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도심의 사바나에서 코끼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2024.02.15

by 류가영

    도심의 사바나에서 코끼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엄정순은 600년 전 이방의 생물체인 코끼리를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흔들리는 족적을 좇아 도달한 지점에는 디아스포라와 소수자의 이야기, 감각의 재배치라는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거대한 코끼리의 일부와 엄정순 작가.

    엄정순 작가의 첫 예술적 발화부터 지금까지의 행보에는 항상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명제가 함께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까지 선보인 드로잉은 곤충 더듬이로 대상을 촘촘히 훑은 듯한 신중한 관찰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2000년대에는 이런 선의 흔적에 시간을 더했다. 초고속 열차를 타고 풍경 사진을 찍으며 흐르는 시간에 의한 무한한 자연을 담았다. 흐린 초점 사이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를 통해 사색의 폭을 넓히는 시기였다. 이후 시각장애인들과 예술적 관계를 나누며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지닌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되었다. 이 오랜 여정 안에 코끼리가 재빨리 몸을 들였다. 엄정순 작가는 지상에서 가장 큰 이 동물을 인류가 탐험하고자 하는 무엇으로, 기존의 전형성, 정상성, 관성을 전복하는 ‘다름’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선택했다.

    두손갤러리에서 9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흔들리는 코끼리>는 일관되게 축적된 주제 의식이 코끼리라는 매개로 지평을 넓히는 순간이며 기록이다. 코가 없는 불안정한 코끼리의 외로움을 시작으로 600년의 시간을 사진의 셔터 스피드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의 또 다른 등장인물인 새나 나비의 흔들림 속에서 생명력을 읽게 된다.

    셔터 스피드를 조정해 모션 블러 효과를 낸 1,000m 길이의 사진 작품. 길을 낸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있는 모든 대상을 관찰하는 데 흥미가 있다. 그 관찰이 내 작업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관찰자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어떤 예술가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거나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다고 한다. 나는 거꾸로다. 내게 ‘본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생긴 트라우마다. 당시 집 마당에 안 쓰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오랜만에 물을 틀면 녹물이 나오다 맑은 물이 나오지 않나. 그사이 아주 짧은 찰나에 오렌지 빛깔이 보였다. 어린아이의 눈을 거치니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된 거다. 이성적으로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없는 건 아는데, 한순간에 본 판타지가 나도 모르게 말로 나오고, 듣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이 되었다. 본 것을 상대에게 전달할 때 너무 많은 단계와 괴리가 있어 스스로를 검증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보는지 ‘본다’는 행위의 비중이 커졌다. 마음의 깊은 질문이자 너무 알고 싶은 간절함이 된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미술로 트라우마를 해소했고, 결과적으로 질문의 답을 찾는 가장 적절한 과정이었다.

    9년 만의 개인전이다. 하나의 주제가 조형, 사진, 드로잉이라는 매체로 확장되지만, 전시장 구조와 맞물려 작가가 만든 세계로 매끄럽게 인도하는 느낌이 든다.

    개인전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당연히 작업은 지속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데 동일한 서사를 한 번에 꿰는 좋은 기회가 온 거다. 옛 구세군 교육기관이었던 전시장은 비슷한 크기의 방이 늘어선 구조다. 처음에는 전시를 펼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서사가 있는 코끼리의 여정을 각 공간마다 하나씩 챕터가 바뀌듯 연출했다. 머나먼 곳에서 한반도에 처음 도착한 코끼리가 되어 영화의 에피소드가 바뀌듯 전시를 따라가보면 좋을 것 같다.

    한반도에 처음 온 코끼리는 사람을 죽여 유배당한다.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귀향 보내라는 세종의 전언을 바탕으로 그린 대형 작품.

    15년 넘게 코끼리를 화두로 작업했다. 왜 하필 코끼리인가.

    2008년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다 코끼리와 아주 가까이서 눈을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앞서 말한 어릴 때의 경험처럼)“우리를 재빨리 근원으로 데리고 가는”이라는 문장이 눈과 귀로 똑똑히 들어왔다. 단어 하나하나를 복기하다 코끼리가 왜 내 마음속에 들어앉았을까 스터디를 시작했다. 처음 우리나라에 온 코끼리가 사람을 죽여 유배당한 역사적 사건이나 생태적인 면을 알아가면서 하나의 세계가 열렸다. 그러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 ‘동물의 디아스포라’다. 코끼리는 16세기 영토 확장을 위한 항해의 시대에 국가 간의 외교 선물로 쓰인 희귀 동물이자 초현실적인 크기와 외모로 배척받던 동물이다. 오래전 사례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어떤 변하지 않는 반복과 사실, 코끼리의 수난 사례가 지금 우리 사회의 소수자가 겪는 일과 똑같이 느껴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이 서사를 푼 것은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이고 간절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시각적 감각에서 청각적 감각으로 옮겨온 드로잉.

