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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에 목마른 당신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추천작 16편

2023.08.21

by 이숙명

    영감에 목마른 당신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추천작 16편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4일 막을 올릴 예정이다. 세계 최대 여성 영화제 개최 25주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71개국 1,251편의 영화가 출품됐고 그중 50개국 131편이 상영을 확정했다. 최근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을 반영하듯 규모뿐 아니라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중 놓쳐선 안 될 기대작 16편을 살펴보자.

    <쇼잉 업>

    Showing Up | 개막작 | 켈리 라이카트 |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2022 | 108분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여성 감독 중 한 명인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이다. 그는 <퍼스트 카우>로 사랑, 토지,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감동적으로 펼쳐낸 바 있다. <쇼잉 업>은 포틀랜드의 젊은 여성 예술가(미셸 윌리엄스)가 전시 마감을 앞두고 보내는 정신없는 일상을 담았다. 이 작품은 여성 예술가를 격정과 비련의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주인공은 흩어져 사는 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고장 난 보일러 때문에 집주인(홍 차우)과 갈등하는 와중에 끈기 있게 작품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훨씬 끈질기다’라는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에 부합하는 개막작이다. <쇼잉 업>은 2022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밀리수탄도>

    Milisuthando | 발견 | 밀리수탄도 봉겔라 | 다큐멘터리 |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 2023 | 125분

    경쟁 부문인 ‘발견’ 초청작이다. 어린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감독이 기억을 돌아보며 사랑과 인종, 인간성의 의미를 탐구한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는 친밀감”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도 분노와 웅변 이상을 담아내려 애썼다. 인터뷰와 과거 자료 영상, 홈비디오, 사진 등을 통해 그 시대를 회고하는 한편 시적인 내레이션과 기도 등을 통해 미학적 성취를 이뤄냈다.

    <내 이름은 앤드리아>

    My Name is Andrea | 새로운 물결 | 프라티바 파마 | 다큐멘터리 | 미국 | 2022 | 90분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여성 감독의 신작이나 여성 주제 화제작을 상영하는 ‘새로운 물결’ 부문 초청작이다. 페미니스트 작가 앤드리아 드워킨에 관한 전기 영화다. 작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 폭력적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 거침없는 언어로 가부장제, 포르노그래피, 남성 폭력에 맞서던 페미니스트 시절을 연대기 형식으로 그린다.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자료 영상만 활용하지 않고 애슐리 저드를 비롯 5명의 배우가 주인공을 연기한다. 앤드리아 드워킨은 백인이지만 비백인 배우 어맨들라 스텐버그를 캐스팅해 그의 인종차별 비판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비밀 문자>

    Hidden Letters | 새로운 물결 | 펑두, 자오칭 | 다큐멘터리 | 중국, 독일, 노르웨이, 미국 | 2022 | 86분

    옛 중국 여성들의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비밀 언어 ‘누슈(女書, 여서)’에 매혹되어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두 밀레니얼 세대 여성 이야기다. 후신은 가정 폭력을 겪었고 우시무는 일을 그만두고 아들을 가질 것을 종용받는다. 그들이 처한 현실은 문자를 금지당해 자신들만의 비밀 언어로 소통해야 했던 과거 여성들의 상황과 겹친다.

    <조산사들>

    Midwives | 새로운 물결 | 레아 페네르 | 드라마 | 프랑스 | 2023 | 101분

    5년간 수련을 마치고 조산사가 되어 현장에 투입된 루이즈와 소피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는 찬사와 달리 조산사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이들이 과도한 업무, 인력 부족, 초과 근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레아 페네르 감독은 12년 전 아들을 출산할 때 조산사들의 노동 환경을 보고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를 그려내기 위해 다수의 조산사를 취재했고, 부모들의 동의하에 실제 출산 장면을 촬영해 영화에 활용하기도 했다. 2023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수상작이다.

    <헬로 댕크니스>

    Hello Dankness | 새로운 물결 | 소다 저크 | 코미디, 호러 | 호주 | 2022 | 70분

    방대한 영화, TV, 온라인 동영상 등을 샘플링해 트럼프 이후 미국을 풍자한다. 대담하고 환각적인 방식으로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현실, 이를 통해 날로 우경화되는 세계를 꼬집는다. 샘플링 작업으로 다큐멘터리계에 도발적인 충격을 주고 있는 아티스트 듀오 소다 저크의 작품이다. 소다 저크는 2002년 시드니에서 결성되었고 2012년부터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

    How to Tell a Secret | 퀴어 레인보우 | 애너 로저스, 숀 던 |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 아일랜드 | 2022 | 99분

    전 세계 퀴어 영화 신작을 소개하는 ‘퀴어 레인보우’ 부문 상영작이다. 숀 던 감독은 2017년 아일랜드에 사는 HIV/AIDS 감염인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숀은 애너 로저스 감독과 함께 과거 인터뷰이들을 다시 찾아가 카메라에 담기로 한다. 실제 인물과 그들을 연기했던 배우들을 중첩시켜 의미를 극적으로 강조했다. 5년 전에는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수 없던 이들이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걸까? 그 사이 아일랜드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마도 언젠가는>

    Maybe Someday | 퀴어 레인보우 | 미셸 일런 |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2022 | 91분

    아내와 헤어진 후 방황하던 논바이너리 사진작가 제이는 일 때문에 만난 게이 코미디언과 친구가 된다. 뜻밖의 우정은 제이를 변화시킨다. 극저예산 코미디 3부작 〈부치 제이미〉, 〈헤테로섹슈얼 질〉, 〈S&M 샐리〉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고정관념을 풍자했던 미셸 일런이 보다 진지하게 상실과 극복, 성장을 다룬다. 역시 미셸 일런이 연출, 각본, 연기를 담당했고, 위트와 감동을 모두 담았다고 평가받는다.

