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새 비전

2023.05.28

by 김나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새 비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럽관에 서 있는 프리다 에스코베도. 셔츠와 바지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목걸이는 티파니(Tiffany&Co.), 반지는 까르띠에(Cartier).

    프리다 에스코베도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새 비전을 제시한다.

    백과사전처럼 전 세계 200만 개 이상의 전시품을 보유한 서반구의 가장 위대한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150년간 이어진 전통을 깨고 현대미술과 컨템퍼러리 미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1940년대 말까지만 해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쪽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소수의 모더니즘 작품이 미술관의 컬렉션에 입성하고,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초상처럼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안티모더니즘적 입장은 완강하게 이어졌다. 1967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미술관 2층의 볼품없는 작은 방에 첫 컨템퍼러리 미술 부서가 설립되었다. 열정적인 큐레이터 헨리 겔드자레르(Henry Geldzahler)가 책임 큐레이터로 지휘를 맡았다.

    그로부터 20년 후, 모던·컨템퍼러리 미술 부서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공동 설립자이자 자선사업가 라일라 애치슨 월리스(Lila Acheson Wallace)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4만 제곱피트(약 1,124평)에 달하는 전시 공간을 갖춘 전용 전시 동을 확보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관 기념 전시에 몇 작품을 제외하면 안타까울 정도로 부실한 컬렉션을 드러낼 뿐이었다.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다. 발 빠르게 훌륭한 작품을 사들이고 수많은 기증품을 받은 결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던·컨템퍼러리 컬렉션의 수준은 미술관의 다른 16개 관만큼 수준이 격상됐다. 그 후한 기증 작품에는 부실하던 큐비즘 작품의 갭을 메워준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의 2013년 기증품, 2014년 소울스 그로운 딥 파운데이션(Souls Grown Deep Foundation)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술 작품 57점, 지난해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딸 무사 메이어(Musa Mayer)가 기증한 아버지의 작품 220점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월리스관의 단점이던 부족한 전시 공간, 미술관의 다른 관과 떨어진 고립된 위치, 좋지 않은 동선 등이 명확해짐에 따라, 2015년에 영국의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를 고용해 기존 전시 동을 부수고 새롭게 재건축했다. 그러나 늘어만 가는 재건축 비용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사진의 변화, 기타 다른 문제로 인해 재건축 프로젝트는 유보되고 말았다. 이후 컨템퍼러리 미술에 강한 믿음을 가진 미술관의 새 이사 막스 홀라인(Max Hollein)은 치퍼필드를 포함해 건축가 5인을 데려와 새로운 계획을 짰다. 지난해 그 결과가 발표됐을 때, 책임 건축가로 최종 발탁된 프리다 에스코베도(Frida Escobedo)라는 42세의 멕시코 출신 건축가에 다들 놀랐다. 건축가로서 커리어가 180도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미술관 휴관일이던 어느 1월의 비 오는 수요일, 에스코베도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후원자 라운지에서 만났다. 그녀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같은 눈썹에 시원시원한 미소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와이드한 검은색 팬츠와 오버사이즈 재킷을 걸쳤으며, 더 로우의 선명한 빨간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제 회사가 할렘가의 주거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걸 알고, 이메일로 방문을 요청했죠. 그때는 전시 동 전체를 다시 짓는 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어쨌든 미술관에 가서 막스 홀라인과 40분간 회의를 했어요. 몇 주 뒤에는 초청장을 하나 받았고요. ‘경쟁에 참여할 의향이 있나요?’라고 적혀 있었죠. 당연히 참여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프리츠커상 수상자들과 경쟁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건축가 한스 홀라인(Hans Hollein)의 아들 막스 홀라인은 경쟁에 참여한 5개 건축 회사를 깐깐하게 심사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5억 달러, 약 6,660억원의 예산으로 이전 전시관의 두 배 가까이 되는 8만 제곱피트(2,000평 이상)의 갤러리 공간 규모의 전시 동을 건축하는 프로젝트에 무명 건축가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홀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건축물이 지닌 공공장소의 기능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멕시코의 전통에서 비롯된 부분이죠. 프리다의 장점은 현시대의 예술 환경에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그녀는 빛과 소재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기반으로 우아하고 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요. 무엇보다 미술관은 공용 공간임을 잘 알고 있었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전시 동을 새롭게 건축할 자금을 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도 있었다. 그러나 2021년 미술관의 오랜 후원자 오스카 탕(Oscar Tang)과 그의 아내 아그네스 수 탕(Agnes Hsu-Tang)이 재건축 기금을 위해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1억2,500만 달러(약 1,660억)를 내놓기로 약속함으로써 해결됐다. 홀라인은 에스코베도의 <뉴욕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던·컨템퍼러리 컬렉션이 앞으로 그 어떤 분야보다 더 크게 계속 성장해나갈 것”을 당당히 알렸다.