    작품 속 주어가 코끼리라면 흔들림은 목적어다. 회화 속 동물은 어디로 출발하며 잔상을 남기고, 사진 속 풍경은 무언가 빠르게 지나간 자리다.

    <흔들리는 코끼리>라는 제목에 다 담은 거나 마찬가지다. 장 콕토는 영화 <오르페우스>에서 주인공이 부인을 구하려고 지하 세계로 넘어갈 때 거울을 이용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옷장이고. 나에게는 흔들림이 첫 번째 제스처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여는 움직임이다. 말한 대로 내 작품에는 정지된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건 다 흔들리니까.

    전시장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실제 코끼리 크기의 조형물은 코가 없는 불안정한 모습에 부드러운 천으로 싸여 있지만, 그 안은 무수한 철골로 단단하게 발붙여 놓았더라.

    코끼리는 피하고 쫓겨 계속 떠나야만 했다. 짐을 싸고 푸는 것처럼 130 조각으로 나누어 조립하고 해체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저 큰 코끼리를 해체하고 나면 한 박스 정도밖에 안 된다. 겉면은 원단 그대로를 덮은 것이 아니라 코끼리 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직조했다. 부드러운 울을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만질 때 짧은 순간이지만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치할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직접 바느질을 한다. 계속 이렇게 작업하기는 힘들 것 같다.(웃음)

    광주 비엔날레에서 코끼리 조형물을 선보이면서 ‘돈 터치(Don’t Touch)’가 아닌 ‘두 터치(Do Touch)’로 반향을 일으켰다.

    광주 비엔날레 때도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미술관에서 수갑을 찬 듯 눈만 굴리던 경험이 있지 않나. 45만 명이 전시를 봤다고 하니 적어도 20만 명 정도는 만지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손을 타 보풀이 나고 해지더라. 그걸 2주마다 잘라서 보관하니 새로운 재료가 되었다. 다시 실로 뽑아 뭘 하나 만들려고 한다. 금기를 조금 깼더니 나와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여지가 생겼다.

    왜 하필 코가 없는 코끼리일까? 의문으로부터 시작하게 하는 거대 조형물.

    보이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눈’이라는 단체를 30년 가까이 이끌었다. 시각장애 학생들과의 수업과 작업에서 비롯된 교감은 당신에게 또 다른 시선을 부여했을 텐데.

    처음 시작할 때는 비슷한 사례도 없었기 때문에 미술을 도구 삼아 장애 학생들에게 사회봉사를 하나 보다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계속 언급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본다’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안티 테제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이 쌓였다. 외국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미술 작업 하는 걸 본 후 시각 외에도 생각하는 힘의 사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우리가 간주하는 것처럼 깜깜한 암흑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소수다. 흐릿하게 보인다든가 색이 다르게 혹은 터널을 보듯 가운데만 초점이 맞는 것같이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이들이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과 관점 또한 폭넓다. 인간은 오감이 작동해 구축된다. 시각 중심의 사고는 통제를 불러온다. 퇴화된 다른 감각을 깨우치는 감각의 회복은 인간성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팬데믹 시기에 접긴 했지만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만 소개하는 갤러리가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관람객을 위해 작품을 만지도록 허용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도 어느새 눈을 감고 만지면서 감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활성화하는 경험을 그 자리의 모두가 나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내린 결론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배를 타고 갈지 비행기를 타고 갈지 결정할 뿐이다. 나는 탐험가의 생애를 다룬 책을 많이 읽는다. 아문센이 북극에 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가 일상을 떠나 오지로 간 것처럼 인간에게는 크든 작든 호기심과 상상력이 있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해결하는 거고 성이 안 차면 그 사람은 떠나는 것이다.

    최근 가장 강렬했던 시각적 감상은?

    좋은 질문이다. 내가 분명히 찍어놨다.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3층짜리 양옥에 산다. 옆으로 한옥 지붕이 내려다보이는데 그 집 지붕 사이로 하얀 선이 가로지르며 우리 집까지 나 있었다. 회색 기와의 굴곡 사이로 하얀 전선이 몹시 아름다웠다. 그런데 판타지에서 깨고 보니 불법 인터넷 선인 거다.(웃음) 본다는 것엔 양면과 다면이 있다. 어떤 걸 선택하느냐가 어떤 인생 전반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떠올렸다.

      박의령
      사진
      맹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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