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신현지 “언젠가 이어질 작은 점을 부지런히 찍고 있는 셈”

기죽지 않는 근성과 타고난 유머 감각. 두 가지 미덕을 하나로 꿰는 무람없이 솔직한 태도. 감탄이 나온다. 신현지라는 시대정신.

패션 화보

신현지 “언젠가 이어질 작은 점을 부지런히 찍고 있는 셈”

기죽지 않는 근성과 타고난 유머 감각. 두 가지 미덕을 하나로 꿰는 무람없이 솔직한 태도. 감탄이 나온다. 신현지라는 시대정신.

SHAPE OF YOU 루시와 루크 마이어(Lucie & Luke Meier)는 형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질 샌더의 새로운 컬렉션을 완성했다. 각진 어깨, 넓게 퍼지는 스커트, 퍼프 소매 등 이 흥미로운 연구의 결과로 신현지의 매력이 배가된다.

DAILY COUTURE 테일러링과 기술, 여성성과 남성성, 데이웨어와 화려함, 일상과 꾸뛰르의 미덕이 결합되어 발생하는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탐구한 질 샌더 2024 봄/여름 컬렉션.

EAT UP! 질 샌더의 시그니처 ‘카놀로’ 백. 이탤리언 디저트 카놀리를 본뜬 독특한 튜브 형태에 옅은 레몬색으로 싱그러움을 더했다.

NEW MINIMALISM “그것은 항상 진화하는 것이지, 일회용 개념이 아닙니다.” 듀오 디자이너는 브랜드 고유의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와 디테일, 공예적 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질 샌더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SHOW OFF 쇼의 오프닝 룩으로 선보인 올리브색 이브닝 드레스. 몸에 꼭 맞는 니트 상의와 볼륨을 살린 치맛자락의 조합이 눈길을 끈다.

HAVE FUN 커다란 버킷 형태에 나선형 가죽 스트랩으로 재미를 더한 ‘버티고’ 백. 옥스퍼드 셔츠의 변형된 소매 사이로 뻗어 나온 가늘고 긴 팔로 움켜쥐었다.

LUX PUNK 단순하면서도 잘 차려입은 느낌을 주는 트렌치 코트, 셔츠, 버뮤다 팬츠 조합. 여기에 커다란 크리스털 주얼리, 매끄러운 스타킹 삭스와 연결된 스트래피 샌들로 펑키한 요소를 가미했다.

CATCH EYES 한없이 강렬하다가도 한순간 새초롬한 눈빛을 만들어낸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신현지의 변화무쌍한 얼굴.

MIX & MATCH 넓고 빳빳한 세일러 칼라의 밋밋함을 덜어내는 크리스털 귀고리. 의상과 액세서리는 질 샌더(Jil Sander).

