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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 된 ‘미셸 위’ 인터뷰

2016.03.17

by VOGUE

    여신이 된 ‘미셸 위’ 인터뷰

    골프월드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스타로 손꼽히는 미셸 위가 이번엔 여신이 되어 필드 위에 섰다. 이 아리따운 스무 살아가씨에게 영화 〈베가 번스의 전설〉속 시에나 밀러처럼 30년대의 우아함과 낭만을 곁들인 드레스를 입히자 숨겨진 아름다움이 두 배로 증폭되었다.

    핫핑크 컬러의 올인원 수트는 루이비통(Louis Vuitton), 금장 버튼 네이비 재킷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McQueen by Boon The Shop), 뱅글은 스와로브스키(Swarovski), 화이트 슈즈는 디올 옴므(Dior Homme).

    연한 핑크빛 플리츠 드레스와 블랙 크롭트 재킷은 샤넬(Chanel), 화이트 옥스포드 슈즈는 코데즈 컴바이(Codes Combine), 화려한 네크리스는 마담 레브(Madame Reve at 10 Corso Como), 깃털 장식의 모자는 비터 앤 스윗(Bitter&Sweet), 왼쪽 새끼손가락 반지는 로에베(Loewe), 약지에 낀 블루 원석 링은 디올(Dior), 나머지는 모두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왜 미셸 위(Michelle Wie)만 서면 고요한 그린도 허리케인의 한복판으로 운반되는 걸까. 영광의 홀인원은 마치 1천만 달러의행운과 재난을 동시에 빨아들이는 것 같은 태풍의 눈으로 소녀에게 닥쳐왔다. 그건 끝나지 않는 게임이다. 이기든 지든 판돈은 계속 올라가는 스포츠 자본주의의 이상 과열 속에서. 한때 여자 타이거 우즈였다가 잘 차려입은 그린 위의 ‘치어 리더’라는 치욕까지, 출렁이던 프로 데뷔 2년의 시간.

    미셸이 출전한 경기는 드라마틱하다. 단독 2위를 달리다가 스코어 카드에 사인을 안 해서 실격 당한 일, 드롭을 잘못해서 실격 당한 일, 벙커에서 공뒤에 나비가 앉아 백스윙 하다가 실패한 일, 어이없는 기권과 불안한 스윙, 눈물의 기자 회견… 이쑤시개를 휘둘러도 홀인원을 기록할 것처럼 특필되었던미셸은,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한동안 ‘투자’만 받고 ‘성과’는 내지 못하는 부실 기업, 미운 오리새끼 같았다. 승전보 보다는 가십에 휩싸였던. 하지만 대중들은 스타 골퍼 미셸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LPGA도 마찬가지다.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미셸 위는 흥행카드다. 소렌스탐이 은퇴한 상황에서 한국은 신지애만 가지고 LPGA 중계권을 들여올 수 없고, 150명 골퍼중 50명이 한국인인 상황에서 LPGA가 미국 갤러리를 모을 수 있는 미국 카드도 단연 미셸 위다. 그것이 이제까지 LPGA가 정회원도 아닌 그녀에게 참가비를 주며 초청한 이유이며, 타이거 우즈에게만 제공됐던 전용기를 내주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제 모든 특혜는 사라졌다. 그녀는 예비고사를 치르고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그렇게 “나, 다시 시작할래요” 같은 LPGA Q스쿨의착한 합격장을 손에 쥐고, 모처럼 조부의 장례식에 참석차 내한한 그녀를 위해 〈보그〉는 패션 필드를 선물하기로 했다. 금이 간 손목을 이어 붙이고 다시스타트 라인으로 돌아와 아이언 샷을 쥔 이 소녀의 아름다운 낙관에 가만히등을 두드려 주며. 며칠 전 급성 위염으로 촬영을 취소했던 미셸은 오늘만은 맘껏 모델로서의 끼를 터뜨려 보고 싶다고 벼르며, 실로 마감한 듯한 작고 미숙한 입술로 신이 나서 조잘거린다.

