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삼대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지속될 ‘삼대’의 일상은 과연 누군가의 주장처럼 ‘신(新) 모계사회론’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라는 작가가 있다. LA 의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열린 그녀의 회고전은 정치, 예술적 통찰력을 발휘한 작품으로 가득했다. 도발적인 작품 사이에서 나는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왼쪽부터 할머니(작가의 엄마), 엄마(작가), 딸(작가의 딸)이 하나의 실을 나란히 문 채로 앉은 모습의 사진 ‘Por um Fio(By a Thread, 1976)’. 이탈리아의 어느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열두 살의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홉 명이나 되는 남동생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다시 브라질로 이동한다. 그녀는 예술가이기 전 인간으로서의 생의 여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딸을 설정하고, 한 세대가 끝나도 끝나지 않을 전쟁 같은 삶을 실로 표현했다. 삼대(三代)째 이어져오고 있는 그녀들의 삶, 필연적인 연결 고리에 대한 사유는 세대와 대륙을 초월할 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다.
우리 집에도 삼대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성을 가진 세 여자가 있다. 할머니, 엄마(나), 딸의 삼대는 공통점이 많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딸을 낳아 기르고 있으며, 언젠가 누군가의 딸을 낳을지 모른다. 출산이라는 위대한 경험과 육아라는 절체절명의 과정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까운 ‘엄마와 딸’은 그래서, ‘아빠와 아들’과는 다르다. 물론 잘 알다시피, 가깝다는 게 반드시 ‘사이가 좋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피아간에 구분이 안 되는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각별할 수도, 더 끔찍할 수도 있고, 대부분 둘 다라는 말이 더 맞다. 여성 언어학자인 데보라 태넌은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는 문자 그대로 ‘모든 관계의 어머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엄마와 딸’의 관계와 또 다른 ‘엄마 와 딸’의 관계가 겹쳐지고 포개지고 가끔은 꼬이는 일상을 살고 있다.
최근 옆자리의 후배도 이 전선에 뛰어들 거라 선언했다. 친정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는 문제를 놓고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아이를 위해서’가 가장 결정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처가살이는 세 배 이상 늘었고, 시집살이는 절반으로 줄었다’는 유의 소식은 뉴스에서도 단골 소재다. ‘가장 자주 접촉하는 성인 자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10년 전에는 장남이었다면, 지금은 장녀라는 것도 변화된 현상 중 하나다. 여자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친정에 육아를 맡기는 일이 늘고 있고,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면서 가정이 외가 위주로 재편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이나 이순신 등 걸출한 인물들이 알고 보니 외가에서 자란 인물이라는 기사도 봤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어디서 자라느냐가 아니다.
새로운 모계사회가 도래했다는 분석은 그 변화를 주도하다시피 한 내 또래 여자들에게 상당히 복잡한 심경을 일으킨다. 무엇이 모계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은 길을 잃은 채 번번이 단지 외가 의존 현상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육아의 책임을 내가, 나의 엄마인 할머니에게로, 그녀의 남편인 할아버지에게로, 그리하여 외가 전체로 전가한 셈이다.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친정 엄마가 아이들을 봐주고 계세요”라는 말이 참 염치없이 느껴진다. 이건 부러운 상황이 아니다. 다 큰 여자가 엄마의 손을 빌린다는 건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내 아이를 남의 손에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전근대적 발상이 깔려 있으며, 아이도 (잘) 기르고 일도 (마음 편하게) 하고 싶어서 또 다른 여성인 엄마를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언제나 켕기고, 특히 야근이 잦은일의 특성을 이용해 그녀의 측은지심을 자극했다는 사실은 늘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기가 엄마 집 아니냐고 우기지만, 솥단지 옮겨 다니는 걸 질색하던 엄마 입장에서 이 집은 엄연히 당신의 집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모계사회의 메커니즘은 삼대에 걸친 여자들의 입에 물린 실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노릇도 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엄격한 가부장제와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 엄마 세대는 할머니가 되어서는 ‘딸집살이’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이에 맞먹을 만한 시대 변화의 직격탄을 다름 아닌 우리 엄마들이 고스란히 맞은 셈이다. 그렇기에 당신처럼 못 배우지도 않았고 일도 척척 잘하던 딸이 결국은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이중 부담을 지는 상황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도 힘들다. 적어도 우리는 그녀들보다는 주체적으로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인 최초로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는 비구니 텐진 빠모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성들의 역사는 일부 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퇴한 면도 있습니다. 현대 여성들은 전보다 더 많은 짐을 지고, 스트레스도 더 받고 있지요. 옛날 여성들은 비록 넓은 시야를 가질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자신의 왕국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집과 직장 두 곳에서 왕국을 가져야 합니다.” 18년 동안 동굴에서 수행했다는 스님도 해결책을 모르겠다고 백기를 들어버린, 정말이지 뿌리 깊은 딸들의 잔혹사다.
