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오브제와 빈티지 오브제 숍 3
아트 오브제와 빈티지 오브제를 파는 공간을 걸었다. 무엇도 깨고 싶지 않아서,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걸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유명하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정체 모를 숍을 찾아다닌다. 한번은 동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 정도로 미술 관람에 관심 없는지 몰랐어.” 진심으로 놀란 듯 입 밖으로 굴러 나온 말이었고, 그 말에 나 역시도 머리를 긁적이며 “그, 그, 그런가”라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여행하면서 찾는 방문지 1순위는 늘 ‘사고 싶은 것이 많은 귀여운 숍’, 2순위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술집’이다. 3순위 혹은 4순위쯤 되어야 미술관? 물론 영국에선 압도적으로 갤러리를 많이 찾고, 일본에선 두말할 것 없이 작은 가게를 찾아 나서지만 확실히 미술관과 박물관은 선택지에서 아래로 밀린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별안간 문장 하나가 불쑥 터져 나왔다. “나는, 사는 게 좋아. 모조리 사서 집에 가져가고 싶고, 옆에 뒀다 저리 치웠다 다시 닦았다 사진도 찍고 그러고 싶다!” 나는 작은 소품류를 파는 가게에 들어서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동시에 지갑도 주체할 수 없이 벌렁거린다. 그렇게 이래저래 사 모은 물건들을 얼마 전 플리 마켓을 열어 싸게 내다 팔았는데, 기백만 원이 통장에 들어온 것을 보고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 애초에 얼마를 쓴 것인지? 해외여행 중 예쁜 물건이 보이면 아무리 커도 트렁크에 넣을 자리를 만들고, 깨지는 제품을 핸드캐리할 큼직한 위크엔드 백도 트렁크에 넣어 다닌다. 진짜 벼룩도 팔 듯한 지저분한 벼룩시장부터 취향이 아주 쩌렁쩌렁 울리는 고급 셀렉트 숍까지 뭐라도 하나씩 사서 손에 들어야 안정되면서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생각했다. 서울에는? 그래서 지난 몇 주간 서울의 작은 아트 오브제 겸 빈티지 숍 몇 곳을 작정하고 돌아다녔다.
이촌동 작은 시장 골목에 스며들듯 자리 잡은 ‘39etc’는 동네 편의점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안에 들어찬 것들을 하나씩 둘러보려면 오후 시간의 한 뭉텅이를 투자해야 할지 모른다. 빈티지 유리잔과 유리 화병, 세라믹 오브제가 조화롭게 늘어선 와중에 파리에서 활동하는 일본 세라미스트 마도카 린달의 얼굴 모양 찻잔이나 90년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쇼의 헤어피스를 만들며 시작된 브랜드 블레스의 범상치 않은 멀티콘센트까지 사이사이에 섞여 있다. 국내 작가와 브랜드도 조화롭다. 수집가의 취향이 일관되게 전달되는 곳을 좋아하는데, 39etc는 전반적으로 귀엽게 웃을 줄 알고 위트 있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떠오르는 오브제로 그득하다. ‘오래된 물건’이라는 느낌보다 ‘아껴둔 좋은 물건’이라는 기분이다.
수집가의 취향이 명확한 곳을 꼽으라면 연희동에 새로 이사 온 ‘빅슬립’이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모으는 사람의 사랑스러운 부산스러움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디자이너 이름으로 기록되거나 연보를 찾을 수 있는 빈티지 제품보다, 수집가가 구석구석 누비며 길어 올린 무명의 빈티지 제품이 주를 이룬다. 이곳에만 있다. 인터넷을 뒤지고 셀러를 수소문해도 이곳 제품과 같은 것을 찾기란 퍽 힘들다. 손바닥으로 가려질 크기의 테이블 램프가 많은데, 그중 버블이나 레이스 모양의 유리 갓과 선명한 컬러의 몸체가 이어진 동유럽풍이 눈에 띈다. 확실한 김민정 대표의 취향이다. 따뜻한 노란 불빛이 작은 원을 이루며 번진 공간에는 김 대표가 좋아하는 버섯 오브제를 많이 만드는 작가 김소라의 ‘나이트프루티’ 오브제, 작가 고화영의 ‘호텔 뚜’ 향초 제품이 어우러져 있다.
