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새벽의 모든

2024.04.06

by 정지혜

    새벽의 모든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상영작을 공개했다. 올해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장편 <새벽의 모든>(2024)이다. <와일드 투어>(2019),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20) 등을 만든 미야케 쇼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 등을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와 더불어 동시대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중요하고 탁월하며 성실한 창작자다. 그의 영화가 놀라운 이유를 꼽자면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하나로 수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각장애가 있는 여성 복서 케이코(키시이 유키노)의 이야기, 그녀가 대회에서 승리하기도, 패배하기도 하며 새로운 나날을 맞는 시간, 그 사이 다니던 체육관이 폐관하는 과정을 그린 그의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의 대사를 빌려 말해보자면 이러하다. “재능은 없지만 인간적인 기량이 있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사람들과 그들의 세상을 의심 없이 믿게 하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미야케 쇼 영화를 볼 때면 나는 매번 그들과, 그런 세상과 만날 수 있다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의 인간적 면모와 기량에 크게 감동한다. 거대한 담론, 거창한 사건, 유별난 캐릭터, 기막힌 영화적 장치와 설정 없이도 가능한 이것이야말로 미야케 쇼의 빛나는 영화적 재능이자 기량이며 그의 막대한 매력이다.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 컷

    <새벽의 모든> 역시 이런 기대를 한껏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된 영화는 세오 마이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단행본 <생명의 끈>(2002)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특유의 정갈하고 담담한 필치로 아픔을 겪는 인물들의 세부를 그려왔다. <행복한 식탁>(2012, 한스미디어),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2019, 스토리텔러) 등을 비롯해 국내에도 이미 여러 편의 작품이 소개됐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에 나온 인물들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PMS(월경 전 증후군)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와 공황장애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다. 그들 각자가 겪는 마음의 변화와 증상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그들이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이 소설의 기본 설정과 인물을 가져왔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 모두 이들의 관계를 통해 각자 증상의 해소와 완결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동병상련을 품을 줄 아는 인간적 면모를 발휘하는 동료로서 서로가 서서히, 조금씩, 시나브로 관계를 진척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세오 마이코의 ‘새벽의 모든'(왼쪽주머니, 2022)

    인간적 면모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본적으로 소설과 영화가 택할 수 있는 방편은 다를 것이다. 인물들의 일터가 금속 회사인 원작과 달리 영화는 어린이 교재용 망원경, 현미경, 천체 관측 키트를 만드는 곳으로 설정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공간과 이들이 하는 일은 우주와 별, 빛과 어둠, 밤과 새벽, 아침을 둘러싼 아주 오랜 인간의 역사를 품게 된다. 별을 좇아 방향을 가늠하던 고대인의 지혜, 열정적으로 우주를 관찰하며 성실히 일해온 누군가의 흔적,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나가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 그리고 직원들까지. 그들의 시간이 교차하고 만나고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역사와도 슬며시 조우한다. 빛과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은 곧 영화의 그것이기도 하니까. 영화 고전주의자 미야케 쇼답게 빛과 어둠을 세밀히 조율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마주할 새벽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영화가 공개되면 더 많은 이야기가 샘솟을 것이다. 지금은 원작 소설부터 차분히 읽는 일로 다가올 영화를 기대한다. 미더운 창작자 미야케 쇼가 발견한 반짝이는 소설이라니, 그가 빚어낼 영화의 시간이라니. 따로 또 같이 두 세계가 그리는 ‘새벽의 모든’을 기다려본다.

    포토
    전주국제영화제,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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