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품격
수백 명이 사망한 롬복 지진은 이웃 섬에 사는 내 마음에도 여진을 남겼다. 재난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장기 체류하다가 지진을 느꼈을 때는 깜짝 놀랐다. 2016년 경주 지진도, 2017년 포항 지진도 서울에 머물고 있었기에 느끼지 못했다. 책상에 있던 물컵이 덜덜 떨리고 벽이 흔들리는 찰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이 아주 강렬하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이 정도면 건물이 무너지나? 이게 무너지면 나는 죽나? 책상 밑에 들어가면 살 수 있나? 단층 건물이니까 천장이 무너져도 책상에 실리는 하중이 무겁지 않아서 살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이 책상 너무 약한데? 밖으로 나가야 하나? 땅이 쩍 갈라져서 그 틈에 빠져 죽는 건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오는 거고 실제 지진이라는 건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언젠가 친구는 늦은 밤 빗길에 운전을 하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몇 바퀴를 회전하는 동안 속으로 ‘한 바퀴, 두 바퀴…’ 세고 있는 자신에 놀랐다고 했다. 죽음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생각을 회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뉴스에서나마 목격해놓고도 지진 대피 요령을 익히지 않은 나란 인간의 게으름을 원망했다. 솔직히 그전까지 인도네시아가 일본과 연결된 ‘불의 고리’라는 것도 몰랐고, 불의 고리가 학교 다닐 때 귀에 인이 박이게 들은 ‘환태평양 조산대’와 같은 지역이란 사실도 몰랐다. 그 후에도 지진은 계속 발생했다. 그리고 어지간한 지진으로는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점점 태연해졌다.
요즘 내 집 테라스에서는 아궁산이 보인다. 지난해 11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 곧 폭발할 거라는 예측이 전 세계에 보도되고 발리와 롬복 공항이 폐쇄되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활화산이다. 한국의 지인들은 여기가 안전하냐고 자주 물었다. 나는 검은 연기를 풍풍 뿜어내는 바다 건너 화산을 3D 디지털 액자인 양 감상하며 “어휴, 괜찮아, 그만 좀 물어봐”라고 귀찮아했다. 나보다 인도네시아 뉴스에 훨씬 민감한 내 어머니는 “그 위험한 데서 왜 사냐,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경주와 포항에서 벌어진 지진을 상기시켜드렸다. 어머니의 집은 포항과 경주, 원자력발전소 두 군데를 각각 1시간 이내로 둔 동해안 작은 마을이다. 그때도 TV를 보지 않는 나는 지인들의 안부 문자로 고향 근처에서 난 지진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자 어머니는 정작 태평했다. “그래, 그랬다며? 여기는 상관없다.”
사람들이 자연재해를 인식하는 태도는 북한 미사일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해도 외신, 해외 동포들이나 걱정하지, 정작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지 않나. 외부인들에게는 뉴스 속 상황과 지명이 단순히 1 대 1로 연결되지만 막상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와 미사일 혹은 지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일상적 존재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한 잔의 맥주와 프라이드치킨이 이웃 마을에서 건물이 무너진 사건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직접 겪지 않은 불행은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나와는 무관할 거라 막연히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홋카이도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결정한 사람들도 그랬을 거다. 최근 홋카이도에서 규모 6.7 강진으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95만 가구가 정전이 됐다. 연이어 태풍 때문에 오사카 간사이 공항까지 폐쇄되면서, 일본의 위기 관리 시스템이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내가 일상이 된 위협을 다시 고민한 계기는 7월 말 롬복에서 발생한 진도 7.0의 강진이었다. 그날 나는 근처 섬인 누사페니다에 있었다. 처음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이미 이곳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진동이 금방 멈추리라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실내 유리문이 덜덜 떨리고 지붕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스프링에 튕기듯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날 밤에는 해일주의보 때문에 저지대 주민들이 산꼭대기로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이튿날, 그 지진의 진원지가 롬복이었고, 사망자가 수백 명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흙더미에 묻힌 주택을 파헤칠수록 사망자는 점점 늘어 종국에는 563명에 이르렀다. 1,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구조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피해 지역 바로 옆에선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고, 자카르타에선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다.
그 후 몇 번 더 여진이 있었다. ‘또 지진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평할 때도 많았다. 흔들린 건 세상이 아니라 나의 장기였다. 혹은 뇌가 나를 속인 거다. 지진 후 롬복이나 길리에서 누사페니다로 대피해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도 자주 비슷한 착각을 한다고 했다. 몇몇은 건물이 무너져서 사람을 덮치는 걸 목격한 터라 겁이 나서 돌아가기 싫다고 했고, 누군가는 당분간 관광객들이 오지 않을 전망이라 주인이 복구를 포기해서 일터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진 못지않게 재난 후의 흉흉한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선착장에서는 서로 먼저 보트를 타겠다고 싸움이 벌어졌고, 혼란을 틈타 강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간이란 동물은 위기에 봉착하면 잔인해지는 습성이 있다. 대형 재난은 재난 그 자체로 한 번, 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바닥을 드러냄으로써 또 한 번 고통을 야기한다.
