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강서경과 나의 진정한 풍경

2023.09.19

강서경과 나의 진정한 풍경

강서경 작가의 전시 <버들 북 꾀꼬리>는 한 폭의 풍경화 같기도, 한 편의 교향곡 같기도 하다.
프리즈 위크로 뜨겁게 달궈진 서울 아트 신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고요하고도 소란스러운 풍경.

풍경 그 자체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통 특정 작품 하나에 먼저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지금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Suki Seokyeong Kang: Willow Drum Oriole> 전시는 전체 공간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울긋불긋 물든 혹은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산’ 시리즈와 구름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설치 조각 ‘귀’, 아담한 관람객 같기도 한 ‘좁은 초원’, 그리고 전시장의 작업을 스크린으로 들여와 움직임과 소리를 더한 영상 작품 ‘버들 북 꾀꼬리’… 서로 조용히 공명하는 작품 사이를 걷다 보면 한 폭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새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버들 북 꾀꼬리>는 강서경 작가의 “수천, 수만 마리의 꾀꼬리가 드넓은 산이 펼쳐진 풍경 속을 함께 또 각자 날아다니는 상상”에서 출발한 전시다. 작가는 “풍경의 개념을 모든 방향에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회화와 설치를 조합하는 작업을 통해 회화의 물리적 공간을 확장해온 그가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탐구해온 회화의 공간성을 과감하게 펼쳐놓은 셈이다. 그 결과 3차원의 입체적 풍경화가 완성되었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만화경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다양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 작품은 청아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리드미컬하게 배치된 작품은 웅장한 시각적 합주를 이끌어낸다. 또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작품은 만져보거나 두드려보고 싶을 정도로 질감이 살아 있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 촉각의 경험을 아우르는 것은 강서경 작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전시는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했다. 예술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마티유 블라지는 작품에 감탄하며 “보테가 베네타가 이런 훌륭한 현대미술 작가를 후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이다”라는 소감을 전해왔다. 개별 작품을 섬세하게 조율한 전시는 노골적인 로고 플레이보다 디테일과 퀄리티 등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보테가 베네타와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방탄소년단의 RM은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 무엇이냐는 <보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택타일(Tactile) 한 것. 뭔가 만져지기도 하고, 시선이 여러 군데로 분산되도록 굉장히 재미있게 전시가 구성되어 있는데, 꼭 전통과 현대를 합친 놀이동산에 온 느낌을 받았어요.” 그의 말처럼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은 시점이 모호한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한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이 또한 작가의 선명한 의도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산’ 시리즈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는데, 강서경 작가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리움에 자주 왔었습니다. 여기서 ‘인왕제색도’나 ‘쌍도정’ 같은 산수화를 보면서 당대 사람들이 바라보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곳, M2 전시실로 넘어오면 현대미술 컬렉션이 있었죠. 같은 미술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매우 다르기도 하죠.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교차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시간이 작품 위에 켜켜이 쌓이고, 전통과 현대가 교차된 풍경이 리움미술관 M2 전시실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다. RM은 <보그> 인터뷰에서 유홍준 교수의 <안목>에서 읽은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가 이야기한 “모든 명화는 현재형으로 돌아온다”는 문장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온 서울이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들썩이는 프리즈 위크의 9월 5일, 리움미술관에서도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는 강서경 작가의 전시 오프닝 나이트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다른 파티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리움미술관 야외에서는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 조각을 배경으로 DJ의 플레이리스트와 샴페인을 곁들인 파티가 뜨거웠다. 그러나 전시장 내부에는 특별한 고요함이 맴돌고 있었다. 오프닝 나이트에 펼쳐진 퍼포먼스 작품 ‘액티베이션(Activation)’은 뜨겁게 달궈진 아트 신과 북적대는 사람들, 저마다 서사를 품고 있는 개별 작품 사이에서 곧 정지할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는 복잡한 세계 속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개인의 시공간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원형에 가까운 형태 때문에 아름답지만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강서경 작가의 작품은 알고 보면 구체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살면서 계속 부딪히게 되는 불균질한 상태’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오랫동안 사회 속 개인의 자리, 나와 함께 사는 다른 존재,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 맺는 ‘진정한 풍경’을 고민해왔다. 크고 작은 페인팅과 모듈화된 유닛을 악기로 연대의 합주를 이루어낸 전시는 진정한 풍경에 대한 강서경식 해답이다. (VK)

    사진
    COURTESY OF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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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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