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3rd 2019 Koln

Fashion

October 23rd 2019 Koln

2019-12-03T15:52:29+00:00 2019.11.27|

투박한 알루미늄이 이뤄낸 라인강의 기적.

클래식한 러기지의 커스터마이징 버전 ‘유니크’를 제작하는 과정.

공항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눈에 띄는 트렁크가 있다. 리모와다. “심플한 디자인, 엄청난 가격이 특징이죠.” “금색과 은색 트렁크를 처음 선보인 게 리모와였던 것 같아요.“ “‘간지’로는 최고죠. 여자들이 왜 명품 백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아요.” “스티커 붙이기 좋죠. 그래서 나만의 트렁크를 만들 수 있어요. 트렁크가 다 비슷하잖아요.” “여행용 캐리어의 ‘끝판왕’ 아닐까요?” 샘소나이트와 만다리나덕이 여행 가방 시장을 평정하던 시절, 반짝이며 군더더기 없는 알루미늄 트렁크의 등장은 이토록 신선했다.

리모와의 고향은 독일이다. ‘리모와’가 아닌 ‘리모바(Rimowa)’로 불리는 이 브랜드의 본사는 독일 중서부 쾰른에 있다. 떠오르는 건 대성당뿐인 쾰른에서 리모와 러기지가 탄생했다고? 2017년 LVMH 그룹에 인수된 후엔 펜디, 슈프림과 협업으로 또 한번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27세의 젊은 CEO 알렉상드르 아르노와 함께 네온 컬러, 로고 플레이 등 러기지 이미지를 다각도로 넓히고 있다. 그런 리모와 쾰른 공장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리모와는 곧 클래식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손잡이와 가죽 태그, 바퀴, 세 개의 컬러를 고객이 직접 조합할 수 있는 서비스 ‘리모와 유니크’를 선보인다.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출시 직전, 리모와는 쾰른 공장으로 나를 초대해 클래식 수트케이스의 공정을 공개했다.

빨래판처럼 홈이 평행으로 파인 케이스의 고유 디자인(그루브)은 1950년 항공기 개척 시대에 고안된 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1937년부터 알루미늄 수트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여행 가방 제조가 본격화된 건 1950년대부터. 쾰른 본사 사무실 옆에는 그 수트케이스를 꼭 닮은 컨테이너 공장이 줄지어 서 있다. 1986 년 지어진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 건 기계 압력으로 평평하고 매끈한 은색 알루미늄 시트에 아이코닉한 그루브를 새기는 모습이었다. 텔레스코픽 핸들과 로고 배지, 휠 하우징(바퀴를 고정하는 부품 작업) 등의 조립을 위한 시트 커팅과 펀칭 작업이 바로 이어졌다. 그런 뒤 각 시트의 모서리를 구부리고 나면 케이스 조립이 시작된다. 여기까지의 생산 과정을 최첨단 로봇이 맡았다면 다음 모든 단계는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친다. 각 알루미늄 프레임을 연결하고, 양극 산화 처리(이 과정을 통해 알루미늄의 다양한 색을 얻는다)된 알루미늄 로고 배지를 장착하고, 바퀴와 휠 하우징 작업을 추가한다. 텔레스코픽 핸들 부착 후 글루를 사용해 셸에 고정하고, 케이스가 바닥에 잘 고정되도록 슬라이더를 추가한 뒤, TSA 잠금장치 및 가죽 핸들을 더하면 반쪽 케이스가 거의 완성되는 셈이다.

다음 단계는 웨딩(Hochzeit). 두 개의 상하단 셸을 세 개의 경첩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두 개의 셸이 잘 맞물려야 완벽한 트렁크가 완성되기에 작업자들은 이 작업을 ‘결혼’이라고 이름 지었다. ‘호흐차이트’ 과정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최첨단 시스템에서 케이스를 신속하고 정밀하게 만들었다.

1977년 제품의 긴 수명을 예찬하기 위해 전면이 스티커로 덮인 알루미늄 케이스를 처음 선보였다.

이 과정이 끝난 케이스는 품질을 높이는 엄격한 관문을 거친다. 완벽한 균형 유지와 매끄러운 케이스를 위한 망치질, 내부 안감 부착 작업, 러기지 덮개 부착 작업 등을 거치면 또다시 ‘테스트랩’으로 보내 여러 가지 안정성 검사를 받는다. 손잡이와 텔레스코픽의 반복적인 리프팅 테스트, 바퀴와 셸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컨베이어 벨트 테스트, 공항 수하물 취급 시뮬레이션을 위한 드롭 테스트, 핸들의 성능 시험을 위한 흔들림 충격 테스트, 노후 방지를 위한 실내 온도 조절 테스트까지.
침대나 자동차 CF에 등장할 법한 공학적 시스템이 구비된 연구실에서 수백만에서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쳐 통과된 케이스만 당신을 만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알루미늄이 케이스 소재로 쓰인 건 1930년대 본사의 ‘비운’과 함께 시작됐다는 것(회사는 1898년 설립됐다).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대부분의 소재가 타버렸지만(공장 바로 옆 아카이브 박물관에는 1930~1950년대 제작된 나무, 가죽 같은 소재의 케이스도 전시돼 있다) 알루미늄만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즉시 회사는 알루미늄을 러기지에 적용해 지금의 케이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리모와의 독특한 노하우는 신소재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완성된 것이다. 2000년 초경량 소재 폴리카보네이트를 러기지에 적용한 것도 리모와다.

공장에서는 커스터마이징 오리지널 러기지 ‘유니크’ 외에 디올 협업이 한창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리모와는 노하우는 유지하되 최첨단 유행은 물론 밀레니얼과 접점을 찾는 중이다. 독일식 디자인에 우리가 갖는 선입견이라면, 선이 굵고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질주하는 자동차와 항공기를 만드는 세심함과 예술적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독일에서 탄생한 여행용 케이스가 우리와 잘 맞는 건 그 실용성과 미니멀리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