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대가 ‘뿅뿅 지구오락실’을 사랑하는 이유
TV 예능 프로그램은 늙었다. 유재석, 강호동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온 국민이 이름을 알 만한 패널이라야 한 줌이니 같은 얼굴 돌려 막기가 횡행한다. 요즘 10~30대는 TV 예능 프로그램도 유튜브 클립으로 즐긴다. 시청자가 늙어가니 방송도 같이 늙는다는 핑계가 나온다. 젊은 세대를 어떻게 TV 앞에 앉힐 것인가, 하다못해 그들이 소비하는 디지털 미디어에 한 발 들이밀어볼까 고민하는 건 방송계의 숙제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연예인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것을 ‘급이 떨어지는’ 활동으로 여겼지만 요즘은 TV 예능 프로그램이 유튜브 스타들을 적극 영입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여 년간 스타 PD로 군림한 나영석과 그의 ‘사단’이 내놓은 <뿅뿅 지구오락실>(tvN)은 절묘하다.
<뿅뿅 지구오락실>은 <1박 2일>부터 이어진 나영석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을 고스란히 살렸다. 여행, 게임, ‘제작진 대 출연자’의 대결 구도가 등장한다. 그런데 기존 남성 중심(<1박 2일> <신서유기>) 혹은 세대 간 조화(<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스테이> <뜻밖의 여정>)를 강조하던 나영석 예능 프로그램의 틀에서 벗어나 이번엔 10~30대 여성 출연자로만 판을 짰다.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은 재능 있는 셀럽들이다. 하지만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전 연령대가 알 만한 스타 한 명쯤 간판으로 세워야 한다’는 방송가의 룰에서는 벗어난 캐스팅이다. 이런 캐스팅이 가능하다는 게 나영석 브랜드가 가진 힘이다. 그 힘을 모처럼 신선한 시도에 활용한 제작진은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캐릭터를 론칭했다.
<뿅뿅 지구오락실>은 출연진을 집요하게 ‘MZ세대’라고 호명하며 제작진과의 차이를 강조한다. 전 연령 시청자를 아우르는 감각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나영석 PD는 결국 X세대 방송인이고, <응답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우정 작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특정 세대가 아닌 ‘기성세대’ 전반을 대표하는 위치에 놓고 MZ세대의 행태를 관찰하는 형식을 취한다.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추거나 지칠 줄 모르고 웃고 떠드는 MZ세대 출연진과 그들의 ‘텐션’을 못 따라가는 제작진이라는 대비는 프로그램 내내 반복된다. 나영석을 “영석이 형”이라 부르고 “피디님 몇 년 차예요?”라고 당돌하게 묻는 이영지, 제작진이 준비한 신조어 퀴즈를 보고 오히려 철자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안유진의 모습은 <1박 2일>의 은지원이나 <신서유기>의 안재현 같은 ‘엉뚱캐’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선 MZ세대로 통칭된다. 기존 시청자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젊은 피를 수혈하는 정석 같은 방식이다.
‘나영석 예능 프로그램’에 거리감을 느끼던 젊은 세대에게도 <뿅뿅 지구오락실>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었지만 글로벌한 매너가 부족하다거나 외국에 대한 지나친 동경과 낭만이 촌스럽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런 그들이 내준 ‘방콕에서 길 찾기’ 미션을 인터넷 번역기를 동원해 깔끔하게 해치우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현실적이고 통쾌하다. 남성 중심 예능 프로그램, 유교적 장유유서의 틀도 깼다.
여기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노력도 있다. <문명특급> <놀라운 토요일> 등이 K-팝이라는 하위문화를 쇼의 핵심으로 내세워 성공을 거두었다면 <뿅뿅 지구오락실>은 K-팝 컬처를 MZ세대의 특징으로 규정짓고 ‘요즘 애들은 이렇게 놉니다’라고 강조한다. 출연진이 어떤 음악에든 즉석에서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고 군무까지 펼치는 모습은 K-팝에 익숙지 않은 세대에게도 감각적 즐거움을 준다. 유명한 출연자 없이도 순간 시청률을 부양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SNS 클립이나 바이럴용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이런 노력이 TV 시청자와 디지털 미디어 소비자를 한자리에 모으거나 서로의 미디어를 교차 체험하는 경험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각각의 미디어에서 얻은 반응은 일단 좋아 보인다. 방송 시청률은 2.2%로 시작해 꾸준히 상승하며 6회 차에 3.1%를 기록했다. 유튜브에서는 K-팝 댄스가 담긴 클립 위주로 조회 수 160만 회를 돌파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타 PD 중에 가장 먼저 웹 예능 프로그램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나영석 PD에게는 세태를 읽는 감각이 있다. 그리하여 MZ세대가 활약하는 <뿅뿅 지구오락실>을 보며 새삼 X세대의 끈질긴 생존력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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