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컬쳐의 떠들썩한 가족사진
아메바컬쳐의 10주년을 기념해 한국 힙합계의 큰형님 다이나믹 듀오부터 막내 크러쉬까지 소속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떠들썩한 가족사진을 찍었다. 음악의 피를 나눈 형제들은 어딘가 묘하게 닮아 있다. 이 멋지고 별난 가족의 일대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한순간도 조용할 틈이 없다. 자정이 넘은 시각, 스튜디오에 풀어놓은 수탉과 개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열 명의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낄낄대며 목청껏 환호성을 질러댔다. 누군가 기습적으로 선창을 하자 곧 우렁찬 떼창이 이어졌다. 쩌렁쩌렁한 노랫소리와 고함 사이의 공백은 잔뜩 흥분한 동물들의 코러스로 메워졌다. “왕왕! 꼬끼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아티스트로서의 명성과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한국 힙한 신의 거물들이 소풍 나온 초등학생처럼 한껏 들뜬 건 아메바컬쳐(Amoeba Culture) 식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군에 입대한 리듬파워의 보이 비만 빠졌다. 아메바컬쳐의 수장 다이나믹 듀오부터 막내 크러쉬까지, 7팀의 뮤지션들은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개코와 얀키의 프로젝트 음원 ‘Cheers’가 새해의 시작을 알린 후 부터 매월 아메바컬쳐 홈페이지에선 신보 소식이 들려왔다. 2월에 발매된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Young>은 발매 직후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다. 다음 주자로 나선 프라이머리는 오혁과의 협업 앨범 <Lucky You!>로 화려하게 컴백하며 시리즈 앨범과 정규 2집을 연이어 선보였다. 4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얀키를 비롯, 자이언티, 크러쉬, 그리고 플래닛 쉬버는 저마다 각자의 음악을 쏟아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쇼미더머니 4>에서 지구인이 활약하는 동안 리듬파워의 행주까지 첫 솔로 앨범을 냈다.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인 다이나믹 듀오의 정규 8집 <Grand Carnival>도 곧 공개된다.
아메바컬쳐의 수장 개코와 최자. 11월 중순 공개되는 다이나믹 듀오의 8집 앨범의 막바지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촬영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마주 앉아 호기롭게 술잔을 부딪쳤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셔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예요.” 오랜만에 작업실을 벗어난 개코와 최자가 말했다. 술병으로 잔뜩 어지럽혀진 호텔 방에 털썩 주저앉은 두 친구는 촬영을 핑계 삼아 호기롭게 술잔을 부딪쳤다. 세기말의 회의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모든 게 뒤죽박죽이던 1999년, 힙합 마니아들의 성지와도 같던 클럽 마스터플랜에 등장한 이들은 혼란으로 가득하던 세계에 하나의 믿음이 되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온 힙합 1세대 중에 대중적 성공을 거둔 건 다이나믹 듀오가 거의 유일하다. 그리고 힙합은 어느새 대중음악 신의 주류로 떠올랐다. 지금은 모두가 힙합을 듣고 ‘플로우’와 ‘스웩’에 대해 떠든다. 아메바컬쳐가 탄생한 지도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최자는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정말 이렇게까지 회사가 커지고, 힙합 음악이 인기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죠. 초창기엔 한 달에 한 번씩은 망할 뻔한 위기가 계속됐어요. 다른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땐 가끔 매니저 전화도 안 받고 도망 다니곤 했는데, 저희가 일해야만 회사가 유지되고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하기 싫은 행사도 억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머릿속으로 타협하는 순간도 많았고. 그때 좀 어른이 되긴 했죠. ‘재미있게 음악 해보자고 회사를 차렸는데 더 재미가 없네’ 하면서. 흐흐.”
2006년 9월이었다. 첫 사무실은 가로수길이었다. 그 무렵 가로수길은 유흥업소라곤 치킨집이 유일한 한가로운 동네였다. 이동식 녹음 부스를 간신히 들인 사무실은 문을 열면 통로가 막혀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다듀’ 외에 직원이라고는 달랑 다섯 명. 그중 네 명이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잠시 회상에 잠긴 개코가 최자의 말을 이었다. 그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배운 것도 있었죠.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게 잘 굴러가려면 서로 양보하고 희생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좋은 추억이에요.”
10주년을 맞은 아메바컬쳐의 ‘원로’이자 한국 힙합 역사의 산증인인 다이나믹 듀오와 프라이머리가 래퍼들만큼이나 혈기 넘치는 개들을 이끌고 품위 있는 산책을 시도했다. 무명에 가까웠던 빈지노를 비롯, 최근엔 혁오 밴드의 오혁까지 아티스트들의 매력을 200% 끌어내는 재주를 지닌 프라이머리에게도 동물 조련은 쉽지 않은일.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두 살배기 불도그 대포는 운동으로 다져진 최자의 팔 힘을 시험했다.
