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자연림, 제냐의 미래
이탈리아 북부의 비엘라 알프스에는 100km²에 이르는 오아시 제냐가 있다. 태초의 자연림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제냐의 미래를 정의한다.
“증조부 에르메네질도(Ermenegildo)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제냐의 마케팅, 디지털 및 지속 가능성 담당 이사이자 제냐 가문 4세인 에도아르도 제냐(Edoardo Zegna)가 말했다. “제가 그분을 그려봐야 한다면, 건전한 광기에 휩싸였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은 모든 유형의 감정과 창의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에르메네질도는 1930년대 북부 이탈리아 비엘라산에 양모 공장을 설립하고, 1993년 그 봉우리들 사이에 자연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프로젝트 ‘오아시 제냐(Oasi Zegna)’를 실행했다. 제냐가 걸어가는 모든 길은 232번 도로에서 시작되었다. 이 도로는 양모 공장이 위치한 트리베로(Trivero) 주변 계곡이 있는 해발 700m에서부터 출발해 약 1,800m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한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저는 공장 사무실에서 산속으로 산책을 가기로 결정한 서른 살의 증조할아버지를 상상합니다. 산책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는군요.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그렇게 그분은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계곡과 산을 잇는 26km의 도로를 포장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에르메네질도는 직원들과 지역사회를 위한 계획도 떠올렸다. 에도아르도는 말을 이어나간다. “증조할아버지는 기업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에 나누는 것이라고 확신하셨죠. 공장 주변에 교회, 고아원, 주택, 상점을 지으셨어요. 이는 직원들을 위한 지역 생태계죠.” 에르메네질도는 기업가 정신과 생태학, 문화를 융합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은 키도치에 오바시(Chidozie Obasi)의 글, 파올로 바칠리에리(Paolo Bacilieri), 세실리아 칼스테트(Cecilia Carlstedt), 주세페 라가치니(Giuseppe Ragazzini)의 일러스트 그리고 라우라 데카미나다(Laura Decamina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통해 <본 인 오아시 제냐(Born in Oasi Zegna)>라는 책이 되었다. “우리 이전 세대는 오아시와 오아시의 마법을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으며 자연과 산업, 지역사회 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근원의 가치를 간직한 소중한 곳을 유산으로 받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특별한 유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임무는 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에도아르도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제냐의 창립자와 제냐를 둘러싼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우리 일가와 우리의 핵심 가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110년 동안 이 이야기는 아주 순수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투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복잡한 신화를 간결하게 분석해 독자들이 읽을 때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본 인 오아시 제냐>는 거의 아동 도서에 가깝습니다. 그 책의 본질은 비엘라 계곡과 알프스 사이에 자리한 이 보석 같은 곳을 순수한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개념과 가치를 쉽게 전달하는 일화, 즉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도 양모, 면, 목재 펄프로 만든 특수 용지를 곳곳에 사용했기 때문에 페이지마다 다른 감촉이 느껴진다. 책 속 이야기 중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에르메네질도의 후원의 시작과 양모 가공에 전념하는 이야기, 특히 제냐 양모 공장 살라 콰드리(Sala Quadri)에 작품이 전시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아버지 에토레 피스톨레토 올리베로(Ettore Pistoletto Olivero)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창립자의 정신을 받들어 재단은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의 ‘알라페르토(All’aperto)’ 프로젝트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그린 마인드(Green Mind)’ 등과 같은 예술을 주제로 한 장소 특정적 작품을 통해 ‘기브 백(Give Back)’ 프로세스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책을 위해 우리는 이 신화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초대해 협업했습니다. 아트는 감정의 영역이고 마음에 가닿아 울림을 주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좀 더 유치하고 장난기 많고 경쾌함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선별했습니다.”
