴 머리, 정맥, 파도처럼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선이 끊기지않는 드로잉을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머리카락이 제 드로잉 스타일과 잘 맞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전체적인 구상을 할 수 있어서 좋고요.

    대체로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어리거나 늙은 모습입니다.
    저 자신을 투영하는 존재를 그리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스스로를 묘사하고 싶지도 않아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합니다. 여성은 뮤즈로서 등장하고 남성은 캔버스 바깥에 자리 잡고 있는 역할이에요.

    그림 자체가 자신이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형태는 빠져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대만계라는 뿌리가 동양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는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뉴욕에서 학교를 나왔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어요. 당시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자주 갔는데 여러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좀더 다양한 아시안 문화를 접할 수 있었어요. 사실 어릴 때는 미국 문화에 동화되기위해 힘쓰느라 대만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아시아 문화에 이끌렸죠. 중국의 두루마리 서화, 일본의 목판화와 만화 등을 보면서 아시아에 선이 발달했고 이 선의 발달은 서예로부터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려한 선을 표현하는 능력이 제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에 서양과 동양 문화의 충돌과 융합이 담겨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문화의 전파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이제 굉장히 손쉽게 타인과 이어집니다. 이런 발전은 외계인이나 이방인처럼 느끼곤 했던 고립감을 옅어지게 했을까요.
    인터넷이 발달함으로써 리서치가 훨씬 쉬워져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뉴욕에서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당시에 도서관에서는 매거진 등에서 찾은 이미지를 클립해서 보관해놨어요. ‘자동차’에대한 파일을 열면 사서가 선별한 엄청나게 다양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죠. 이미지를 통해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곤 했어요.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정크가 있어 공급이 과도하고 모든 걸 너무 빠르게 만들어요. 우리가 어릴 때는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기도 했어요. 인터넷에는 행복한 우연이 없는 것 같아요.

    그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작품 5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는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전은 롯데뮤지엄에서 9월 1일까지 이어진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싶나요.
    지금이 아니었다면 예술가로 활동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대를 경험했어요. 전통적인 방식도 배웠고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표준이 되었거든요. 과거도 알고 그 이후도 알아요. 인터넷은 제 작품을 바깥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해줬어요. 예전에 저는 어떤 연결점이나 유리한 점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제 작품을 보여주기 힘들었어요. 기술이 발달한 후 컴퓨터 뒤에 숨어서 인터넷이 제 작품을 퍼뜨리도록 했어요. 과거에 갤러리가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작가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쌀농사를 지었을 것 같아요(웃음).

    어떤 소년이었나요.
    어릴 때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를 표현하길 좋아했어요. 아시안이 많지 않은 뉴저지에 살면서 고립감을 많이 느꼈고 상상으로 여행을 많이 떠났어요. 학교에서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지내는 듯 보였지만 제 안에는 외로움이 많았고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뉴욕 대학에 진학하면서 진지하게 작업 활동을 시작했고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고 아시아 문화를 많이 접하면서부터는 편안함을 느꼈어요. 중국어도 못하고 아시아 문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이 모든 과정이 저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생각해요.

    전시 제목 ‘끝없는 여정(Eternal Journey)’이 떠오르는 설명이군요.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그 제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환이 된 시점이나 작품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제 작품은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스토리북 같았다면, 어느새 어두운 추상화가 되었고, 다시 감정을 담은 스토리북으로 변했어요. 4년 전에 아들이 태어나면서 주변에 장난감이나 동화책이 많아졌어요. 스튜디오나 집에서 작업할 때마다 보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밝고 생동감 있는 색상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생긴 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보다 가족을 향해 에너지를 발산하게 됐는데 그런 영향으로 작품도 변한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 걸어둔 아들의 사진이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로 변화는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놓곤 합니다.
    작년에 도쿄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Kaikai Kiki Gallery)에서 긍정성에 대한 전시를 했어요. 아들이 주는 에너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굉장히 밝고 가벼운 느낌의 그림이었어요. 사람들 반응이 정말 좋았는데 그들로부터 받은 에너지가 다시 제게 돌아왔어요. 엄청나게 순수한 에너지를 가진 아들이 제 작품 세계를 바꿔놓은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이 편안해지기도 했나요.
    그림은 똑같아요. 모든 게 고통스럽죠.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끌어 올려야 하니까요.

    작업할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순간은 없어요. 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그저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바랍니다. 요즘은 가족이나 휴대폰과 같이 집중력을 깨뜨리는 요소가 많아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차 한잔과 집중할 수 있는 몇 시간만 주어진다면 좋을 것 같아요.

    팟캐스트나 다큐멘터리를 들으며 작업한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정보에 중독되어 있다고도요. 전 세계에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일을 전해 듣노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Morphic Residence’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 모두 어떤 기억을 갖고 태어나고, 공통적인 기억이 연결된다는 생각이죠. 과학적으로 이유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코끼리는 기억력이 엄청 좋아 고대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런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곤 해요. 철학적으로 생각하게끔 도와주기도 하죠.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줄 수 있나요.
    원래 프랭크 게리가 1974년에 디자인한 아트 갤러리였어요. 1년 넘게 매물로 나와 있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평범한 사람이 화이트 박스와 커다란 창문이 있는 아트 갤러리를 집으로 선택하긴 힘드니까요. 철거가 논의되고 있던 2014년 즈음 구입해서 제 친구 댄 브룬(Dan Brunn)과 함께 리모델링했어요. 이웃들은 제가 이 집을 지켰다고 아주 좋아한답니다. 가운데 아주 큰 화이트 박스가 있고 자연광이 천장에서 고르게 들어와요. 앞모습과 뒷모습이 아주 흥미로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연결점이 있는 디자인이 아주 흥미로워요. 한 독립서점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서점 주인이 예전에 이 집에 살던 분의 딸이었던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분의 또 다른 딸은 제 캔버스를 만드는 남자와 결혼했고요. 캔버스를 만드는 남자분이 저희 집 주소를 듣더니 그곳이 자기 처가였다고 했을 때는 정말 놀라웠어요(웃음). 에드 루샤 같은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작가들이 저희 집에 자주 파티를 하러 왔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이 예술 문화의 전통을 유지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새롭게 골몰하는 이슈가 있나요.
    늘 인류 문화의 공통적 알레고리에 기반한 작업을 해왔어요. 삶과 현실이 다르고 문화 전쟁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젠더 이슈나 난민 이슈가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하나의 큰 스펙트럼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존중하고 이 부분을 늘 작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정리해준다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목예린, Courtesy of Lotte Museum of Art
      작가
      제임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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