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리빙 ② – VP Globe Lighting
아! 감은사지, 감은사 탑이여!
전 문화재청장이자 석좌교수인 유홍준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서 감은사지(感恩寺址) 삼층석탑을 보고 한 없이 이 구절을 되풀이했다. 만약 내가 이 조명을 바라본다면 나 역시 어떤 수식어나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아! 황홀한, 이 황홀한 동그라미여!’ 를 반복할 것이다.
VP Globe라 불리는 이 조명의 태생은 덴마크였건만 정작 내가 이 아름다운 녀석의 자태를 처음 접한 곳은 아이러니 하게도 ‘글로시 인더스트리(Glossy Industry)라는 상하이의 복합 패션몰 어느 옷가게 였다. VP Globe조명은 VP Globe Glass, VP Globe Brass, VP Globe로 구성되어있다. 컬러와 소재마감에 따라 빛의 느낌과 공간의 분위기가 다르게 연출된다.
VP Globe는 마치 미래에서 날아온 듯 한 형태로 강한 첫인상을 가슴에 남긴 채 뇌리 속을 잔상으로 떠다니는 조명이다. 놀라운 것은 이 조명이 1969년에 디자인된 것이니 미래에서 날아 온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갑자기 나타난 터미네이터다.
이 조명을 디자인 한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 1926-1998)은 덴마크 디자인의 거장이자 풍부한 독창성과 지칠 줄 모르는 실험주의자로 오덴세 대학과 덴마크 왕립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1950년부터 2년간 당시 덴마크 건축을 이끌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955 년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 두 가지는 바로 ‘플라스틱’ 소재와 ‘컬러’였다. 플라스틱은 당시 신소재였다. 그는 플라스틱을 활용한 대량생산은 물론 기존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만들었다. 플라스틱을 단순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엿가락을 휘거나 조각을 하듯 예술로서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각각의 색을 정의하여 계획적인 색상을 디자인에 적용하는 등 색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보는 듯 원색 계열의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 그 중에서도 그의 디자인 결과물들은 레드 컬러의 사용 빈도를 높여 사랑과 위험, 긍정과 부정 등의 양면성이 뚜렷이 표현되었다.
별났다. 그는 별났다. 스칸디나비아의 동시대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그는 개성을 갖춘 일련의 현대적인 조명들을 선보였다. 그는 조명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며 주변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창안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디자인 작업방식과 모양, 색상 및 기능면에서 매우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팬톤은 루이스 폴센 (Louis Poulsen)의 조명을 설계하며 일을 시작했다. VP Globe는 그 중 대표작이며 이미 그의 첫 번째 조명은 1959년 Topan이었고 1960년 Moon조명이 뒤를 따랐다. 1964년 Panton은 수백 개의 작은 반사 디스크로 구성된 Fun 조명을 디자인 하여 스위스의 조명 제조업체 J. Lüber AG에 연락을 하기도 했다.
디자인을 읽는 중요한 팁 한가지는 바로 사회적 현상과 흐름이다. 그는 우주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영화 ‘화성침공’의 익살스런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현실 저 넘어 또 다른 세상 어딘가로부터 우리를 비추는 빛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영감은 60년대 후반의 사회상으로부터 비롯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60년대는 우주전쟁의 시대였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미국과 소련,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냉전과 이념대립은 우주로 까지 경쟁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반면 우주와 같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갈망 했다.
팬톤 역시 그의 디자인에 지구의 형태와 우주시대의 현상들을 탐구하여 고스란히 담았다. 그의 영혼은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고 해야 할까?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우주의 행성들은 조명의 형태와 빛의 효과를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불멸의 로맨티스트이자 아내만 바라기, 팔불출, 사랑꾼이었다. 인생에 사랑이 빠질 수 있나…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마리안(Marianne)을 만난 그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그녀와 결혼한다. 마리안은 베르너에의 디자인을 이해하고 지지하였으며 특히 그가 사용한 색채에 대한 많은 조언은 그녀에게로부터 비롯 되었다. 그녀는 2003년 베르판(Verpan)의 설립에 공헌하였다. 비록 5년전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35년간 인생을 함께했던 친구이자 남편인 베르너와 그의 디자인을 되살리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VP Globe는 Verpan에서 만날 수 있다. 100% 수제작으로 조립되는 Glove조명은 7년 이상 숙련된 Verpan의 두 명의 여직원 만이 생산과 조립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소량 생산되고 있다. 아! 아름다운 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구나.
뛰어난 디자인 건축물과 인테리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핫 플레이스에는 이제 어김없이 Globe 조명이 자리잡고 있다. 50년전 조명이라니…. 확실히 그는 당시 사용하던 것 과는 다른 소재와 색상을 의식적으로 아니 의도적으로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는 동시대 인들로부터 종종 그의 디자인의 “시대를 너무 앞질러 간다 (timelessness)”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은 적도 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그의 디자인에 대한 큰 관심과 평가는 오히려 정반대가 되었다.
좋은 디자인은 나의 삶, 소리, 움직임을 되짚어 보게 하고 그로 인해 내 삶이 풍요로워 짐을 깨닫게 한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갈구와 호기심은 분석하고 파헤치는 덕질과 함께 계속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이 풍요로워 질 그 날 까지 Tornerò subito!
- 글
- 이현승 (CHERISH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사진
- COURTESY PHOTOS / WWW.VERP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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