“촬영 전 아침 루틴이 있나요?” 오전 8시 30분. 스트레칭하듯 가볍게 던진 질문에 신현지가 대뜸 고무줄을 팽팽하게 건 자신의 귀를 보여준다. “최근 숍에서 배운 건데요. 이렇게 하면 얼굴 부기가 빨리 빠진대요. 해보니까 효과가 좋아서, 쿠팡에서 고무줄만 한 300개 주문했어요. 귀에 고무줄 걸기. 이게 요즘 제 루틴입니다.” 리얼한 답변과 근엄한 말투에 시작부터 웃음이 터졌다. 공손한 얼굴로 능청스럽게 잽을 날리는 신현지식 유머. 김태호 PD가 요즘 그를 각별히 눈여겨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동양인 최초로 샤넬 쇼 클로징 무대를 장식한 10년 차 톱 모델. 그러나 유행에는 통 관심이 없어 친구들 사이에서는 물정 모르는 ‘애늙은이’로 불리는 사람. 에어팟보다 유선 이어폰을 더 선호하고, 기자에게 철 지난 신조어인 ‘엄근진’의 뜻을 의기양양한 얼굴로 설명하는(모른 척해줬다) 그의 엉뚱한 매력은 현재 김태호 PD가 이끄는 유튜브 채널 테오(TEO)의 신작 ‘트렌디할 조영지’에서 빛을 발하는 중이다. “원래 제목은 ‘트렌디한 조영지’였어요. PD님은 제가 엄청 트렌디한 사람인 줄 알고 섭외하셨더라고요.(웃음) 첫 녹화 날 아차 싶었죠. 오빠들은 옛날 트렌드라도 알지, 저는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또래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나름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자신했는데,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신현지의 ‘우물 탈출 모드’는 이미 지난해부터 활성화된 상태. 웨이브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의 ‘백아리’ 역으로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했고,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 2>에 출연해 덱스, 홍진호 등 예능 대세들과 함께 ‘야생 팀’ 멤버로 활약하는 등 2023년은 인간 신현지의 숨은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한 해였다. “모델로만 살아와 새로운 도전이 두렵긴 했어요. 저의 지난 커리어가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고요.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웃기는게 제 역할이잖아요. 고민 끝에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어요. ‘진심’이 통하는 시대니까요. 솔직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바로 알아채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그의 지난 ‘레전드 런웨이’가 역주행하듯 회자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신현지는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비행기에 오르는 ‘빡센’ 현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샤넬의 뮤즈가 된 그는 1월 파리 오뜨 꾸뛰르 무대에서 새하얀 레오타드와 타이츠 위에 연핑크색 트위드 셋업을 입고 발레리나처럼 사뿐한 워킹을 선보이며 또 한 번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스튜디오에서 피팅한 제 모습을 본 디자이너가 “트레 졸리(너무 귀여워)!” 하고 엉덩이를 팡팡 쳐주셨어요. LA 컬렉션에 나온 귀여운 백팩을 선물로 주시기도 했고요. 샤넬의 런웨이는 이제 저에게 단순히 쇼에 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이번 <보그> 커버 촬영은 질 샌더와 함께했다. “질 샌더는 제 옷장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브랜드예요. 질 샌더 특유의 매니시한 선이 저의 중성적인 면과 잘 맞아떨어지죠. 맨얼굴에 툭 걸치기만 해도 어딘지 모르게 차려입은 듯한 느낌을 주고요.”

모델 신현지와 인간 신현지의 흥미로운 낙차. 그 반전 매력을 ‘모델답지 않은 털털한’이라는 관용구로 함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보기만큼 느슨한 사람은 아니다. 교육열이 높은 대치동에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18세에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4>에 출연해 정호연, 황현주 등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얼마 전 ‘찐친’ 장도연이 진행하는 웹 예능 ‘살롱드립 2’에 출연해 과거 공황장애와 식이장애로 13kg이 빠진 일화를 털어놓은 그는 모델 일이 뚝 끊긴 코로나 기간 동안 자신의 생활력을 시험해보고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생업으로 배달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감히 견줄 수준은 아니지만 몇 개월 일하면서 ‘그래도 내가 깡이 좀 있구나’ 여겼어요. 모델은 늘 하는 일이라, 하면서도 제가 어느 정도 악바리인지 체감하기 어려웠거든요.” 신현지는 최근 스티브 잡스의 명강의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를 보고 머리를 띵 맞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지난 활동이 제각각 하나의 작은 점이라면, 미래에 그 점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새로운 일을 할 때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을 믿는다. “모델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건 아니에요. 현재의 제 모든 활동은 인간 신현지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거든요. 모델 신현지, 예능인 신현지, 연기자 신현지, 하며 배달원 신현지까지 모두 제 일부인 거죠. 지금 저는 언젠가 이어질 작은 점을 부지런히 찍고 있는 셈이에요.” (VK)

포토그래퍼
안주영
패션 에디터
김다혜
피처 디렉터
김나랑
강보라(소설가)
모델
신현지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김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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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알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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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L S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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