지진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롬복도, 길리도 관광업을 재개한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롬복 북쪽 화산 지대의 이재민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담요와 옷가지, 각종 구호물자가 부족하다는 호소도 들려온다. 급기야전염병인 말라리아까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내게 거짓말 같은 천재지변의위협이, 일상과 뒤섞인 채 너무 오래 주변에서 듣고 겪어 무감해진 멸망의 징조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생한 자각을 안겨주었다.
지난 6월, 모처럼 한국에 간 나는 평범한 서울 맞벌이 가정의 아침 풍경에 충격을 받았다. 방방마다 공기청정기를 켜둔 아파트에서 자고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척척 확인하더니 온 식구가 일회용 마스크를 착착 꺼내 쓰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SF의 한 장면 같았다. 거기 눌러살때는 몰랐으나 동남아 시골을 전전하다 가니 서울의 봄 공기는 숨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한 달 내내 온몸이 퉁퉁 붓고 피곤하다 싶더니 생리를 세 번이나 했다. 나는 탈출하다시피 그곳을 떠났다. 롬복, 홋카이도, 피지에서 대형 지진이 연달아 일어나자 ‘불의 고리 50년 주기설’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환태평양 조산대가 50년 주기로 활동기와 휴지기를 반복하는데 아무래도활동기로 들어선 것 같으니 당분간 조심해야 한다는 거다. 그 와중에 일본정부는 2011년 대지진 이후 처치 곤란이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92만 톤을 바다에 내다 버리려고 논의 중이다. 보다 안전한 방법이 있지만바다에 버리는 것이 워낙 압도적으로 싸기 때문에 방류 쪽으로 결정 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지난 늦여름에는 2030년 여름철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질 거라는 새로운 전망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해수면이 상승해 몇몇 해안 도시가사라지고 해빙 호수에 매장된 메탄가스가 방출돼 지구온난화가 가속하고해양이 산소 결핍 상태에 이르고 오존층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과학자들이 전망하는 북극 빙하의 소멸 시점이 2100년에서 2050년으로, 급기야 2030년으로까지 당겨졌다는 거다. 이제는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도 지나버렸다는 절망적인 예측이다. 이건 정말 불길하다. 점쟁이들은 언제나 ‘당신 내년에 결혼한다’, 석‘ 달 뒤 이직수가 있다’고, 막상 그때가 되면 점괘가 기억도 안 날 시점에 대해 예언하지, ‘너 내일 사고 난다’고 하지 않는다.기후학자들에게 12년은 점쟁이의 내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정말로 12년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리콘밸리 부자들은 핵전쟁, 생물학전, 좀비 바이러스, 상위 1%를 겨냥한 혁명 등에 대비해 뉴질랜드에 벙커를 짓는다는데, 평범한 우리는 당장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닥치는 대로 대출을 끌어다 세계 여행을 떠나는 정도로 만족해야 되나. 적어도 연금보험은 당장 끊어야지 싶다.
이래저래, 언제 인류가 사멸한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 절망적인 건 이런 재앙에 대해 개인이 뭘 어떻게 대비하고 예방할 여지가 없다는 거다. 쓰레기 덜 만들고, 이산화탄소 덜 배출하고, 미친 정치인들에게 투표하지 않고, 위험 지역 여행 자제하고, 되도록 실내에서 생활하는 등 자질구레한 실천법이 있긴 있겠으나, 이제 와서 그런다고 그동안 전 세계가 중국과 동남아로 떠넘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가 사라지지도 않을 거고, 북극해가 다시 얼지도 않을 거고, 미세먼지가 금가루로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환경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고, 우리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재난 그 후’일지도 모른다. 건강하고 기품 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만큼이나, 언제어느 순간 거대한 재난이 나를 덮친다 해도 구조선에 먼저 타려고 임산부를내동댕이치거나 며칠 더 살아보겠다고 남의 반려동물을 잡아먹거나 좀비 떼에게 어린애를 미끼로 던져버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고 우아하고 질서 있게죽음을 맞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일부 일본인들은 동일본 대지진 후에 위기 상황에서 가구가 굴러다니며 흉기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니멀리스트가 됐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못해도 생존 배낭 정도는 장만하는 게 좋을것 같다. 마음 한쪽에서는 ‘그래도 무슨 수가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인류의집단 선택이 항상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내려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다시 좌절감이 찾아온다. 아무래도 SNS와 하드 드라이브의 부끄러운 내용은 미리미리 정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뻔한 질문도 다시 심사숙고해봐야겠다.
물론 여전히 나와 인류의 종말 사이에는 일상이 남아 있다. 당신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밤사이 완충된 휴대폰을 열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그러다 홀린 듯 실종된 중국 배우에 대한 가십과 간밤 TV쇼 명장면 클립으로 흘러들고,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 그러다 문득, 그러니까 당신이 ‘오늘 저녁은 파스타로 할까, 김치찌개로 할까’ 따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땅이 흔들리고 머리가 핑핑 돌고 벽과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집 앞 편의점에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고 뉴스에서는 당신이 사는 지역의 재난 소식과 BTS 유럽 콘서트 티켓 매진 소식이 연달아방송되는 것이다. 당신은 준비가 되었는가? 사실 난 뭘 준비해야 되는지도잘 모르겠다. 미리 너무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Beau Grealy, Trunk Archive, Snapper Images
- 글쓴이
- 이숙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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