미드 센추리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를 소개하는 한남동 ‘컬렉트’의 허수돌 대표는 이렇게 여긴다. “바젤 아트페어나 밀라노 전시회를 가보면 빈티지 제품과 현대 디자이너의 제품을 섞는 게 무척 자연스러워요. 결국 그렇게 잘 어우러져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컬렉트는 매장 앞에 ‘위클리 캐비닛’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컬렉트의 빈티지 컬렉션과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를 비정기적으로 연다. 두 가지를 배치해 공간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진짜 ‘안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컬렉트는 북유럽 위주의 빈티지 숍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어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까지 영역을 넓혀 40~70년대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을 선보인다. 유리 블록으로 채운 이국적인 벽면 때문인지, 좋은 안목으로 세심히 고른 제품 때문인지, 가구와 함께 작은 오브제가 조화를 이룬 덕분인지, 자꾸 사진 찍고 싶은 공간이다. 하염없이 서서 제품을 들여다보고 싶다. 복각되어 지금도 판매되는 새 제품과 또 다른,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디테일의 차이를 찾는다면 빈티지 가구에 매료될 준비운동이 끝난 셈이다. 박물관이 아니라 빈티지 숍의 가구를 보고 가슴이 뛰는 건 이 특별함을 일상으로 들일 수 있다는 기대 덕분이다. 연남동 ‘서울콜렉터’에서는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콜렉터는 카페 겸 숍 겸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한국’과 서울’을 키워드로 조선시대 일상품을 발굴해 선보이기도 한다. 유물이 아닌 갖고 쓸 수 있는 오브제를 수집했다. 대표의 할머니가 쓰던 작은 꽃병, 지인 집에 있던 서적 등도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파는 빈티지 탁상시계는 여지없이 정확하게 시간이 간다. “진열장 같은 데 넣는 것이 아니라 실용품으로 쓸 수 있게 제안하고 싶었어요.우리가 지닌 것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훨씬 더 이해도 높은 접근입니다.” 조수미 대표의 시선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찻잔과 접시를 향했다. 서울콜렉터의 컬렉션은 동아시아의 오브제까지도 펼쳐진다.
서울의 몇 군데 숍을 돌다 보니 빈티지와 새 제품의 경계는 보기 좋게 흐려졌다. 수집가의 취향이 중심을 잡고 다양한 붓질을 덧댈 뿐이다. 특별하기에 소유하고 싶은 아트 오브제, 큰 쓸모보다는 작은 만족을 주는 아트 오브제를 일상에 들일수록 공간은 밀도가 높아진다. 이미 서래마을 ‘룸퍼멘트’, 논현동 ‘인포멀웨어’ 등은 이런 경계를 지운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유명하다. 을지로에 있는 빈티지 패션 편집숍 ‘오팔’을 찾았을 때 김요한 대표가 빈티지 수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빈티지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DJ가 좋은 음반과 음악을 과거에서 찾는 일과 같다.” 나는 완전히 동의했다. 게다가 좋은 DJ는 옛날 노래와 요즘 노래를 하나로 엮어 전혀 세련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지 않나. 서울의 골목을 열심히 돌며 몇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앤티크, 레트로, 추억, 보물. 서울의 아트 오브제 &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이들이 가장 경계하고 싶은 단어일 것이다. ‘유럽 빈티지 제품은 많은데 왜 한국 빈티지 제품은 많이 보이지 않지?’라는 물음표를 떠올렸다면 우선 ‘추억’이나 ‘레트로’ 같은 단어를 멀리 던져 버릴 필요가 있다. 과거의 것을 생경한 시선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일상에 녹이는 것, 현재의 좋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것이 빈티지 오브제를 향유하는 방법이니까. 내가 들른 빈티지 숍 외에도 수없이 많은 숍이 있다. 연희동 ‘티티에이’, 을지로 ‘나이스숍’, 통의동 ‘앙봉꼴렉터’, 남창동 ‘키오스크키오스크’, 온라인 기반의 ‘카바라이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비욕과 소유욕이 동시에 펄펄 끓어오른다.
- 글
-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김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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