제일 먼저 아메바컬쳐에 합류한 건 프라이머리였다. 군 동반 입대를 앞두고 대신 작업을 이끌어갈 실력 있는 프로듀서를 찾던 다듀는 고등학교 동창인 얀키로부터 프라이머리를 소개받았다. “처음 만난 건 2004년 무렵이었을 거예요. 얀키가 TBNY로 활동할 때였는데, 자기가 괜찮은 프로듀서를 한 명 발굴했다고 하더군요. 음악이 기가 막힌다고요.” 마침 프라이머리 역시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를 찾는 중이었다. “원래 제 계획은 일본에 가는 거였어요. 우리나라 음반 시장이 급변하는 때였거든요. 전 그냥 음악이 재미있어서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인디 음악 시장이 살아 있었고, 음반이 팔리던 시기였어요. 하고 싶은 음악만 해도 먹고살 만한 환경이 만들어진 상황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힘들다는 걸 딱 느꼈어요. ‘한국에선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구나’하는 걸 마지막 앨범을 내고 알았죠.” 프라이머리 스쿨이 피스쿨(P’Skool)로 이름을 바꿔 발표한 <Daily Apartment>였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빈지노가 메인 MC로 참여한 첫 앨범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친구도 기댈 구석이 필요했던 거예요.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비벼보려 했던 거죠. 흐흐.” 최자는 프라이머리를 바라보며 능청스레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살이 빠졌지만 특유의 넉살은 그대로다. 소파 끝에 앉아 있던 프라이머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당시 아메바컬쳐의 녹음실은 어쩌면 신병 훈련소보다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형들이 군대 간 후, 그 사무실에서 계속 녹음을 했는데 에어컨도 없었어요. 겨울엔 난방이 안 돼가지고 열풍기 세 대를 갖다놓고 녹음을 했는데, 어떤 날은 전기가 나가서 밤중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죠.” 아침 7시부터 쉴 새 없이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라이머리의 근면성도 도리 없는 송곳 같은 추위였다. 개코는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프라이머리는 한숨을 쉬며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그 녹음 부스 안에 보면 마이크 앞에 침 튀지 말라고 씌워둔 필터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형들이 그걸 한 번도 안 빨고 입대를 한 모양이에요. 녹음하러 들어갔더니 냄새가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더구나 열풍기까지 틀었으니…” “흐하하하하.” 이번엔 최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쑥스러운 기색도 없이 최자는 도리어 너스레를 떨었다. “숙성이 되다 못해 안에서 발효가 된 거죠. 제가 그걸 사올 때도 중고였거든요. 흐하하.” 슈프림팀 역시 프라이머리와 함께 아메바컬쳐의 초기 멤버였다. “슈프림팀이 작업 때문에 다른 사람을 녹음실에 데려온 적이 있는데, 냄새가 심하니까 쌈디가 창피하다고 이걸 갖고 빨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아예 색깔이 변해버린 거예요. 세상에, 삭아가지고! 아, 갑자기 그게 기억나네요.” 연신 킥킥대던 프라이머리는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더러운 진흙밭에서도 꽃은 피는 법. 누구나 알다시피 그 시절 다이나믹 듀오와 프라이머리, 그리고 슈프림팀이 만들어낸 음악은 놀랍도록 세련된 스타일이었고 완성도도 높았다.
<유세윤의 아트 비디오>의 조감독 유병재는 리듬파워를 보고 “다이나믹 듀오보다 못생긴 애들이 있구나”라며 놀렸지만, 유도 유단자 행주의 탄탄한 엉덩이를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메바컬쳐의 분위기 메이커인 빨간 바지의 행주와 폭탄 머리의 지구인, 그리고 군에 입대한 보이 비로 구성된 인천 출신 3인조는 A급을 뛰어넘는 B급 힙합 정서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천수협 소래공판장과 월미도 놀이공원을 오가며 촬영한 ‘왕좌의 게임’ 뮤직비디오가 수록된 앨범 <월미도의 개들>에서 크러쉬는 이들에게 ‘Stupid Love’라는 곡을 선물했다. 얀키는 모두가 믿고 따르는 든든한 형이자 힙합 뮤지션들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실력파 MC다. 이날 촬영 소품인 맥주를 마시고 조금 취했다.
