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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황소윤

2023.02.20

by 김나랑

    무한한 황소윤

    단정 짓는 순간 확장되는 ‘소윤무한육면각체’. 소윤의 정규 2집 <Episode1 : Love>가 증거다.

    SMOKE SPRITE 소윤의 정규 2집 타이틀곡 ‘Smoke Sprite’는 꿈과 환상, 현실 사이의 간극을 다룬다. 소윤은 이를 노래할 때 욕망과 환상을 넘나드는 강렬한 여성으로 분한다. 스팽글 톱은 16알링턴(16Arlington), 바지는 아미(AMI).

    새소년이 기획하는 ‘Hello, World!’ 시리즈 공연을 지난 주말 봤습니다. 팬데믹이라 3년 만에 열렸어요. ‘Hello, World’는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 튜토리얼에 따라 가장 먼저 띄우는 글자죠. 이것에 기인한 이름인가요?

    코딩할 때 세상에 처음 하는 인사라니 멋지잖아요. 미지의 세계야, 안녕! ‘Hello, World!’ 프로젝트는 개척하고 모험하는 새소년이 세상과 연대해나간다는 의미가 있기에 연결된다고 여겼어요.

    새소년 첫 번째 앨범 <여름깃>(2017)을 낼 때만 해도 “내게 관심이 집중돼” 있었고, 2집 <비적응>(2020) 때부터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죠.

    <여름깃>은 거의 유년기, 청년기에 쓴 곡들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비적응> 앨범부터 사회를 경험하면서 만든 곡들이 담겼어요.

    오는 3월 드디어 소윤(So!YoON!)의 정규 2집이 나오고, 올해 안에 새소년 앨범도 나옵니다. “다 쏟아부었다”도 부족하다고요.

    지난해만 해도 소진되고 불안한 상태였어요. 쉬며 놀며 에너지를 생성했죠. 에너지가 있고 할 말이 있을 때 앨범이 나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쉬며 놀며라기엔 솔로 앨범만 11트랙이고, 새소년 앨범까지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좀 더 편해지려 했어요. 어느 산업이 안 그렇겠습니까마는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음악계에서 덜 불안해하고 많이 경험하려 했어요. 지난해에 해외 투어를 다니면서 느낀 것, 포착한 것을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캐주얼하게 작업한 것이 하나씩 쌓였어요. 개별적인 땅에 각각 심은 씨앗이 새싹이 나고 밭이 됐죠. 수확한 농작물이 앨범 형태로 집약되었고요. 단순히 시간의 흐름대로 작업을 나열하기보다는 집을 짓듯이 주춧돌을 두고 기둥을 올리고 벽을 쌓듯이 여러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했어요. 저는 ‘소윤 프로젝트’를 소설에 비유해요. 소설도 결국 작가의 경험, 그가 느낀 감각의 집약이잖아요. 그것들이 새로운 이야기로 구축되는데, 제 작업이 그렇죠.

    재킷은 구찌(Gucci), 가죽 초커는 웰던(We11done), 선글라스는 메종 마르지엘라×젠틀몬스터(Maison Margiela×Gentle Monster).

    반면 새소년의 앨범은 수필과 같다고 했죠. 자전적인 노래를 많이 해서인가요?

    소윤의 앨범이 제가 세계를 만드는 소설이라면, 새소년의 앨범은 제가 세계라 그렇게 말했어요. 사실 에세이도 납작한 비유 같아요. 시라고 해야 할까요. 근데 시라고 하면 듣는 이들이 거창한 것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이것도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어요.

    소윤의 정규 2집 <Episode1 : Love>는 ‘사랑의 방식, 욕망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세계를 만들었나요?

    새소년 앨범에서 자전적이면서도 세상을 관조적으로 조명했다면, 이번 소윤의 앨범은 꺼둔 감각을 켰어요. 내 스펙트럼의 여러 욕망을 감각하기 시작했죠.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도 안 해본 걸 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관성적이잖아요.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저는 좀 지루해졌어요. 몇 년간 이 일을 하면서 내 방식을 깨닫고 수행해왔지만, 10년 전에 도전하고 실험하고 깨부순 소윤이는 어디 갔지? 불안하고 낯설더라도 가보자.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감춰둔 욕망을 발산하고, 그 자아들을 표현해보자.

    앨범에 여섯 명의 화자가 등장해 각 트랙을 노래합니다. 앨범 비주얼도 소윤이 여섯 명의 다른 여성으로 분장해 등장하고요. 타이틀곡인 ‘Smoke Sprite’는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다룬 곡입니다. 곡의 티저 비주얼도 금발의 글램 의상을 입은 강렬한 화자가 등장하죠.

    음악을 만들 때 이미지와 감각이 같이 떠올라요. 제가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도 같이 만드는 이유죠. 예를 들어 ‘Bad’란 곡은 절제되지만 폭발적인 모순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고, 뮤직비디오는 꼭 흑백이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나요. 그렇다면 ‘Bad’의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했고 내가 그 사람이 됐죠. ‘Smoke Sprite’는 만화에서 폭탄처럼 펑 하고 터지면 사람들이 사라지는 효과를 말해요. 저는 상상을 많이 하기에 꿈과 환상, 현실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 오는 기시감을 자주 느껴요. 그걸 표현하려 했고, 그런 화자의 이미지도 연이어 떠올랐죠. 외람된 얘기일 수 있지만, 유치원 때부터 좋아해서 자주 보는 영화가 있어요. 여섯 편의 그림자극으로 이뤄진 <프린스 앤 프린세스>라는 애니메이션이에요. 남녀 주인공이 각각의 편에 등장할 캐릭터를 직접 만들고 연기해요. 자기가 어떤 의상을 입을지, 어떤 성격일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짠 뒤 극이 시작되죠.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어요. 내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속 존재가 돼 연기하고, 그 이야기는 나일 수도 있다.

