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티파니 그리고 일본 ‘보그’

2023.08.04

by 김다혜

    티파니 그리고 일본 ‘보그’

    FUMIE=TANAKA “어린 시절 기모노의 오비 벨트를 만드는 어머니의 작업에 감탄했어요. 그때부터 아름다운 직물을 좋아했습니다.” 다나카 후미에(Fumie Tanaka)는 패션 스쿨 졸업 후 대형 의류 회사를 거치며 커리어를 다진 뒤 자기 브랜드를 론칭했다. 2016년 ‘더 댈러스(The Dallas)’로 시작해 2020년부터 ‘후미에 타나카’로 변경했다. 본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좀 더 자연스럽고 진정한 자기표현을 옷 안에 담기 위해서다. 종종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그녀는 ‘365일’이라는 주제로 2023 F/W 컬렉션을 구성했다. 말 그대로 45가지 룩을 통해 자신의 한 해를 표현한 것이다. “모두에게 꽃다발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쇼 후반을 장식한 플라워 드레스는 팬데믹을 끝낸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 “긍정과 기쁨, 꿈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상상합니다.” 이탈리아 브랜드 알칸타라(Alcantara)와 협업해 지속 가능한 소재로 만든 상의와 스커트는 후미에 타나카.
    KEISUKEYOSHIDA 도쿄에서 손꼽히는 패션 인재인 요시다 게이스케(Keisuke Yoshida)는 2015년 자기 이름을 내건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컬렉션은 매 시즌 디자이너의 기억, 경험, 감정이 사회와 접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데 특히 사춘기가 지배적이다. 그렇다 보니 아방가르드, 사토리얼, 스트리트 웨어 요소가 뒤섞인 디자인은 다음 세대를 위한 교복처럼 보인다. “제가 만난 열일곱 소년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내 옷 덕분에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2023 F/W 시즌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에서 출발했다. 우울한 소년의 이미지와 그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애정은 엄격한 실루엣의 코트와 수트, 셔츠로 표현되었다. 청록색 가죽 재킷과 검정 팬츠, 페인팅 디테일의 보디수트와 구부러진 숟가락 형태의 메탈 귀고리, 재킷에 단 브로치는 케이스케요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는 브랜든 블랙우드(Brandon Blackwood).
    SETCHU 2023 LVMH 프라이즈 대상 수상자 구와타 사토시(Satoshi Kuwata)의 셋추. 일본과 서양의 개념을 혼합한다는 의미로 절충(折衷)의 일본식 발음을 사용한 이름이다. 가레스 퓨, 카니예 웨스트, 지방시, 이든 등 전 세계 패션 하우스에서 쌓은 경험과 새빌 로의 헌츠맨 앤 선즈(H. Huntsman & Sons)에서 익힌 날렵한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미니멀한 디자인을 주로 선보인다. “컨셉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023 F/W 시즌은 컴퍼스를 사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종이접기 종이에 완벽한 원을 그리고 그것을 잘라냈죠. 이것이 이번 컬렉션의 컨셉입니다.” 컨셉에 따라 원단을 정하고, 드레이핑을 더하고, 단추나 스트랩 같은 간단한 요소를 활용해 각 부분을 연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 “무분별하게 생산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실크 드레스는 셋추, 귀고리는 플레이크(Flake), 동그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는 보니(Bonee), 심플한 메탈 초커는 소와리(Soierie), 크리스털로 장식한 가방과 플랫폼 뮬은 브랜든 블랙우드(Brandon Blackwood).