    <에그헤드와 트윙키>

    Egghead & Twinkie | 퀴어 레인보우 | 세라 캄베 홀랜드 | 코미디 | 미국 | 2023 | 87분

    열일곱 살 트윙키는 중국인 입양아이자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트윙키는 인스타그램으로 만난 랜선 연애 상대를 직접 보기 위해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 여행에 나선다. 이때 트윙키의 단짝 친구 에그헤드가 동행한다. 사실 에그헤드는 트윙키를 짝사랑하고 있다. 소수자의 자아 수용, 커밍아웃, 우정에 관한 사랑스럽고 재기 발랄한 성장 코미디다.

    <우리만의 자리>

    A Place of Our Own | 퀴어 레인보우 | 엑타라 콜렉티브 | 드라마 | 인도 | 2023 | 91분

    라일라와 로슈니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영화는 끝없이 차별과 혐오에 직면하면서도 그들만의 물리적, 사회적 공간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소수자의 모습을 서정적이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 25주년 특별전 | 샹탈 아커만 | 드라마 | 벨기에, 프랑스 | 1975 | 201분

    2022년 영화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역대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한 <잔느 딜망>을 큰 스크린으로 볼 기회다. 주인공 잔느 딜망은 사춘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집에서 성매매를 한다. 평범한 일상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잔느는 한 손님의 방문을 계기로 폭발한다. 그 전까지 카메라가 관심을 두지 않던 가사 노동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가정이 성적 억압과 착취를 은폐하는 공간임을 폭로해 센세이션을 안겨준 영화.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에서는 샹탈 아커만의 또 다른 걸작 <어느 날 피나가 말하길…>(1983)도 만나볼 수 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 예술하는 여자들, 외침과 속삭임 | 로라 포이트러스 | 다큐멘터리 | 미국 | 2022 | 117분

    주인공 낸 골딘은 1980년대 성 소수자, 약물중독 등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스타덤에 오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골딘은 손목 수술 후 처방받은 옥시코돈에 중독되어 재활원에서 1년을 보낸다. 이후 옥시코돈의 배후에 ‘예술계의 큰손‘ 새클러 가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골딘은 자신의 인생과 온 세상을 뒤흔들 싸움에 뛰어든다.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는 포스트 9·11을 다룬 <시티즌 포>(2014)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도 예리하고 파워풀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다.

    <아폴로니아, 아폴로니아>

    Apolonia, Apolonia | 예술하는 여자들, 외침과 속삭임 | 레아 글로브 | 다큐멘터리 | 덴마크, 폴란드, 프랑스 | 2022 | 116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 장편상을 비롯해 세계 영화제 11관왕을 기록 중인 작품이다. 감독은 2009년 전도유망한 화가 아폴로니아 소콜을 만난다. 아폴로니아는 파리의 언더그라운드 공연 그룹에서 태어나고 아티스트 커뮤니티에서 성장해 유럽 최고의 아트 스쿨을 졸업한 보헤미안이었다. 마치 동화 같은 이력이었고, 그의 성공은 확실해 보였다. 감독은 그후 13년 동안 예술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아폴로니아의 여정을 기록했다. 아폴로니아의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각적이고 영감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쨌든 인생일 뿐>

    It’s Only Life After All | 예술하는 여자들, 외침과 속삭임 | 알렉산드리아 밤바크 | 다큐멘터리 | 미국 | 2023 | 123분

    감독 알렉산드리아 밤바크는 장편 다큐멘터리 <프레임 바이 프레임>(2015)으로 25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온 허 숄더스>(2018)로 선댄스영화제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신작 <어쨌든 인생일 뿐>은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 록 듀오 ‘인디고 걸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40년 동안의 홈 비디오, 원본 아카이브 필름, 현재를 담았다.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두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두 퀴어 친구가 경험한 장애물, 액티비즘, 인생의 교훈을 그린다.

    <제인 캠피온, 시네마 우먼>

    Jane Campion, the Cinema Woman | 예술하는 여자들, 외침과 속삭임 | 쥘리 베르투첼리 | 다큐멘터리 | 프랑스 | 2022 | 99

    <피아노>(1993)로 여성 감독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파워 오브 도그>(2021)로 베니스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온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여성 영화제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미망인>

    The Widow | 박남옥 탄생 100주년 | 박남옥 | 드라마 | 한국 | 1955 | 75분

    한국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다. 보관 상태가 나빠 일부가 유실되고 사운드에도 문제가 있지만 한국 여성 영화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므로 큰 스크린으로 볼 기회가 있을 때 봐두는 게 좋다. 주인공 신자는 한국전쟁에서 남편이 죽은 후 딸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남편의 친구에게 의탁한다. 하지만 남편의 친구는 신자에게 애정을 품고, 그의 아내는 이를 질투해 히스테리에 빠진다. 이 영화 제작 과정을 다룬 <명색이 아프레걸>도 이번에 상영되는데, 함께 보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3. 08. 24(목)~2023. 08. 30(수), 7일간
    www.siwff.or.kr
    상영관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온피프엔(ONFIFN), SK B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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