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다양성 – 화사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부터 케이트 모스까지 ‘美’는 늘 새로 규정된다. 화염보다 뜨거운 화사, 백만 가지 얼굴의 이사배, 관능의 플러스 사이즈 미아 강… 현재적 미학에 관한〈보그〉의 다양성과 포용성.
포털 검색 사이트에 ‘화사’를 치면 가장 첫 줄에 ‘1995년생, 전라북도 전주’란 출생 정보가 떠요.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열다섯 살 안혜진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질풍노도의 아이콘이었죠(웃음). 중학교 시절 특히 심했어요. 툭하면 엇나갔거든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골라서 다 했죠.
이를테면 어떤 식이었죠?
“일찍 들어와라” 하면, 새벽에 들어가는 거죠.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행동은 옳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저 고분고분하게 순종하고 싶지 않았어요.
실례지만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언니가 둘 있어요.
딸 부잣집 막내딸이군요!
맞아요.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했어요. 그런데 저는 막내인 데다 언니들에 비해 애교도 많아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저한테만큼은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를 허락해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죠.
가수는 언제부터 꿈꿨나요?
글쎄요. 생각이란 게 생길 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자아가 생길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는 생각이란 개념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상당히 오랜 꿈을 이뤘군요.
행운아죠. 노래하고 춤추는 게 그저 좋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려면 가수가 되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길을 찾았어요. 저는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거든요. 시도조차 안 해요. 대신 좋아하는 일은 누구도 못 말리죠.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편협한 방식인데 전 확고했던 것 같아요.
처음 화장한 때를 기억하나요?
그럼요. 아마 네다섯 살? 어릴 때부터 화려한 것이라면 뭐든 좋았어요. 화장이란 행위도 그 범주에 포함됐죠. 곱게 화장하고 한복에 엄마 구두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꽃구경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쟤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정도로요(웃음).
근데 무대 밖에서의 화사는 수수함 그 자체예요.
이게 정말 희한해요. 어릴 때부터 화려한 것이라면 뭐든 동경하고 지금도 화려한 취향에 가깝지만 경험치가 높아져서 그런지 이제는 수수한 게 좋더라고요. 스케줄이 없을 땐 늘 트레이닝복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다녀요. 말 그대로 ‘널널한’ 모습이죠. 근데 언제부턴가 그런 제 모습이 좋더라고요.
촬영에 앞서 가급적 ‘쎄’ 보이는 화장은 피해달라 당부했어요.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세게 한다고 그 인물이 세 보이는건 아니니까요. 옷을 꼭 벗어야만 섹시한 것이 아닌 것처럼요.
사실 <보그>는 화사의 민낯을 원했어요.
아예 민낯이요? 와우! 아직 공식 석상에서 ‘생얼’을 드러내는 경지엔 못 올랐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는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엔 민낯을 가리기에 급급했다면 요즘엔 화장기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사랑하기 시작했죠.
얼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어디죠?
눈. 예전엔 작고 짝짝이인 제 눈이 정말 싫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마냥 좋더라고요. 눈빛도 그렇고, 화장 지웠을 때 180도로 달라지는 반전 매력도요.
반면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위가 있다면?
음, 입술이요.
그럴 리가!
좀 얇거든요. 그래서 늘 오버 립으로 연출해요. 도톰해 보이게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저만의 해결 방식이죠.
광고 브랜드 평판 1위에 올랐어요. 비결이 뭔가요?
이 질문은 특히 고민돼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매사에 진심을 다해서 꾸밈없이 행동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안 그러면 재수 없어 보이니까요(웃음). 보이는 이미지가 세고, 도도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털털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것 같아요.
오늘 제가 느낀 화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소탈해요. 그런 당신이 죽어도 못 견디는 상황은 언제일까요?
가급적 먹는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은데 너무 배고파서 미칠 것 같은데 주문한 음식이 늦게 온다. 이러면 정말 화나요(웃음). 웬만하면 화 잘 안 내는 스타일인데 신경이 곤두설 땐 항상 공복, 음식에 관한 문제가 뒤따르죠.
잘 먹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날씬해요. 타고났나요?
생각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요. 예민하죠. 막 먹다가도 스트레스 받고 가슴앓이하다 보면 알아서 빠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 깨부수고 싶은 고정관념이 있다면?
지금도 많이 깨부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진행형인 거죠. 요즘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의외로 착하다”란 이야기를 많이 해요. 보통 ‘착하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거든요.
‘만만하다’의 순화된 표현일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루하루 편견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촬영 준비 과정에서 브랜드로부터 지양해줬으면 하는 화사의 뷰티 룩을 전달받았어요. 양 갈래 머리가 그중 하나였죠.
어, 왜 안 된다고 했지? 저는 해도 상관없거든요(웃음). 근데 제가 귀여운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하긴 해요.
무대에선 다양한 시도를 하잖아요. 이런 쪽으로 당연히 거부감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 대놓고 귀여운 거 있잖아요. 짧은 테니스 스커트 입고서 입술 쭉 내밀고. 정말 딱 질색이에요. 뭔가 자연스럽게 귀여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상관없는데 요즘의 귀여움은 대부분 인위적인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동의해요. 영상 촬영 중 롤모델로 리한나를 언급했어요.
연습생 시절 리한나의 음악과 무대 위 퍼포먼스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느꼈어요. 그날 이후로 리한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미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녀의 어떤 점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나요?
다양성. 왜냐하면 평소 리한나는 굉장히 여성스럽거든요. 근데 무대 위에선 정말 강인해요. 캐주얼과 엘레강스를 넘나드는 스타일도 한몫하죠. 저도 리한나처럼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반엔 정말 많이 따라 했죠. 고등학생 시절 리한나가 머리를 밀고 나왔을 때 저도 똑같이 밀었어요. 스포츠용 칼로 제가 직접 잘랐죠. 그날 대표님에게 엄청 혼나던 기억이 나요. 바로 전날 데뷔하는 날까지 머리를 건드리지 말고 계속 기르라고 하셨거든요(웃음). 그런데 뭐랄까, 이 머리로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화사답군요. 요즘 눈뜬 새로운 관심사가 있나요?
철학이요.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못했거든요. 지금도 철학의 ‘철’도 몰라요. 근데 언제부턴가 그쪽으로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책을 왜 읽어, 그 시간에 노랠 듣지’라며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무식했죠. 요즘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머릿속으로 활자를 흡수하는 느낌이 정말 새롭더라고요.
‘다양성’은 이번 뷰티 화보의 큰 테마예요. 개성이 인정받는 ‘뉴 뷰티’의 시대죠. 화사의 남다름은 뭘까요?
자신감, 열정, 슬픔.
슬픔이요?
차별이나 편견, 선입견처럼 저를 괴롭히는 무형의 것들이 똘똘 뭉쳐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이런 슬픔의 감정이 절 성숙하게 만들었죠.
미래의 화사를 꿈꾸는 Z세대를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절 보고 성공했다고 말하겠지만 데뷔 초보다 지금이 슬럼프 같아요. 그때는 열정이 들끓어 깡으로 가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뭔가 영리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게’라는 게 생겨 함부로 뭘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실수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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