    YOHEI OHNO “세계가 저를 일본 디자이너로 인식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 저를 봐주길 원하죠.” 오노 요헤이(Yohei Ohno)는 심지가 곧고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패션의 신비로움에 매료돼 철학 공부를 중단했을 때도 그랬다. 문화복장학원에서 기반을 다지고, 노팅엄 트렌트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2014년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모든 것이 아이디어가 되지만, 너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컬렉션을 만들진 않는다. “인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창조를 위해서는 뭔가 모순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빈티지 옷을 주제로 한 2023 F/W 컬렉션은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웠다. 특히 컬렉션 곳곳에 등장하는 독특한 곡선은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카시나 의자의 팔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다가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공동 전시를 통해 2024 봄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두툼한 퍼 코트와 나일론 레깅스, 벨트는 요헤이 오노, 간결한 곡선 형태의 메탈 귀고리는 보니(Bonee), 플랫폼 슈즈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말끔한 5:5 가르마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언제 어디서나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패션 러버. 티파니 고도이(Tiffany Godoy)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LA에서 자랐고, 프랑스와 일본을 수시로 오가는 덕에 다양한 문화를 결합하는 데 능숙한 이 아르헨티나계 미국인은 지난해 1월 일본 <보그> 콘텐츠 책임자로 합류했다. 저널리스트, 에디터, 컨설턴트, 영상 및 팟캐스트 크리에이터 등 무수한 단어로 채워진 직업란만큼 그녀의 하루도 빽빽하다. 시작은 운동. 하지만 동시에 그날 포스팅할 내용을 체크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뉴스나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일상을 확인한다.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도착한 사무실에서는 각종 회의, 다음 달 기획, 행사 등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때로는 브랜드 담당자와 만나거나, 해외에 있는 파트너들과 영상 미팅을 한다. 물론 중간중간 셀피를 찍어 소셜 계정에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분주한 일과에 <보그 코리아>와의 만남이 추가됐다. 화보 촬영과 인터뷰 제안에 ‘Wow!’라 외치며 흔쾌히 수락했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거의 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티파니의 일상을 보니 기한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All of it!’ 자정에 가까운 시간,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첫 출근 날 어떤 기분이었나?
    사실 코로나 때문에 처음 몇 달은 파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엔 도쿄에 왔지만 말이다. 첫 등교를 앞둔 학생처럼 약간의 긴장감과 흥분 상태로 팀을 만났다. 나는 바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본 <보그>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1990년대 후반에 도쿄에 왔다. Style.com에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10년 넘게 일본 <보그>에 기고했다. 웰니스 제품 기획도 하고, 이비자에 가서 제이드 재거(Jade Jagger)의 에코 하우스를 취재하기도 했다. 무려 비키니 차림의 케이트 모스를 그녀의 부엌에서 만나기도 했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왜 일본이었나?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일본에서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립 출판사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며 아트 서적과 레코드를 만들기도 하고, 개인 사무실을 차려 리얼리티 쇼를 론칭하기도 했다. 새로운 도구와 미디어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 덕분에 숏폼 형식의 매거진 콘텐츠를 일찍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일본은 개성이 뚜렷한 서브컬처가 많다. 그중 어떤 것이 흥미로운가?
    잡지, 부티크, 미용실을 둘러싼 문화에 관심이 많다. 쿨하고 멋진 인플루언서 문화 말이다. 살아 있는 소셜 미디어를 경험하는 것 같달까.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컬트 문화다.

