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호사스러운 일상의 주인공이 된 펫

2021.10.29

by 송가혜

    호사스러운 일상의 주인공이 된 펫

    럭셔리 로고가 각인된 그릇에는 유기농 비건육, 디저트는 프로즌 요거트. 실버 펜던트 목걸이를 차고 산책 후엔 피로를 푸는 프라이빗 스파까지. 이 호사스러운 일상의 주인공은?

    지난해 국내 반려동물 인구는 약 1,500만 명이다. 쉽게 말해, 네 가구 중 한 집은 한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SNS에는 반려동물이 직접 운영이라도 하는 듯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랜선 펫’들의 계정이 수백만 개에 이른다. TV 광고와 프로그램에선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쯤 되면 이 복슬복슬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야말로 요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커다란 축이다.

    ‘펫팸(Pet+Family)족’, ‘펫캉스(Pet+Vacance)’, ‘펫미(Pet=Me)족’, 펫부심(Pet+자부심)’ 등등. 바이러스 시대는 ‘펫’과 관련된 신조어를 무수히 양산했다. 그중에도 최근 주목받는 키워드는 ‘펫셔리(Pet+Luxury)’. 하나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반려용품 소비다. 이 카테고리는 당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기상천외할 만큼 다채롭다. 에르메스, 프라다, 펜디, 몽클레르 등이 경쟁적으로 선보이는 캐리어, 우비, 밥그릇 등은 기본이다. 심지어 반려동물 전용 유치원, 수영장, 스파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1,000만원짜리 회원권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전에서 영감을 얻은 420만원 상당의 반려동물 스위트(Suite), 시간당 약 35만원의 고급 뷰티 서비스와 호텔 셰프가 알레르기 유무에 맞춰 특별 제작한 애프터눈 티 세트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현대판 귀족의 일상처럼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추산한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3조4,000억원. 이런 속도라면 2027년에는 6조원대에 이를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사태로 반복된 ‘집콕’ 생활이 오히려 반려동물의 삶의 품위를 높여준 건가? ‘애완’이 아닌 ‘반려’. 단순히 귀여워하고 예뻐해주는 객체가 아니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가 되고, 코로나로 실내 생활이 주를 이루면서 반려동물과 나누는 감정적 유대감은 더 끈끈하고 애착 관계는 강해졌다. 이제 반려동물을 또 다른 자아처럼 여기며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해주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증폭한 것이다. 여행, 외출을 자제하는 대신 럭셔리 제품에 대한 보복 소비 트렌드 역시 ‘펫셔리’ 산업의 몸집을 키우는 데 한몫 거들었다. 여기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펫플루언서(Pet+Influencer)’들의 SNS 속 화려한 일상까지.

    패션, 레저 분야만큼 뷰티 비즈니스 역시 ‘펫셔리’와 다각도로 맞닿아 있다. 이런 흐름을 일찍 감지한 산타마리아노벨라, 키엘, 이솝 등은 반려동물용 제품을 선보였지만, 이제는 오직 반려동물만을 위한, 펫 전용 프리미엄 브랜드가 늘고 있다. 100만원짜리 헤어커트와 화려한 고객 리스트로 유명한 뉴욕의 헤어 숍 ‘줄리앙 파렐 살롱(Julien Farel Salon)’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동반하고 헤어커트나 시술을 받는 고객을 겨냥해 럭셔리 펫 그루밍 브랜드 ‘Pride+Groom’을 론칭했다. 각기 다른 반려동물의 모질과 피부 예민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샴푸와 린스, 향수 등을 비치했다. 아보카도 오일, 카렌듈라 추출물 등 천연 성분을 높게 함유한 것은 물론, 욕실에 전시해두고 싶은 세련된 패키지는 자신과 반려동물의 라이프스타일을 동일시하는 고객 취향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한국의 펫 용품 편집숍에서도 치약과 칫솔, 발바닥 보습제, 아로마 오일을 진열한 여러 브랜드를 볼 수 있다. ‘퍼즈야드(Fuzzyard)’ ‘릴라 러브스 잇(Lila Loves It)’ ‘퓨라(Pura)’ ‘플로리스 클린(Flawless Clean)’ 등의 이름을 지닌 브랜드는 3만~5만원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카테고리는 우리가 바르는 화장품만큼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프리미엄화’에 가속도가 붙은 분야는 헬스케어다. 반려동물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반려인간’의 소망이니 말이다. 영양분을 간직한 동결 건조 간식, 닭고기와 성분이 동일한 동물성 대체육의 키토 식단, 요거트, 반려동물의 알레르기와 소화기관을 고려한 제한적 원료 식단 등 니치 펫 푸드 마켓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붐을 일으킨 ‘CBD(칸나비디올)’ 성분을 함유한 영양제는 수많은 반려견이 겪는 고질병인 퇴행성 관절염에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5년 만에 판매가 7,400% 이상 증가했다. 한편 반려묘를 키우는 MZ세대 ‘집사’들에게 이슈인 것 중 하나는 ‘프리티 리터(Pretty Litter)’다. 배변 모래인 이 제품은 고양이의 소변에 따라 노란색, 파란색, 녹색 등으로 색깔이 변하는데, 이 컬러를 통해 만성 신부전, 대사 장애, 요로 감염 등 반려묘의 질환과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오프라인에선 구매할 수 없으며, 월별로 집으로 배송되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 <보그>를 보는 당신 곁에 반려동물이 잠들어 있나?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을까? (VK)

    에디터
    송가혜
    ILLUSTRATION
    BABABOOM STUDIO(@bababoom_studio)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