    BAD ‘Bad’란 곡의 화자는 사랑하더라도 소유는 없다고 선언한다. 절제되면서도 폭발적인 여성으로 설정했다. 재킷, 셔츠 치마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여섯 명의 화자 대부분이 이제껏 소윤에게서 못 본 모습이군요.

    안 해봤지만 잘할 수 있는 것을 했어요.

    안 해봤는데 잘할 거란 확신은 어떻게 얻나요?

    감각이죠. 다큐를 보면 동물이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상대를 잡아먹을 거란 확신을 드러내잖아요.

    이번 앨범을 내고 세상에 기대하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스펙트럼을 굉장히 중시해요. 음악 스펙트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스펙트럼 자체를 관찰해요. 스펙트럼이란 시간과 경험에 따라 넓어지거나 좁아지는데, 제 것은 발전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내가 할 일이에요.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의 네모난 단면을 보잖아요. 전체적인 사람이 아니라요. 제가 정육면체라면 돌아가면서 다른 면을 보여줄 거예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이번 앨범에서 기대하는 바는 대중이 생각하는 소윤의 스펙트럼이 한 차원 더 넓어지는 거예요.

    재킷과 신발은 구찌(Gucci), 가죽 초커는 웰던(We11done).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어떤 노력을 하나요?

    계속 관찰하고 경험하고 표현하려 해요. 흘러가는 대로만 살면 하던 것만 하게 되죠. 아티스트의 덕목은 새로운 것을 계속 보여주는 거예요. 요즘 시대에 그게 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저는 제가 경험하고 체득한 것을 업데이트해 새롭게 보여주려 해요. 때론 그것에 사람들이 당황해서 즐겁고, 때론 설령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내가 할 일이에요.

    지금 소윤의 스펙트럼에서 확실한 측면 하나는 뭔가요?

    두려움이 굉장히 많아요. 앨범 작업할 때 사시나무처럼 떨고 힘들어하고 예민하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나가다 어느 순간 확신을 가져요. 그러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으니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부끄럽지 않아. 혼자 시작해서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앨범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해요.

    데님 재킷과 팬츠는 오토링거(Ottolinger at Adekuver), 신발은 베르사체(Versace), 반지는 웰던(We11done).

    이번 앨범도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몰입하고 부딪쳤을 때 나오는 시너지에서 희열을 느껴요. 오늘 화보 작업만 해도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죠. 그를 계속 실험하는 것이 소윤 프로젝트예요.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함께 작업하고 싶나요?

    예민하고 예리한 사람. 이번 앨범은 지난 미국 투어에서 만난 친구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그들에게 제가 얼마나 낯설었겠어요? 한국에서 덜렁 와서는 “나 이런 데모 있는데 같이 만들자!” 했는데 다들 “오케이!”. 스튜디오에서 음악으로 소통하고 연대했어요. 이처럼 편견 없이 열린 사람과도 함께하고 싶죠. 피처링 아티스트도 자기 세계가 있는지 보는 편이에요. 참여한 아티스트와는 모두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죠.

    CANADA 소윤은 미국 투어를 마친 후 캐나다에서 ‘CANADA’를 녹음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노래하는 화자도 인간 황소윤과 가장 가깝다. 그렇기에 평소 의상 그대로 입고 촬영했다. 점퍼는 소윤이 당시 토론토에서 구입한 것이다.

    근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즉흥적이고 부정기적이고 간헐적인 삶을 살았는데 루틴이 생겼어요. 잘해내려면 삶이 건강해야 한다, 나를 다스려야 한다 싶었거든요. 야행성이던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카페로 출근해 작업해요.

    삶의 원동력이 호기심이죠. 요즘 어디에 호기심이 생기나요?

    연필이요. 생각해보면 연필 쥘 일이 별로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샤프를 쓰고, 중학교 때부턴 스마트폰이 생겼고요. 어느 날 연필의 흑연 냄새가 좋더라고요.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고 있어요. 타이핑할 때, 볼펜으로 쓸 때, 연필을 사용할 때 다른 글이 나와요. 또 하나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춤추고 노래하게 됐어요. 절대 안 그랬거든요. 무대를 위해 일상을 절제했어요. 이젠 잘 노는 사람이 뭐든 잘한다는 말을 믿으려고요. 잘 쉬고 잘 놀고 잘 일하기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해요. 그것들의 균형을 이뤄야죠.

    너무 일만 하지도, 너무 널브러지지도 않는 균형?

    모든 것에 균형이 중요해요. 예술 작품에서도, 오늘 헤어·메이크업에도, 뮤직비디오에도 균형이 맞아야 해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균형 감각을 키워야만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죠. (VK)

    스팽글 톱은 16알링턴(16Arlington).

    포토그래퍼
    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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