    “어릴 때부터 〈보그〉를 보고 자랐어요. 웃고 있는 모델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나도 들뜨게 되는 거 있죠? 하와이는 너무 더우니까 맨날 입는 옷이 탱크톱에 미니스커트, 맨발이나 슬리퍼가 고작이고…, 학교도 맨발로 다녔어요. 요새는 맘먹고 스타일을 맨날 바꿔요. 히피처럼, i펑키하게 입기도 하고옷 입는 게 정말 재밌어요. 아기네스 딘은 보이시 해서 좋고, 타이라 뱅크스는 섹시해서 좋고. 골프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패션이에요. 여행할 때도 공항도착하면 〈보그〉 같은 패션지부터 사 보는 거 있죠. 샤넬도 좋아하고 루이 비통도 좋아해요. 내 몸에서 맘에 드는 건 다리에 힘이 센 거랑, 팔이 긴 거. 그게 골프엔 유리하니까.”

    햇빛 가리개용 뉴스보이캡 대신 황녀처럼 말아 올린 헤어 익스텐션과 리넨 망사에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녀가 종알거린다. “진짜 공주가 된 거 같아.”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인 선물 같은 이 소녀의 세계는 어딘지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해서 몸매가 건강하게 균형 잡힌 거 같아요. 전 야채와 과일을 진짜 좋아해요. 상추, 브로콜리, 녹색 콩삶아서 그린 파파야처럼 해 먹는 것도 신나고, 버섯이나 닭가슴살도 정말 좋아해요. 사람들이 다이어트하면서 억지로 먹는 것들을 전 다 좋아하는 거 있죠. 반대로 몸에 나쁜 것도 좋아해요. 초콜릿, 과자 그런 거.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우유, 달걀, 케이크 이런 건 또 못 먹고. 그래서 미국 음식 먹으면 탈 나는데, 한국이나 일본 음식 먹으면 속도 편하고 맘도 편해요.”

    드넓게 펼쳐진 하와이의 초원 위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자란 덕인지, 골프에 유년을 저당 잡혔다는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그는 승부 세계에대한 순수한 면역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두 달 동안 못 쉬어서 탈이 났어요.연습만 죽도록 하다가 Q스쿨 시험 끝나고 바로 하와이 가서 쉬려고 그랬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또 바로 한국으로 나온 거예요. 할아버지는 파일 럿이셨는데, 비행을 97번이나 나가셨대요. 영어가 유창해 미국으로 가서 대학교도 나오셨고(1969년 미국이 쏘아 올린 아폴로 우주선의 우주인이 달에착륙하던 생중계 실황을 해설했던 유명한 과학자 위상규 옹). 할아버지가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하와이에 오셔서 탁구장에서 서브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구요. 할아버지가 골프는 못하셨지만 ‘ 열심히 살아서 큰사람이 돼라’ 고 힘을 주셨어요.”

    지독한 승부근성을 타고나서 할아버지와 윷놀이를 해도 질 거 같으면 판을 뒤집어버렸다는 어릴 적 일화. “자기가 이겨야 그 판이 끝나는 거예요. 지면 잠을 못 자요”라고 어머니는 웃으며 회고한다. 하지만 승부근성이 항상약이 되진 못한다. “더 훌륭한 선수가 뭘까… 더 잘하는 건 더 힘이 세지는 거고… 전요, 정말 골프를 세게 하고 싶어요.” 소머즈나 원더우먼이 되고 싶다는 푸념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무리 힘이 세도 표적을 제대로 겨누지 못하면오발이다.

