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눈동자의 소년은 어떤 청년으로 자랐을까,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展

헤르난 바스(Hernan Bas)의 그림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괴합니다. 그 세계에는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 때로는 혼자, 때로는 여럿 등장합니다. 대체로 마른 몸을 가졌고, 텅 빈 눈동자에, 판독이 불가한 몸짓을 하고 있지요. 이들의 창백한 얼굴에서는 기쁨도, 환희도, 슬픔도, 절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십수 년 전 처음 헤르난 바스의 작품을 만났을 때, 허무주의와 낭만주의를 동시에 탑재한 그의 소년들에 깊이 매료된 기억이 납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합니다. 작가가 나이 들듯, 이들도 성장합니다. 오는 5월 31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헤르난 바스의 개인전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에서도 이들은 작품마다 출현하지만, 더 이상 청춘의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서브컬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회화로 풀어내는 헤르난 바스는 이번에 청년들로 하여금, 널리 퍼져 있지만 소위 ‘쓸모없는’ 인간의 행동을 시연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플로리다의 늪에서 헤매기도 하고(‘불필요한 순간’, 2025), 헤밍웨이 하우스의 고양이 관리인을 자처하기도 합니다(‘육발 고양이의 관리인(헤밍웨이 하우스)’, 2025). ‘반려동물 전문 점쟁이의 딜레마'(2025) 같은 재미있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는 한 마리의 암탉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검은 알을 낳기 시작한 사건을 조사하는 반려동물 전문 점쟁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 듯합니다. 헤르난 바스의 인물들은 시공간을 짐작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공간을 벗어나, 현실과 환상 사이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찮은 것에 대한 집중과 시각적 과잉에 대한 헤르난 바스의 관심은 19세기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더군요. 헤르난 바스의 성장한 청년들은 여전히 불안과 퇴폐의 뉘앙스를 간직한 채, 그 불온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세상의 부조리하고도 흥미로운 지점을 탐색합니다. 헤르난 바스는 인물들을 통해 성소수자 운동, 욕망, 정치, 뉴스, 음모론 같은, 하나로 묶어낼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몽환적인 블랙홀 같던 그의 회화는 형식적으로 다채롭게 발전하고 있고, 그 고유한 형식에 힘입어 내용은 더욱 친근하게 와닿습니다. 세상의 이야기만큼 보는 이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게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헤르난 바스는 마이애미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쯤,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작가 소속 갤러리가 마련한 조찬 자리에 간 적 있는데요. 그날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는 가끔 샴페인을 홀짝거리면서도 끊임없이 일을 했습니다. 수백 권에 이르는, 자신의 작업을 담은 책에 직접 목판으로 그림과 글, 사인까지 새겨 넣었기 때문에 꽤 노동 집약적인 행위였는데, 그것이 무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헤르난 바스의 인물들이 어떻게 생명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토록 열정적인 작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환상은 현실의 토양 위에서 한결 구체적으로 변모하고, 더 잊을 수 없는 서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이야기가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 있다 해도, 귀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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