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30주년을 맞은 솔리드 옴므의 디자이너 우영미

2018.12.07

by VOGUE

    30주년을 맞은 솔리드 옴므의 디자이너 우영미

    30주년을 맞은 ‘솔리드 옴므’의 디자이너 우영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더 멀리 바라볼 뿐이다.

    묵직한 코트가 주축이 된 솔리드 옴므(Solid Homme) 2018 F/W 컬렉션.

    Q 지난 30주년 쇼를 치르고 나서 여유가 좀 생겼나. 무얼 하고 보냈는지 궁금하다.
    A 쉬지 못했다. 쇼를 끝내자 해외 매체 인터뷰가 연이어 있었다. 브랜드와 관련된 저녁 약속에 참석하느라 일주일이 훅 지나갔다. 패션쇼를 준비하는 동안 망가진 작은 온실도 관리하고, 골든 리트리버들과 산책도 하며 쉬었다. 동생이 플로리스트다 보니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식물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내년 1월 파리에서 ‘Wooyoungmi’ 2019 F/W 컬렉션이 나를 기다린다.

    Q 솔리드 옴므의 서울 컬렉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2013년 ‘Re:Born’ 쇼 이후 처음이다.
    A 5년마다 한 번씩 쇼를 연다. 이번이 30주년이고 서울디자인재단에서 나에게 서울 패션 위크 오프닝 쇼를 요청했다. 내가 서울 패션위크의 오너 디자이너를 할 나이대도 아니고 선배 디자이너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오프닝을 맡게 된다면 서울 패션 위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DDP의 살림터 잔디언덕이라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의 패션쇼이기에 팬, 고객, 기자, 바이어를 다 초대해야 하니 공간이 넓어야 했는데 제격이었다. 개인적으로 자하 하디드를 좋아하기도 하고, DDP의 묵직하고 굳건한 곡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주최 측에 이곳에서 패션쇼를 열게 해준다면 오프닝을 맡겠다고 전했다.

    Q 2018 F/W와 2019 S/S 두 시즌을 함께 보여주는 발상이 새로웠다.
    A 쇼에 오는 고객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입을 수 있는 2018 F/W를 보여주는 게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국내외 바이어들은 이미 봤던 옷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아 두 시즌을 함께 무대에 올렸다. 보통 시즌 테마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두 시즌을 한데 묶는 주제가 있으면 완성도가 더 높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작년부터 생각해오던 ‘반전(Anti-War)’으로 정했다.

    Q 반전이라는 특정 주제에 대해 숙고한 이유는?
    A 의식의 흐름대로 테마를 전개했다. 반전을 떠올리니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침대에서 보여준 ‘베드 인(Bed-Ins)’ 퍼포먼스, 그가 항의한 베트남 전쟁. 최근 베트남에 간 적 있는데 거기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의 이미지, 베트남 북부 무캉차이에서 영감을 얻은 구조물 등이 쇼에 등장했다.

    Q 두 시즌을 합치다 보니 모델이 무려 100명이었다. 일부는 인스타그램으로 공개 모집을 통해 선정된 이들이었다.
    A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해외 컬렉션과 달리 무대가 워낙 넓어 100명보다 더 많아도 될 것 같았다. 모델이 많이 필요했고, 새롭고 다양한 얼굴도 원했다. 한국 남자 모델이 그다지 많지 않아 캐스팅에 한계가 있었다. 캐스팅은 전적으로 딸이자 ‘우영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케이티 정이 담당했다. 우영미 쇼나 캠페인에 등장한 잘나가는 모델들도 있었지만, 인생의 첫 패션쇼인 모델도 있었다. 반응이 좋았다. 한국 모델이 100명이나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Q 백스테이지에서 상황을 지켜봤는데 다른 패션쇼처럼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로운 쪽에 가까웠다.
    A 옷을 갈아입지 않고 한 명이 한 벌의 룩을 담당해 런웨이에 서기도 했지만, 우리는 늘 안정적인 흐름으로 쇼를 준비한다. 당일에 다른 어떤 것을 시도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Q 다양한 관객, 광활한 무대, 많은 옷이 있었던 빅 쇼였기에 변수도 많았을 것 같다.
    A 쇼를 준비하며 자하 하디드의 멋진 잔디밭 밑이 비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빈 공간을 지탱하는 기둥도 없어 자칫하다간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쇼장를 공표한 뒤 알게 된 것이다. 초대 손님이 1,50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매번 3,000명 넘게 초대해왔다. 그래서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은 물론 가족과 친구 중 쇼를 못 본 사람도 많다. 암표를 구해서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관객을 제한하고 쇼장에 깔린 인공 토양과 무대장치를 최대한 가벼운 소재로 했다.

    Q 관객 제한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우영미’ 파리 컬렉션을 하면 프레스와 바이어가 아닌 한국 학생들도 입장시키지 않았나.
    A 그들이 한국 패션의 미래니까. 이번에도 일부 패션 학도들이 쇼를 관람했다. 백스테이지 헬퍼들도 대부분 학생이었다.