    골프는 네 살부터 시작했다. 골프만 한 게 아니라 축구, 야구, 수영도 했고 발레도 했다. “테니스도 했고 피아노도 운동하듯 치고 그랬어요. 스포츠를 워낙 좋아했어요. 엄마도 골프를 치셨고, 삼촌은 아시아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딴 볼링 선수였어요. 외가 쪽은 스포츠 패밀리, 친가 쪽은 공부 쪽으로타고났다고 그러세요. 큰아빠도 고모도 아빠도 다 대학에서 가르치시니까.”네 살 때부터 처음 잡은 게 드라이버. 어린아이의 악력으로는 믿을 수 없게100야드 담장을 넘은 공은 미셸의 가슴에 ‘파워’에 관한 첫 기억으로 남았다.맑은 날은 테니스, 비 오는 날은 골프 그렇게 즐겁게 코트를 오가다가, 일곱살 즈음 테니스 채를 집어 던졌다는.“공과 공 사이에서 제가 순간 스피드를 못 내니까 ‘아, 나랑은 안 맞는구나.’ 골프장에 처음 나간 게 일곱 살 때였어요. T에 공을 올려놓고 쳤는데 진짜 멀리 나간 거예요. 그때부터 전 연습할 때 많이 뛰는 게 버릇이 됐어요. 한샷 치고 뛰고, 또 한 샷 치고 뛰고, 그래서 시합할 때 걷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일 싫은 건 몸이 아파서 운동을 못 하는 거. 힘들 게 만든 몸인데 물거품이 되는 게 너무 화가 나요.” 물 속에서 헤엄치는 수영 선수도 아니고 하늘을향해 몸을 던지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도 아닌, 골퍼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외로운 보병이다. 제가 공중으로 퍼 올린 공을 좇아 끝없이걷고 걷는 일. 테니스처럼 그 누구와 핑퐁을 겨룰 수도 없고, 축구처럼 팀을짜서 전술을 나눌 수도 없고, 그곳이 큐대 하나로 힘과 사이즈를 잴 수 있는녹색 당구 테이블도 아닌 채. 변화무쌍한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서 바람의 운행으로 구르거나 날아오르는 ‘원형의 구’를 지표 삼아.

    “골프는 내 인생의 팔 같은 거예요.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안 되고.그래서 골프를 치면 웬만한 일은 다 핸들링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치기 전엔 제가 손목 스핀이 많았어요. 손목이 부러진 게 뛰다가 넘어졌거든요. 처음엔 엉덩이 뼈가 부서진 줄 알았어요. 아침 일찍이라 정신 못 차린 거죠. 오른손이 다쳐서 왼손으로 보호한다는 게 그만. 깁스 하고 2주 동안 쉬다가, 다시심하게 운동하니까 일을 낸 거죠. 1년 쉬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결국 성질이 급해서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린 셈이에요. 어떤 사람은 회복이 안 돼서 죽을 때까지 접시도 못 들었다더라, 그런 말 들으면 또 겁이 나고.그런데 골프를 안 치니까 하루 종일 뭐해야 하나? 멍해지는 거 있죠.”

    볼륨감 있는 튤 소매 장식의 블랙 니트는 샤넬(Chanel), 러플 장식의 화이트 패티코트는 하네자(Haneza), 골프공만한 구슬로 장식된 목걸이는 미스 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스트랩 슈즈는 구찌(Gucci).

    최고의 상점도 문을 닫을 때가 있다. “어떻게 해보려고 할수록 상황은 더나빠졌어요. 옛날에 저한테 잘해줬던 사람도 떠나버리고, 친구였던 사람도 떠나고…, 내가 순진해서 세상을 잘못 봤나? 다들 잘해주니까…, 이제는 상처에서 벗어났어요. 내가 나를 보호해야지 싶은 맘, 똑똑해지고도 싶고.” 미셸은 선불하지 않고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신용카드 같은 10대 천재의 약학 속에서 자본주의 동화의 이미지를 가공 처리해왔고, 그렇게 스타를 좇는갤러리와 미디어는 그를 존중하다 못해 앙모했지만, 골퍼로서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다면 그는 이미 머리를 천장에 부딪혔지만, 승부 근성은 있으나 결정력은 약한 그의 필드 관리력과 기괴한 쇼로 추락한 성 대결 욕심은 골퍼의 지속성을 혼란시키고, 구식이 된 신화는 그녀를 더 이상 A리스트에 머물지 못하게 하리라는 우려도 범람했다.

    “어릴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조금만 잘해도 대단하게 만들고 못하면 깎아 내리고. 사람들도 그런데 재미를 느끼는건지. 이제는 많이 고생했으니까 나쁜 일이 생겨도 견딜 만해요. 예전엔 엄살이 심했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작은 것에도 더 감사하게 돼요.”

