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휴의 돛

2018.06.13

휴의 돛

크루즈를 탔다.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고, 눈을 감았다 뜨면 새로운 항구에 도착한다. 어제는 대만, 오늘은 일본. 크루즈 내의 살롱에서 드레스업하고, 정찬과 샴페인, 바다 위의 별을 즐겼다.

한 노부부는 크루즈를 타고 세계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알래스카의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고, 유럽의 항구도시에 정박해 로컬 와인을 즐겼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부인은 집을 팔고 전 재산을 정리해 크루즈 여행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석 달 일정의 유럽 크루즈가 끝나면 한 달 일정의 폴리네시아 크루즈에 탑승하면서. 그녀에겐 육지의 집보다 남편과 즐겁게 시간을 보낸 크루즈가 더 편안하기 때문 아닐까. 내가 프린세스 크루즈의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에 탑승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크루즈에서의 삶이, 생활이 가능할까? 이곳은 배 위의 섬이자 도시이며 낙원일 수 있다. 규모부터 그렇다. 부산항에 내렸을 때 마중 나올 친구에게 “부산항에서 가장 큰 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라고 말했다. 친구는 한참을 헤맸는데 그 이유가 “배가 아니라 건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는 건물 19층과 비슷한 69m 높이에, 63빌딩을 옆으로 눕힌 것보다 긴 330m의 길이다. 3,000여 명의 승객이 탈 수 있고, 1,780개의 객실은 전체 객실의 80%가 개별 발코니를 두어 바다를 전망할 수 있다. 승무원 숫자만 1,345명인데, 손님 세 명당 한 명꼴로 직원을 둔 셈이다.

크루즈 시설도 놀랍다. 실내외 수영장 네 개와 월풀 스파 여덟 개, 야외 영화관과 900여 석의 실내 공연장, 정찬 레스토랑 다섯 곳과 각종 라운지 바 & 카페 & 뷔페, 게임방, 도서관, 집필실, 갤러리, 헤어 & 뷰티 살롱, 스파, 가라오케, 면세점, 그리고 농구테니스배구배드민턴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있다. 해수면에서 40m 높이엔 투명 유리 바닥의 다리를 설치했다. 다리를 건너면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나는 이곳에서 4박 5일간 머물렀다.

프린세스 크루즈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크루즈 라인으로, 최소 3일부터 최대 114일까지, 여섯 개 대륙, 300개 이상의 기항지로 항해하는 150여 개 일정을 갖췄다. 카리브해, 알래스카, 파나마 운하, 유럽, 멕시코, 남미,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타히티, 프랑스, 폴리네시아, 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캐나다, 뉴잉글랜드 등을 거친다. 나는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를 타고 대만 지룽항에서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항, 사카이미나토항을 거쳐 부산항에 도착하는 일정을 택했다.

짐을 꾸릴 때 드레스 두 벌과 하이힐 두 켤레 정도를 챙겼다. 아름다운 샹들리에로 장식된 로비에서 열리는 샴페인 파티를 비롯해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즐길 때 입기 위해서다. 크루즈에는 중식당인 하모니와 프렌치 식당인 라메르, 스테이크 전문 식당인 크라운 그릴, 소규모 정찬을 원할 경우 셰프의 특별 메뉴로 제공되는 셰프 테이블 루미에르 등의 레스토랑이 자리한다. 14층에 자리한 뷔페는 기항지인 아시아 국가를 배려한 아시아 음식부터 이탤리언, 프렌치까지 다양하다. 수영장 옆에는 랍스터 그릴 & 딤섬 바, 누들 바가 자리하며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도 있다. 모두 무료이거나 약간의 예약비만 내면 된다. 24시간 룸서비스 메뉴도 무료다. 12곳의 주방을 총괄하는 메인 셰프는 “300여 명의 직원들이 매일 150톤의 음식을 만들어요. 매일 2,000kg의 멜론을 자르고, 3,000마리의 치킨을 튀기며, 1.7톤의 고기를 굽죠”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배가 정박하는 지역의 음식 반영이 철칙인 터라, 기항지인 부산을 고려해 김치를 메뉴에 넣었다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레스토랑은 매일 갓 구운 피자를 제공하는 알프레도 피자리아와 호주 파티시에 노먼 러브의 초콜릿 디저트다. 나는 종종 초콜릿을 포장해 객실 발코니에서 와인과 함께 먹었다.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은 바다뿐이라 공간 감각이 사라지곤 했다. 마치 지구와는 별도의 행성에 남겨진 듯 외롭기까지 했다. 가끔 바다 밑으로 새처럼 날개를 펼친 가오리가 보여 시야에서 하늘과 바다를 나눴다.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를 이끄는 캡틴 항해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수평선이 보일 때입니다. 그리고 늘 경계하는 바는 바다 생물을 해치지 않고 항해하는 것이지요.” 그는 이번 항해 후에는 호주를 모항으로 출발해 뉴질랜드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호주로 돌아갈 예정이다. 크리스마스는 호주에서 맞게 될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 유기농 순면의 보드라운 침구를 덮었다. 침대에 누우니 생각보다 진동이 적고 편안하다. 배의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배의 진동을 최소화하는 침구를 특별 제작한 덕분이다. 크루즈 전용 메신저로 조식 룸서비스를 예약한 뒤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크루즈의 행사 일정을 적은 ‘선상 신문’이 배달된다. 공연장에서 열릴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기항지의 프레젠테이션, 실외 풀장에서 상영할 영화 소개와 로비에서 열릴 디제잉 파티 등 매 시간 각양각색의 이벤트가 열린다. 기항지에 내리지 않고 크루즈에만 머무는 승객이 있을 정도다.

물론 나는 기항지인 나가사키와 사카이미나토를 둘러보았다. 크루즈의 매력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는 것이니까. 크루즈에서 시내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숙식 걱정 없이 가볍게 근교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여행이라 편했다. 그래도 여행은 여행인지라 피곤해지면 크루즈의 스파에 들렀다. 스톤 마사지부터 다이어트를 위한 래핑 마사지까지 다양하다.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사우나는 예약하면 단독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스파 옆의 헤어 숍에는 파티를 준비하려는 여성들이 네일 서비스를 받거나 드라이를 하고 있다. 원하면 치아 미백까지 받을 수 있다. 드레스업한 이들에겐 파티에 참석하기 앞서 사진가가 기념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나는 떠들썩한 파티는 뒤로하고 혼자 피트니스센터로 내려갔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달렸다. 바다를 뛰는 기분이었다. 종종 밤 수영도 했다. 크루즈에서는 어울려 파티를 즐겨도 좋고, 나와 바다만 존재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Princess Cru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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