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트로터의 데뷔 쇼로 엿본 까르벵의 미래
까르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앙리(Guillaume Henry)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유서 깊은 프랑스 하우스는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와 함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까르벵에 기대할 건 깔끔한 미학과 ‘착한’ 가격이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백지처럼요.”
까르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가 까르벵 데뷔 쇼를 앞두고 한 말이다. 쇼 직전, 브랜드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모두 지워졌다. 웹사이트에는 흰 벽을 배경으로 쓰인 “작업 중입니다. 2024년에 뵙기를 고대합니다”라는 문구뿐이다. 쇼 초대장에는 텅 빈 종이 한 장을 그려낸, 영국 아티스트 앨리슨 와트(Alison Watt)의 작품 ‘Warrender’가 새겨져 있었다.
컬렉션은 성공적이었다. 트로터는 시스루 스커트, 볼륨감 있는 톱과 재킷, 플랫 뮬 등 다양한 아이템을 런웨이에 올렸다.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의 패션 디렉터 제니퍼 쿠빌리에(Jennifer Cuvillier)는 “도시적인 테일러링을 더한 버뮤다 쇼츠와 여성스러운 동시에 건축적이었던 뷔스티에가 인상 깊었다. 기교 없이 ‘커팅’에 집중한, 조용한 럭셔리스러운 컬렉션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톰 그레이하운드의 CEO 데이비드 강은 “다양한 소재와 아름다운 컬러 팔레트로 구성된 매우 여성스러운 컬렉션”이라 얘기했다. 투모로우 런던의 최고 개발 책임자이자 이사회 멤버인 줄리 길하트(Juilie Gilhart)는 “세련되고 시크하고, 웨어러블하다. 매장에서 ‘잘 팔릴 것’을 확신한다”는 말과 함께 까르벵의 ‘환상적인 시작’이자 ‘뉴 룩’이라고 평했다.
트로터의 임무는 까르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2018년 세르주 루피외(Serge Ruffiex)가 세 시즌 만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은 후 그간 까르벵의 컬렉션은 하우스 내 스튜디오가 맡아왔다. 루이스 트로터는 브랜드의 전환기를 이끌 수 있는 적임자였다. 4년 남짓 라코스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트로터는 여성복 중심으로 컬렉션에 일관성을 불어넣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할 땐 또 어떻고. 길하트는 “트로터의 디자인이 세련된 웨어러블 의류에 약간의 쿨한 미학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유명했다”고 덧붙였다.
2023년 1월 루이스 트로터는 라코스테를 떠났다. 그리고 2월 곧바로 까르벵에 합류했다. 데뷔 쇼를 치르기 전 <보그 비즈니스>는 샹젤리제 거리에 자리한 까르벵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트로터는 “까르벵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이 브랜드가 특정 제품이나 실루엣으로 유명하지 않다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저만의 창의력을 아주 자유롭게 뽐낼 수 있었죠. 하우스는 마담 까르벵의 정신, 그 자체예요. 낙관주의와 자발성, 자유, 주체성에 관한 것들이죠. 이 쇼는 이에 대한 우리의 첫걸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아름답고 실용적인 옷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장인 정신과 디테일에 신경 쓴, 단순하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옷이요. 여기에 신중하게 접근해보고 싶고요.”
쇼가 끝난 후 트로터가 몇 마디 덧붙였다. “어떤 요란함 없이 여성에게 집중하는 것, 정직하고 실용적인 것, 저에게 진짜 옷이란 그런 거예요.” 가격도 ‘신중하게’ 책정될 예정이다. 그녀는 “중요한 건 제품 자체에 비례하는 가격입니다. 장인 정신은 정말 중요해요. 가격도 그 가치에 걸맞게 정해야죠”라고 말했다.
까르벵은 1945년 파리에서 마리 루이즈 까르벵(Marie-Louise Carven)이 설립했다. 그녀는 당시 몇몇 꾸뛰리에와 함께 기성복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그 후 2008년 사업가 앙리 세바운(Henri Sebaoun)이 까르벵을 인수했고, 다음 해 기욤 앙리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하우스를 부활시켰다. 2014년 앙리가 떠나고 까르벵은 알렉시스 마샬(Alexis Martial)과 아드리안 카요도(Adrien Caillaudaud)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듀오로 들였지만 2016년 두 사람은 하우스에서 손을 뗐다.
같은 해 홍콩에 본사를 둔 유통업체 블루벨이 까르벵 지분의 과반을 인수했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2017년 연간 매출이 2,000만 유로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5월 까르벵은 파산 신청을 해야 했다. 그해 말, 중국의 아이시클 그룹(이후 리브랜드를 거치며 아이시클 까르벵 차이나 프랑스 혹은 줄여서, ICCF 그룹으로 변경)이 까르벵을 인수했다. 하우스는 현재 매출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하는 상태다.
2021년 ICCF 그룹은 샹젤리제 6번가에 까르벵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이곳은 1945년 마리 루이즈 까르벵이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시작한 바로 그곳이다. 현재 중국에는 22개 까르벵 매장이 있다. 트로터는 “아이시클 그룹은 아주 강력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룹을 설립한 이들이 추구하는 철학도 그렇고요. 하지만 아이시클은 아이시클이고, 까르벵은 까르벵입니다”라고 말했다.
2024년 초에는 새롭게 리브랜딩한 까르벵을 마주하게 될 거다. 트로터는 “컬렉션뿐 아니라 모든 것이 바뀔 거예요. 스토어 컨셉부터, 로고, 본사까지 전부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죠”라고 말한다. 트로터는 대담한 비전이 있다. “아주 튼튼하고 큰 하우스로 만들고 싶어요. 틈새시장에 머물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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