    그녀는 늘 같은 스피드로 일했다. 있는 속력을 다해, 기록적인 시간 안에.전용기를 타고 초청 경기장을 누비며, 그러나 호텔의 화려한 천장을 바라보는 침대 위의 나날이 불안 없이 가능할까? 때로 그녀는 쉼 없이 달리는 기차처럼 보였다. “남들 하는 대로 다 놀면 연습 못하죠. 연습할 때는 거기에 집중하고, 학교에서는 공부에 집중하고. 저는 하나도 안 억울해요. 전 평범한 학창 시절 보낸 거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골프 연습하는 것처럼 공부도 해야하는 걸로 알았으니까. 홈스쿨 안 하고 고등학교 제대로 다닌 거 그게 남는거 같아요. 에세이 잘 쓰고 싶어서 사전도 통째로 외워봤어요. 한국말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한국어 유치원 6개월 다니고 한글 학교도 1년 다녔어요.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좋아요. 하와이에서 태어난 건 행운이에요. 하와이에서 살 때는 시골이라 항상 도시로 나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하와이처럼 그리운 데가 없어요. 날씨도 좋고 사람도 좋고. 오바마 대통령도 하와이에서 학교를 나왔잖아요. 학교 선배라서 자랑스럽고,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했어요. 내가 미국인이라고 느낄 때는…, 옛날에는 세금만 엄청 냈는데, 이번처럼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거. 한국인이라고 느낄 때는 한국 음식 좋아하고, 골프를 그만둔 다음에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갑자기 급커브를 튼 것처럼 그녀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키 큰 남자 좋아해요. 제 키가 183cm니까 그것보다 무조건 더 커야 돼요. 자신 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재밌는 남자… 스탠포드에서 스캔들 났던 농구 선수 로빈 로페즈는 저스트 프렌드예요. 기사 터져서 정말 놀란 건 우리예요. CNN에서는 제가 스탠포드에서 제일 유명한 여성 스타다 그러는데, 천만의 말씀. 스탠포드에서 제일 재밌는 게 사람 만나는 거였어요. 어떤 친구는가수고 또 펜싱 스타고… 그런 스타 친구들이 평범하게 같이 공부하고 기숙사 생활하니까 진짜 좋아요. 한국 드라마 강의도 듣고 싶어요. 한국 드라마가진짜 흥미진진하거든요. 최근엔 〈온에어〉에 완전 빠져 있어요.”

    복잡한 신념,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상 대신 무구하고 무력한 아이 같기도 한 스무 살 여자 아이의 즐거운 일상. 당연히 미셸에게 골프의 조언을 구하면 간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언젠가 장동건의 질문에 한 대답이라는 게,“슬라이스 안 나려면 왼쪽 보고 치세요. 장타를 날리려면 힘 있게 후려 패세요”였다고. “박세리 언니는 정말 좋아해요. 아니 존경해요. 제가 들어갔을 때LPGA에서 스타는 박세리 언니 한 분이었어요. 저한테도 열심히 한번 해보라고… 많이 못 쳐 봤지만 항상 인사는 했죠.”

    미셸에게 IMF 시절 물에 빠진 공을 건져 올린 박세리의 헝그리 투혼을기대할 수 있나. 추성훈이 귀화한 일본인이듯 그녀도 노란 얼굴의 미국인이다. 국적과 스타성을 넘어서 대중들을 경배심으로 다시 결집시킬지, 아니면 그저 LPGA 출전 골퍼인 채로 하나의 각주에 그치고 말지, 게임 리스트가 그녀의 안정된 샷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그녀의 도전정신을 막을 순 없다는 것. “아직까지도 성 대결은 욕심 있어요. 다섯 살 때는 야구도 남자 팀에 들어가서 했는 걸요. 남자들한테 지고 싶지 않아요. 알아요, 그 부분에서 비난 많다는 거. 남자들이 여자한테 도전 받는 거 싫어하잖아요. 근데 무조건 뭐라고 하는 건 싫어요. 당장은 저도 힘들지만, 지금보다 더 힘을 키워서 또 해볼 거예요. 저도 실패하기 싫으니까.”