    에스코베도는 지난 2018년에 런던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의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을 디자인할 건축가로 발탁되면서, 나를 비롯해 예술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이 프로젝트는 2000년부터 매해 서펜타인의 예술감독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서펜타인 팀원들이 건축가를 한 명씩 발탁해 디자인 작업을 위임하는 프로젝트다. 런던에서 에스코베도가 선정되게 한 그 디자인은 멕시코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뜰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뜰의 벽은 멕시코 주택의 흙벽돌 대신, 영국에서 흔히 쓰이는 시멘트 지붕 타일을 엇갈리게 쌓아서 만든 것으로, 그 틈으로 빛과 공기가 드나들었다.

    그것은 에스코베도 건축 스타일의 개요서 같은 것이었다. 즉 흔히 볼 수 있는 현지 자재를 사용해 그녀가 좋아하는 단어인 다공성을 구축해, 벽 너머에 있는 대상과 상황을 어느 정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건너편의 모든 것이 바로 보이는 투명함과는 결이 달라요. 다공성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거든요. 다공성에는 또 다른 레이어에 대한 가능성, 저 너머 공간으로의 초대,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약간의 거리감… 그렇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죠.”

    프리다 에스코베도는 1979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멕시코 국립 여성 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Women)에서 근무한 사회학자로,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프리다의 부모님은 그녀가 다섯 살 때 이혼했지만, 가까운 사이를 계속 유지하며 프리다 곁에서 함께했다. “외동으로 두 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찍 철이 든 것 같아요.” 그녀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녀를 뉴욕으로 데려갔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메인 홀과 그곳의 모든 꽃이 아름다웠어요.”

    프리다는 멕시코시티의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Universidad Iberoamericana) 입학을 앞두고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건축으로 진로를 정하지 않았다. “거의 막판에 건축을 선택했지만 첫 번째 전공 수업부터 바로 빠져들었어요.” 2010년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 들어갔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아트, 디자인, 공유재산(Art, Design, and the Public Domain)’이라는 프로그램이 막 개설된 상태였다. “대중적 영역의 예술에 좀 더 연관이 깊은 무언가로 되돌아가고 싶었어요. 꼭 전통 건축만이 아니라, 덜 실용적인 걸로요. 당시 멕시코시티에 사는 젊은 여성이 독립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거든요.” 동시에 그녀는 멕시코시티의 무세오 엑스페리멘탈 엘 에코(Museo Experimental el Eco) 박물관의 파빌리온 공모전에서 당선되었고, 위대한 멕시코 벽화 미술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의 생가이자 스튜디오를 개조해 세운 쿠에르나바카의 라 타예라(La Tallera) 박물관 확장 프로젝트 공모전에도 출품했다. 다행히 최종 선정됐고, 이후 2년 동안 보스턴과 쿠에르나바카를 오가며 작업했다. 마침내 라 타예라 박물관이 개관한 2012년,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축 사무소를 열었다. “처음에는 저랑 직원 두 명으로 시작했어요. 이제 멕시코시티에 스물다섯 명, 뉴욕에 다섯 명으로 직원이 늘었죠.” 요즘 에스코베도는 일 때문에 멕시코시티와 뉴욕을 오가며 지낸다. 뉴욕에서는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아파트에 머문다. 물론 가장 집중하는 작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다. 새 전시 동이 마무리되기까지는 6~7년 정도 걸릴 것이다.

    우린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고 모던·컨템퍼러리 전시 동으로 향했다. 수요일은 미술관 휴관일이었기에 우리 차지였다. 그곳에 에스코베도의 현장 사무실이 있었다. “여기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곳이 상당히 고립됐다는 거예요. 미술관에서 동떨어진 개별적인 공간 같았죠. 어떻게 하면 다른 동과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미술관에는 어떤 리듬이 있어요. 압축된 공간에서부터 열린 공간으로 이동하는 거죠. 운율이나 리듬 같은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컨템퍼러리 동에서 그 리듬이 끊겼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사람들은 뉴욕에 현대미술만 중점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이 세 곳이나 있는데(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굳이 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답은 당연하게도 그 어떤 기관도 현시대의 미술을 “시대를 아우르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점”이라는 맥락에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홀라인의 설명이다.

    에스코베도의 비전에는 건물 방향을 살짝 바꾸는 계획도 있다. “지금은 건물이 한쪽만 향하고 있어요. 대계단과 대강당 쪽, 즉 피프스 애비뉴 쪽이죠. 그리고 이집트관, 그리스관, 유럽관의 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어요. 공원에서부터 이쪽으로 입장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만, 미술관이 서쪽으로도 열려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그러면 다른 분위기가 될 거예요. 대계단만 향하지 않겠죠. 우리는 지금 이 관점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보고 있어요. 건물에서 공원 쪽을 바라보는 다른 종류의 시각적 부드러움과 자애로움이 있어야 해요.” VL

      사진
      Clément Pascal
      Dodie Kazan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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