<본 인 오아시 제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책은 계절별로 나뉘어 있으며 계절마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챕터는 가을로, 브랜드의 상징이 된 컬러로 구성되어 있죠. 232번 도로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단풍은 당사 컬렉션에 있는 색상명으로도 표시됩니다. 제냐가 시작된 곳으로 향하는 직선과 곡선의 줄무늬는 모든 제냐 제품과 창립자가 건설한 새로운 도로를 상징합니다. 이 도로는 감동의 길이며 단풍잎 빛깔의 줄무늬는 세계를 향한 창입니다. 오아시 캐시미어(Oasi Cashmere)와 오아시 리노(Oasi Lino)라는 컬렉션명에서도 드러나듯 장소를 수호하는 정신과 현재의 컬렉션은 이어집니다. 또한 원단에 우리의 약속 중 하나인 100% 추적 인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원자재 공급망을 소유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호주에도 양털 농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프롬 시프 투 숍(From Sheep to Shop)’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제품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 역시 오아시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캠페인을 위해 여름에는 전 세계의 또 다른 오아시를 찾았고, 겨울에는 트리베로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4월에 진행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오아시가 상륙했다. 제냐는 <본 인 오아시 제냐>를 소개하는 것 외에도 오아시의 자생식물로 두오모 광장의 화단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비엘라산맥에서 사진이 많이 찍힌 장소인 콘카 데이 로도덴드리(Conca dei Rododendri)의 상징적인 꽃을 밀라노라는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제냐 디자인 디스트릭트 본사에서는 관목 장뇌, 상록수, 진달래, 철쭉 등 오아시 제냐의 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몰입형 전시회를 개최했다. 식물의 계절성을 보장하기 위해 5월에는 고광나무(Philadelphus)를 두오모 광장의 화단에 심은 후 비엘라산맥에다가 다시 옮겨 심었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대중에게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사보나 거리(Via Savona)에 있는 제냐 본사의 문을 대중에게 오픈했습니다.” 한편 오아시에서는 나무를 다시 심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주는 것은 굉장히 훌륭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직원들의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이른바 베이비 포레스트(Baby Forest)라고 부르는 산비탈에 소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아이의 이름을 붙입니다(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10년 동안 1,00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숲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바로 심을 수 있는 나무를 한 그루씩 상징적으로 선물하고 있죠. 이는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증조부로부터 탄생한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Alessandro Sartori)가 고안한 해시태그 #UseTheExisting은 오아시의 모든 삶과 모든 측면에 지속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접근 방식을 정의한다. 쓰러진 나무로 책갈피를 만들고,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최소화하며 기존 제품을 업사이클링해 새로운 직물과 소재를 얻는다. 이런 제냐의 철학은 2019년 밀라노 그린 카펫 패션 어워즈(Green Carpet Fashion Awards), CNMI 서스테이너블 패션 어워즈(CNMI Sustainable Fashion Awards), ADI 디자인 인덱스 이노베이션 어워드(ADI Design Index Innovation Award) 등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일로 가는 길(Our Road to Tomorrow)’은 제냐의 의류와 액세서리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길로, 제냐의 기둥 역할을 하며 그래픽적 기발함을 뛰어넘어 헌신을 상징한다. “우리는 향후 10년 안에 이 2개의 줄무늬가 브랜드 자체보다 더욱 눈에 띄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부심을 가지고 입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오아시는 2014년 이탈리아 문화예술재단 FAI(Fondo Ambiente Italiano)의 후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밀라노에서 120km 떨어진 곳에도 보석 같은 장소는 존재한다. 2022년 6월 22일 양모 공장 옥상에서 열린 2023 S/S 패션쇼를 위해 600명의 게스트가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에도아르도 제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정한 럭셔리의 영역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을 방문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전망 공간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짓는다. “몬테 마르카(Monte Marca) 혹은 산 베르나르도(San Bernardo) 성당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산과 푸른 하늘이 한눈에 보입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또 다른 특별한 경관은 구름이 모든 것을 덮고 있는 파다나(Padana) 방향의 파노라마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빅서 주립공원 같은 비현실적인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VK)
- 글
- ELISA PERVINCA BELLINI
- 사진
- MATTIAS KLUM, COURTESY OF ZEGNA
- SPONSORED BY
- ZE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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