    골프가 인생이 아니라,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한 부분이듯, 성장하고 있는 그녀에게 부모라는 인생 코치는 절대적이다.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정말우수한 코치예요. 그래도 전 엄마 아빠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건 어쩔 수없어요. 재정적인 건 별로 신경 안 써요. 돈은 제가 가늠할 수 없는 범주랄까.부자가 뭔지는 모르지만, 땅 사고 팔고 그런 거는 관심 있어요. 음식이나 패션, 리빙, 디자인 이런 쪽에도 아이디어 많아서 나중에 사업하면 좋겠다 싶어요, 아주 나중에요.”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2천3백만 달러를 번 사라포바에 이어 여성 스포츠 스타 중 5위의 수입을 벌어들인 것으로 기사화한 스포츠 재벌 미셸 위. 일년에 벌어들인 수익은 1천2백만 달러. 하지만 10%가 넘는 1백50만 달러를사회에 기증했다. 카트리나 구호 자금, 고려대와 연세대 의대 난쟁이병 치료기금, 피츠버그 어린이 병원, 하와이 홈리스 스쿨의 컴퓨터룸….

    “우리 미셸 어릴 때 꿈이 자기 능력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거예요.틀에 박혀 있는 걸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어 해요. 골프 하면서도 학교 다니고, 남자 골프 도전하고, 스탠포드도 정식으로 공부해서 들어갔어요. 일본어,중국어도 할 줄 알고, 동남아 연구 쪽으로 공부하고. 골프를 안 했을 때의 그이후 삶도 생각하는 거 같아요”라고 어머니는 부연한다. 어쨌든 2년간의 절치부심으로 미셸 위는 달라졌다. 그녀가 아이언 샷을 쥐면 공이 백스핀으로 빨려 올라간다거나, 장타 공식 343야드지만 실제로는 396야드까지 날아간다는 위력은 이제 밤마다 몰래 지붕 위를 뛰어다녔다던 초인 소년의 전설처럼비밀스러운 기록으로 남겨둔 채.

    “2009년엔 1등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다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죠. 골프채에 공이 닿는 순간 기도해요. ‘잡생각 없이 힘을 잘 조절해서 치게 해주세요.’” 올해는 LPGA 신인상과 더불어 스탠포드에서 올 A학점을 받고 싶다는 사적인 소망도 꺼내 보이며.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걸음걸음을 주시하는 시간 속에서, 패자의 박탈감을 잘 조절해 왔지만, 매일 아침 필드 위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녀의 꿈은 뚜렷하다.

    미셸 위 한국 에이전시 대표 최갑수 에이전트는 말한다. “이제 LPGA 정회원이 됐으니 풀 시즌 나갈 수 있어요. 선지애, 양희영 같은 박세리 키드들과도 겨뤄야 하구요. 신지애는 정확한 컴퓨터 샷이지만, 미셸은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있는 화려한 샷이에요. 현재 LPGA에서 미셸 만큼 미모와 애티튜드를 갖춘 스타는 없어요. 미셸이 안 나오면 갤러리도 없어요. 전대미문의 74승을 거둔 소렌스탐은 50명의 군중을 몰고 다니지만, 1승도 못 거둔 미셸 위는 3천 명의 군중을 몰고 다녀요. 비판도 많고 칭찬도 많고 어쨌든 가십과 화제를 몰고 다니는 미셸을 주최측은 초청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2월의 어느날, 미셸 위의 승전보가 날아왔다. 2009 LPGA시즌 개막전인 SBS 오픈에서의 준우승. 그동안 300야드를 넘기던 폭발적인 스윙은 간결하고 정교한 승부수로 대체되어 있었다. “골프를 잘 쳐도 불행할 수 있고, 못 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최선을 다 하고 내 자신에게만족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녀는 더 이상 그린 위의 ‘치어리더’가 아니다. 여자 타이거 우즈도 아니다. 더 이상 기권하지 않을 인생의 골퍼 미셀 위다.

      에디터
      김지수, 이지아
      포토그래퍼
      이건호
      스탭
      헤어/한지선, 메이크업/이지영, 세트 스타일리스트/이현민(슈가홈)
      브랜드
      루이비통, 알렉산더 맥퀸, 디올 옴므, 스와로브스키, 3.1 필립림, 미스지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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