마흔세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것 같은 심리적 상태는 나를 유년기로 유턴하게 한다. “내 아이를 스스로 키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자존감에 상처로 작용하여 내가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한다. 이런 내게 어느 후배가 직언했다. 온전히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을 다닌 그녀는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노모를 고생시킨다는 개념을 떠나, 제도적 문제를 개인이 떠안기를 자청한 꼴이잖아요. 이건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봐요.”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생각해보면, 육아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자본, 노력, 희생등)로 받아들이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와 노력을 부질없이 만드는 건 사실이다. 육아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문제라는 공동체적 인식 자체가 형성되기도 어렵다. 이런 악순환은 ‘내 새끼’를 키우는 데에서만큼은 무엇이든 감수하겠다는 엄마들의 지극한 모성애가 동력이 된다. 유대인 엄마가 쓴 <왜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 같은 책을 통해 모성애가 현대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였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도 막상 실천할 수 없었던 나 같은 엄마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말이다.
몇 년 전, 알랭 드 보통이 세계여성경제포럼에서 ‘새로운 모계사회’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듣고 싶은 답을 정해버렸다. 작금의 모계사회에 대한 타당성의 근거라든가, 이 혁명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법이라든가, 그러니까 나 같은 고단한 워킹맘을 위로할 만한 주옥같은 문장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랭 드 보통이 어떤남자인지 잊었던 모양이다. 그는 ‘나의 가장 큰 불행이 되었을 만한 일은?’ 같은 프루스트의 질문에 ‘어머니 혹시 할머니를 몰랐다면!’이라고 답하던 사람이었고,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일의 대부분은 돈에 의해 평가됩니다. 육아는 경제적인 가치와는 무관해 보이기 때문에 저평가되고 있지요. 우리는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존중을 표하는 반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말에는 시큰둥합니다.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죠. 왜 우리 사회는 어머니인 상태를 무시하는 걸까요? 물질적인 세상에서 다음 세대를 기르는 공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육아는 희생, 인내와 같은 많은 ‘기술’이 뒤따라야 하는, 이 사회에서 가장 명망 높은 일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정의한 진정한 모계사회란 여자가 육아와 일의 부담을 끌어안고 무조건 사회생활에 매진함으로써 무게중심을 여자들이 가져오는것이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의 상태’를 존중함을 말한다. 그는 여성 복지 정책을 고민할 때 경력 단절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거나 육아에 보수를 주자는 식의 접근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육아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육아와 가사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않는 한, 직장에서의 여성의 일과 역할 역시 온전히 그 가치를 찾지못할 거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집에서 노는 누구누구네 엄마’ 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여성들은 노동자로서 존중받기에 충분할 만큼‘남성적’이 되라는 압박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존중받기 충분할 만큼 ‘여성적’이 되라는 압박을받는다”. — 켄지 요시노 <커버링> 중
“여성들에게 속해 있던 가치, 이를테면 존중, 자비, 공감, 이해 같은 여성성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지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GDP 같은 지표는 행복과 관계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 모두 그간 폄하된 여성적 가치관을 되살려 균형을 맞추는 것이 미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언젠가 오바마는 딸의 공연에 가느라 정치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는데, 그것이야말로 여성성의 가치를 따른 역사적 행동이었다. 또한 12세기 무렵 베니스 유리공예 장인들이 깨지기 쉬운 유리 제품을 만들었던 이유가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종일 사냥과 전쟁에 몰두한 남자들이 식탁에서 그 잔을 쥐는 순간만큼은 부드러워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균형 잡힌 여성성은 내 남편이 아니라 지금의 내게 더욱 필요한 미덕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딸아이가 깜짝 발표를 했다. “나는 결혼을 안 하려고.” 대체 무슨 소린가? “엄마를 보니까, 아이 낳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 처음에는 크게 반성했다. 내가 얼마나 데친 시금치처럼 굴었길래 저런 이야기를 할까. 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식들에게 마냥 행복한 모습만 보일 수도 없고, 그것도 일종의 강박 아닐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적어도 딸아이는 이 사회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느라 점점 남성적으로 변해가는 엄마라는 인간의 상태를 파악한 셈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딸의 아이를 지금의 친정 엄마 처럼 봐주는 게 아니라 현명한 답을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마이올리노의 작품에서처럼 입에 물린 실을 끊어내는 것이다.
86년 전, 염상섭의 <삼대>는 조씨 가문 삼대가 상징하는 시대적, 세대적 비극을 다루었다. 나는 오늘도 망설인다. 2017년 윤혜정의 <삼대>를 낭만주의로 쓸 것인가, 사실주의로 쓸 것인가. 그때 딸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쨌든 한 해가 가고 있으니 내년에 다시 생각해보렴.”
- 에디터
- 윤혜정
- 작가
- 김희수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