    Q 쇼 제목이 ‘Solid/Beyond 30’이었다. 지나간 30년보다 앞으로 다가올 30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A 한국에서 패션 브랜드가 역동의 세월을 거쳐 30년간 고객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남았다는 데 감사한다. 하지만 3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해외 명품 브랜드는 70년, 100년을 넘겼고 그렇게 해야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굳건해진다. 이제 시작이다. 서른 살은 청년이다. 이제 세상을 알까 말까 하는, 철이 들기 시작하는 나이다. 솔리드 옴므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지난 30년간 가능성을 국내 인구로 채웠다면, 이제 해외 진출이 숙명적 과제다. 전 세계 패션 캐피털, 대도시에 사는 남자들이 알고, 입고 싶어 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Q 당신의 30세는 어땠나.
    A 30세에 솔리드 옴므를 시작해 올해 60세다. 철이 없었다. 그때까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를 다니며 승승장구했다. 나 스스로 건방졌다. 천재인 줄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브랜드를 론칭했고 처음 30대가 되어 무언가를 책임지게 됐다. 그전에는 회사 탓, 선배 탓, 남 탓을 하다가 스스로 옷과 일에 대해 책임지기 시작한 게 바로 서른 살이었다.

    Q 얼마 전 서울 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당시와 지금의 사회상을 다각도로 조명해 화제였다. 바로 그 88년 신사동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 당시 신사동이나 패션계 분위기는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A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운명적으로 나와 뭔가가 있다. 88 서울 올림픽 때는 솔리드 옴므, 2002년에는 파리에서 처음 우영미 쇼를 발표했다. 생각해보니 시대적 흐름과 같이 성장했던 것 같다. 올림픽 전후로 패션계도 매우 달라졌지만 88년 서울에 남성 패션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거다. 남자를 위한 패션, 패션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별로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다. 남자들은 옷을 유니폼처럼 받아들였다. 출근할 때의 정장, 군대에서의 군복.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패션을 즐기면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하던 시기, 암흑기였다.

    Q 그 암흑기에 시작한 브랜드의 성장은 어땠나?
    A 90년대는 해외에 유학을 다녀온 1세대가 한국에 들어오는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그들을 ‘오렌지족’이 라고 표현했다. 압구정동 카페 중심으로 아지트를 만들던 그들이 솔리드 옴므를 눈여겨봤다. 또 올림픽 후 외국 문화가 많이 유입되고 해외여행도 자율화됐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운명적으로 바뀐 사회 분위기가 솔리드 옴므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Q 연예인들이 솔리드 옴므를 많이 입은 것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A 그 당시는 발라드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던 시기였다. 모든 발라드 가수는 우리 옷을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가 만드는 섬세한 남성복이 발라드 감성하고 잘 맞았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문세, 윤상, 이승환, 신승훈, 이승철… 발라드 가수가 모두 내 옷을 입었다.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없으니 생방송에서 누가 먼저 좋은 옷을 입느냐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할 정도였다. 연예인들이 브랜드 협찬이 아니라 옷을 사 입던 시기였다.

    Q 이번 컬렉션은 100벌이었지만 지금까지 당신의 손을 거쳐간 옷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렇게 많은 옷을 만들었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옷이 있나?
    A 88~89년 브랜드 초기에 만든 코트다. 개인적으로 코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분위기 있는 그 코트를 고객들이 좋아했다. 부드러운 소재의 라운드 숄더 하프 코트였다.

    Q 솔리드 옴므는 해외 스타일리스트는 물론 아티스트, 모델, 포토그래퍼, 다양한 이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협업 대상을 고를 때 단순히 실력을 넘어 다른 면을 눈여겨볼 것 같다.
    A 우선 ‘마담 우’를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 패션이라는 게 한 사람의 강력한 리듬으로 이끌어지는게 아니다. A와 B라는 다른 존재가 만났을 때 우연한 화학작용으로 예상치 못한 C를 도출하는 게 협업하는 이유다. 이게 안 되는 스태프도 있다. 이 경우 내가 상대방에게 끌려갈 수 있다. 오픈 마인드지만 자기 취향이 분명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기 싸움 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화려한 패턴의 셔츠, 재킷과 코트는 솔리드 옴므(Solid Homme) 2019 S/S 컬렉션.

    Q 최근 흥미를 가진 패션계 소식은?
    A 남녀 컬렉션 통합을 주의 깊게 보고있다. 고객을 남녀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시대다. 요즘 여성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서 관심이 간다.

    Q 그렇다면 우영미 여성복을 언젠가 볼 수 있나?
    A 마음속에 어떤 움직임이 있다. 기본적으로 앤드로지너스가 양성이 아닌, 중성이라는 생각이 있다.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 여자지만 남자다운 몸매가 있고, 남자지만 여성스러운 몸매를 지닌 사람이 있기에. 어떤 체형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지, 그에게 최적화된 옷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가 여성복을 하게 되면 이런 뉘앙스 아닐까.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는 안 했지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다.