    일본 패션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신체와 비율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디자인과 디테일. 여기에 훌륭한 퀄리티와 예민한 제작 방식도 동반한다.

    이번 촬영에서 일본 브랜드 의상을 입었다.
    새로운 측면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로 엄선했다. 그중 일부는 제품을 생산하지 않지만,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선택하기도 했다.

    요즘 눈여겨보는 일본 브랜드는?
    마수(Masu)와 프롤레타 리 아트(Proleta Re Art). 모두 남성복이다. 마수는 강렬한 스타일과 디테일이 강점이라면, 프롤레타 리 아트는 놀라운 자수가 특징이다.

    옷 입는 건 언제나 즐겁다.
    나는 언제든 옷을 갈아입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낮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형광 핑크 꼼데가르송 티셔츠에 검정 미우미우 브라 톱을 겹쳐 입고, 아크네 스튜디오 플레어 팬츠에 스파이크 장식이 박힌 쥬세페 자노티 클로그를 신고 있다. 메이크업도 중요하다. 눈이나 입술 중 한 군데를 강조하는 포인트 메이크업은 필수다.

    자신의 스타일을 세 단어로 정의한다면?
    Sharp, Sexy, Eclectic!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패션 매거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 <보그>가 지향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방향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면서 미디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출처가 변하고있다. 할리우드와 스트리밍 콘텐츠도 전환기를 맞았다. 일본 <보그>는 어떻게 하면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전하는 매체이고,영감을 주는 전 세계인의 사적인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는 소식통이며, 각 에디터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권위자다. 나는 우리 이야기를 좀 더 개인적인 목소리로 발전시키길 바란다. 모션, 영상, 3D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개발하고, 나아가고자 한다.

    소셜 미디어의 힘이 커졌다. 당신은 언제나 셀카봉을 들고 다니며 스스로를 촬영한다.
    비공식적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높은 스펙의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작업이 흥미롭다. 즉각적인 숏폼 콘텐츠의 영향력은 꽤 대단하다. 휴대폰 퀄리티가 좋아지면서 아이폰과 셀카봉을 들고 토크쇼를 진행했다. 시청자를 내 상황에 직접 초대하는 거다. 그렇게 형성된 친밀감은 계속 진화한다.

    매우 부지런한 것 같다. 에너지의 원천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무엇이든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 모든 것은 하나의 큰 모험이다.

    일본 <보그>의 가장 큰 비전은 무엇인가?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되는 것! 지금 일본은 동서양을 잇는 중심지다. 우리는 양쪽으로 가장 좋은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차세대 글로벌 인재를 발굴하고, 일본 시장과의 연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문화·경제적 풍토, 일본 사회 속 여성의 위치, 창작 현장의 현주소 등을 고려해 문화적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패션의 역할은?
    내가 누구인지 표현하는 방식, 일종의 신호다. 가치를 구별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 언더커버 아카이브를 입든, 더 로우 가방을 들고 다니든, G스트링을 노출하든 상관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나의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 패션이다.

    패션계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한다면?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공부하고, 역사를 알고, 위대한 감독의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 경험을 결합할 것!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 기대하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본 적도 없는 것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인생 상담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공개 연사, AI 아티스트.

    무엇이든 빨리 변하는 시대다. 영원히 변치 않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스스로를 꾸미는 것. 그리고 목적이 있는 창의성. (VK)

    AKIKOAOKI 클래식, 절제 그리고 해체. 일본의 5대 미술대학 중 하나인 여자미술대학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거친 아오키 아키코(Akiko Aoki)는 20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성복 브랜드를 이렇게 세 단어로 정의한다. 옷을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참신하고도 향수 어린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컬렉션을 통해 어떤 인간상을 보여줄 것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포기와 그 이상의 해방이라는 개념을 담은 2023 F/W 시즌은 얼굴을 가린 베일 룩을 시작으로 엄숙한 소재로 만든 드레스와 재킷, 헌 옷을 활용한 아이템을 통해 다채롭게 확장되었다. “뮤즈는 따로 없지만 매 시즌 절제되고 조용한 여성의 이미지가 이어지고 있어요. 내면에 웅장한 자유로움과 호기심을 품은 여성이죠.” 일본 <보그> 컨트리뷰팅 뷰티 에디터 미타니 도루(Toru Mitani)와 나란히 선 티파니가 입은 티셔츠와 치마는 아키코아오키, 크고 작은 진주를 엮은 이어커프는 크리티컬랩(Critical:lab), 볼드한 메탈 뱅글은 소와리(Soierie), 플랫폼 샌들은 브랜든 블랙우드(Brandon Blackwood).
    RE:QUAL 시간의 단위(Re)와 동등함(Equal)을 뜻하는 단어를 결합한 형태의 리퀄은 2016년 도이 데쓰야(Tetsuya Doi)가 론칭한 브랜드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건설적이고 역동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디자이너 자신. 2023 F/W 컬렉션 역시 자아도취적인 부분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다.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동시에 이동통신사 도코모(Docomo)와 협업해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의 위험을 알리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함께하는 시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리퀄은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베리굿(Verygood)’이라는 지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풍성한 패딩 코트는 리퀄, 부츠는 지미 추(Jimmy Choo).
      포토그래퍼
      우치야마 다쿠야(Takuya Uchiyama)
      스타일리스트
      요시다 시즈카(Shizuka Yoshida)
      헤어 & 메이크업
      시라이시 리에(Rie Shirai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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