아메바컬쳐의 ‘원로’들이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젖는 동안 밖에선 요상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오 예! 휘이~ 호!” 곧이어 누군가 연호하듯 ‘양준모’를 외쳤다. 양준모는 얀키의 본명이다. CB Mass 시절부터 종종 개코, 최자와 음악적 호흡을 맞춰온 그는 다듀와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이자 동창이다. 톱밥과 함께 전설적인 2인조 힙합 그룹 TBNY로 활동했던 그가 아메바컬쳐에 합류한 건 첫 솔로 앨범을 내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에픽하이 앨범을 포함해 수십 건의 곡 작업을 함께해온 타블로 대신 다듀와 손을 잡은 건 다소 뜻밖이었다. “작년 1월이었죠. 한동안 회사 없이 활동했는데 타블로 형과는 워낙 음악적으로 잘 맞아 굳이 같은 회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어요. 여기엔 전부터 같이 작업해온 친구들과 형, 동생들이 많았고요.” 아메바컬쳐에 들어오고 난 후 얀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정규 앨범 <Andre>를 발표했다. 수록곡 중 하나인 ‘솔드 아웃’ 뮤직비디오엔 피처링에 참여한 자이언티와 타블로, 로꼬뿐 아니라 다듀와 강혜정, 박재범까지 깨알같이 등장한다. 전화 한 통화에 달려와준 동료들이다. 퀄리티에 비해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얀키의 앨범은 마니아들 사이에선 한동안 화제였다.
“얀키 형은 무대 위에서 뭔가 여유로워 보여요. 그 카리스마가 부러워요.” 떠들썩한 소란의 주인공인 리듬파워가 말했다. 폭탄 맞은 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외계인 같은 지구인과 아메바컬쳐의 분위기 메이커 행주,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보이 비로 구성된 리듬파워는 2011년 아메바컬쳐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인천 출신의 유쾌한 3인조 그룹이다. 얼마 전에도 얀키의 집에서 2박 3일을 보냈을 만큼 이들은 허물없는 사이다. 하지만 얀키에 대한 첫인상은 ‘무서운 형’이었다. “우리가 방사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처음 만났는데, 인사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홍대 캐치라이트라고 지금 클럽 코쿤이 있는 공연장에서 힙합플레이야 쇼를 할 때였어요. 그때 톱밥 형이랑 같이 카리스마 있게 지나가신 걸로 기억해요.” 조금 전까지 식당에서 이들과 같이 육회 비빔밥과 갈비탕을 먹다 온 크러쉬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한 수 거들었다. “너무했다, 형.” 결국 얀키는 동생들의 등쌀에 떠밀려 농담 섞인 사과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숫기가 없어서.” 무대 위에서 관객을 호령할 때와 달리 일상 속에서 그는 언제나 좋은 형이다.
아메바컬쳐의 막내 크러쉬. 92년생으로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무서운 성장 속도로 ‘차트 이터(Chart Eater)’라는 별명을 얻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자이언티의 ‘뻔한 멜로디’부터 직접 작사·작곡한 자신의 앨범까지, 발표하는 곡마다 음반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동시대적인 감성을 지닌 한 차원 다른 빛깔의 힙합을 보여준다.
92년생인 크러쉬는 형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메바컬쳐의 막내다. 한 인터뷰에서 크러쉬는 중학교에 갓 입학할 무렵,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를 들으며 힙합에 빠져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힙합을 시작한 후엔 TBNY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여기 형들 전부가 그래요. 전부터 존경해왔어요. 저로선 아무래도 동기 부여가 많이 되죠. 리듬파워 형들도 그렇고요. 제가 탈락한 언더그라운드 컴페티션에서 형들은 바로 그 전해에 우승했거든요. 그때가 고 1 때였어요.” 키치적인 B급 정서로 인천식 ‘스웩’을 녹여낸 리듬파워의 지난해 앨범 <월미도의 개들>에서 크러쉬는 ‘Stupid Love’라는 곡을 선물하며 선망의 대상과 멋지게 재회했다.
그리고 지금, 태연한 표정으로 수탉의 날개를 움켜쥐고 선 자이언티와 크러쉬는 알아주는 절친이다. “닭 너무 귀여워요!” 자이언티는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순 없다는 듯 수탉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했다. 반면 크러쉬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 무시무시한 날짐승이 날개를 푸드덕거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둘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힙한 팬들 사이에선 이미 꽤 유명하다. 힙합 파티가 끝난 후 택시를 잡기 위해 클럽 앞에 서 있던 자이언티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 건 크러쉬였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맹랑한 소년에게 자이언티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고, 음악 파일을 확인한 그는 망설임 없이 크러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자이언티의 ‘뻔한 멜로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크러쉬는 곧 아메바컬쳐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선보인 첫 정규 앨범을 비롯, 발표하는 곡마다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차트 이터(Chart Eater)’라는 멋진 별명도 얻었다.
플래닛 쉬버의 필터와 자이언티가 제안하는 ‘DIY 치맥’이란 바로 이런 것! 물론 농담이다. 자이언티는 동물을 사랑한다. 최근 JTBC <슈가맨>에서 다이나믹 듀오 버전의 ‘너 하나만을 위해’를 작업한 필터는 샤이니 종현의 ‘데자-부’를 비롯, 장르를 넘나들며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는 동시에 자신의 솔로 앨범도 발표했다.