    Q 솔리드 옴므가 한국 남자들이 옷 입는 방식에 끼친 영향은 뭘까.
    A 기성세대는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 행위를 눌러왔다. 그들에게 패션을 즐길 수 있고, 옷을 멋있게 입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조언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 패션이 삶에서 즐거운 일이라고 말이다.

    Q 글로벌 브랜드인 만큼 회사 운영 방식도 다를 것 같다.
    A 옷을 쥐어짜서 만드는 게 아니라 ‘기획’하는 쪽에 가깝다. 그때그때 새로운 경향을 반영하기 보다, 솔리드 옴므라는 틀 안에서 발전해나가는 편이다. 우리 스태프들은 솔리드 옴므가 어떤 옷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Q 디자이너가 안 됐다면 건축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 적 있다. 최근 관심이 간 공간은 어디인가.
    A 지금 사는 집이 이태원에 있는 몇십 년 된 빌라다. 서로 다른 두 채의 집을 구멍 내서 엮어보니 아주 재미있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이 공간을 꾸미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Q 해외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옷에 대한 묘사는 뭔가?
    A 남자의 몸을 솔리드 옴므 전과 후로 나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해외 브랜드 특유의 남성적 섹시함과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 한국 남자들이 지닌 시크함을 표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 기자나 바이어들이 나에게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게 한국 남자들이 아주 멋있고 시크하다는 거다. 한국 남자처럼 일반적으로 특정 집단 자체가 옷을 잘 입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이다.

    Q 그렇다면 당신의 언어로 솔리드 옴므를 설명한다면.
    A 전반적으로 바우 하우스 같은 취향의 브랜드라 생각한다. 절제되어 있고 꼭 필요한 것만 보여주면서 강력한. 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Q 제일 많이 오가는 파리와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뭘 할 건가.
    A 예전 파리에 오래 머물 때 뱅센 숲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하루만 주어진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퐁피두 매표소에 줄을 서겠다. 전시를 보고 마레의 앙팡루주 시장에 다녀온 뒤 우영미 매장이 있는 마레를 휘저으며 다닐 것 같다. 볼 게 많은 동네니까.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행인들을 바라보노라면 금방 하루가 갈 거다. 서울은 이태원에서 시작 할 듯하다. 리움 미술관에 들른 뒤 디뮤지엄을 거쳐 맛있는 점심을 먹는 루트. 하루에 압축해 무엇을 본다면 당대를 담은 컨템퍼러리 아트를 보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Q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브랜드와 당신의 계획이 궁금하다.
    A 솔리드 옴므는 해외시장 진출에 신경 쓸 계획이다. 연말엔 중국 하얼빈에 매장을 열고 맨메이드에서 시도한 솔리드 옴므 팝업을 뉴욕 삭스 피프스 애비뉴, 파리 프렝탕 백화점에서 연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세 살 난 손자와 같이 보낼 예정이다. 아이가 인지할 수 있는 첫 크리스마스이니 크리스마스 트리를 어떻게 꾸며줄지 궁리하고 있다.

    Q 해외에서 활동하는 건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평가당하는 일이다. 본인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있나?
    A 스튜디오에 앉아 옷감을 보고 옷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때가 나에게 가장 편한 시간이다. 하지만 세일즈나 비즈니스가 결부되면 많은 시련이 닥친다. 개인적으로는 108배 명상을 한다. 한동안 매일 한 적도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계속 질문한다. 10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기간이었다. 함께 일하던 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다른 세대와 일해야 하는 데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Q 디자이너는 일과 개인의 정체성이 동일시되는 직업이다. ‘직업이 곧 나’인 경우가 많다.
    A 그래서 끊임없이 ‘뉴’를 만들어야 하는 게 힘들다. 더 힘든 건 아트인 척하는 비즈니스다. 양쪽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 내 본성은 비즈니스보다 아트에 가깝지만 비즈니스를 해야 브랜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힘들었다. 파인 아트 작가면 속이 편할 것 같다. 치열하게 나와 싸우면 되고 눈치 볼 게 없으니 말이다. 디자이너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Q 그렇게 힘들던 순간에도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동력은 무엇이었나. 일종의 사명감인가, 개인의 창작 욕구인가.
    A 본성이 그런 것 같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옛날에 내가 이랬고 저랬고 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 과거를 금방 잊어버려 다행이다. 자라는 나무처럼 계속 위로 올라가는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인생 철칙을 믿는다. 모든 것은 변하기에 집착이 없다. 디자이너로서 뭔가 새로운 걸 원하는 열망이 아직 있기에 다행으로 여긴다. 패션은 늘 변하기에 매력적이다. 그 패션에 빠져 정신없이 남자 옷을 만들다 보니 30년이 지났다.

    Q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은 무엇인가?
    A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나의 한계에 의구심을 가졌으며 우영미라는 사람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누군가 나의 등을 떠밀어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기보다 모든 건 내가 선택했다는 것을.

      에디터
      남현지, 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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