디제이 프리즈와 필터로 구성된 일렉트로닉 듀오 플래닛 쉬버는 EDM 광풍이 불어오기 훨씬 전부터 전 우주적인 ‘일렉 슈퍼파워’를 방출해온 국내 EDM 신의 독보적인 아티스트들이다. 크러쉬 역시 이들의 팬이기도 했다. “한창 EDM 만드는 걸 좋아하던 고 3 땐 플래닛 쉬버 같은 색깔의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플래닛 쉬버는 프라이머리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사이이기도 하다. 사실 아메바컬쳐에 소속된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이런식으로 얽혀 있다. 오랜 시간 서로의 음악적 성장을 지켜봐온 동료로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왔다.
‘일렉 슈퍼파워’를 뿜어내는 일렉트로닉 듀오 플래닛 쉬버의 디제이 프리즈와 필터. 이들은 EDM 광풍이 한반도를 덮치기 훨씬 전부터 한국적 일렉트로닉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한때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종이 박스와 함께 침대에 누운 프라이머리는 정규 앨범 를 발표하기에 앞서 3개월간 시리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 조립형 캐릭터 박스의 일부를 각각의 시리즈 앨범에 담아 팬들에게 선물했다.
“우린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아티스트들과 같이하고 싶어요. 신인을 발굴해서 연습생처럼 키우는 일은 미래에도 없을 거예요. 지금처럼 잘하는 친구들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인프라가 도움이 된다면 도와주고 싶고요.” 다이나믹 듀오는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힘주어 말했다. 지름길은커녕 평탄한 땅이라곤 없던 힙합의 불모지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여기까지 왔다. 오는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선 아메바컬쳐 10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가 열린다. 이름하여 ‘Aniverse’다. 유니버스(Universe)의 U를 A로 변형해 기념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우주라는 컨셉을 정해놓고 준비 중이에요. 저마다의 세계를 지닌 행성과 항성이 음악이라는 우주 안에서 공연을 한다는 뜻이에요. 아메바컬쳐는 각자의 음악적 아이텐티티가 강한 게 특징이기 때문이죠.” 콘서트 무대는 이 빛나는 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가상의 은하계가 될 것이다. 아메바컬쳐가 탄생한 이듬해에 부른 ‘다시 쓰는 이력서’에서 다이나믹 듀오는 1집의 ‘이력서’를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우리네 보금자리 녹음실까지 딸린 사무실 크기는 열네평. 조금은 협소하지만 큰 뜻을 같이할 동지들은 벌써 일곱 명. 시작은 비록 미약하지만, 끝까지가 쉽지 않을 걸 알지만, 난 기필코 이뤄낼래 우리의 광대한 마지막.”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지들은 몇 배로 늘었다. “이들이야말로 아메바컬쳐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주인공들이죠. 좋은 음악을 계속 만들어줬고, 위기 때마다 회사가 돌아갈 수 있도
록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열심히 작업해왔어요. ‘이건 우리한테 주어진 운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개코의 말에 최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2015년의 아이콘은 단연 자이언티다. 올 한 해 TV와 라디오, 혹은 거리에선 하루에 한 번 이상 자이언티의 노래가 들려왔다. 평소 반신욕을 좋아한다고 말해온 그를 위해 특별히 욕조를 준비했다. 컨셉이 마음에 든다던 그는 천진한 아이처럼 새빨간 엘모 인형을 꼭 끌어안고 술꾼들 틈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겼다.
야단법석에 가까운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나고 나자 샴페인은 동이 났다. 쌓아둔 맥주도 비었다. 흥에 겨워 웃고 떠들던 열 명의 사내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떠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메바컬쳐라는 이름은 대체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는 자이언티를 붙잡고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들뜬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신중한 태도로 한참을 생각했다. “저에겐 시작이자 가족. 그리고 집과 같은 곳… 진짜 많은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말하고 싶어요.” 시끌벅적한 일가족이 떠나간 후 다시 사진을 보았다. 음악만큼이나 외모도 제각각인데 기묘하게 닮았다. 앞으로 10년이 더 흐르고 난 후 아메바컬쳐의 가족사진은 또 어떤 모습일까? 다이나믹 듀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식구가 생길 테고, 또 이들 중 누군가와는 이별도 하게 되겠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좋은 아티스트들과 함께한다면 좋겠어요.” 아메바컬쳐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인스톨 그래프는 현재10%만 채워진 상태다. 완성되기까진 아직 90%가 더 남았다. 이 멋지고 별난 가족의 일대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JANG DUK HWA
- 스타일리스트
- 한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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