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 6, 지금 패션은 벨기에에서 시작됐다
디올의 갈리아노, 지방시의 리 맥퀸, 끌로에의 맥카트니와 피비, 버버리의 베일리. 한때 ‘잘나가는’ 패션 하우스의 수장은 대부분 영국 출신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 패션계를 장악한 건 단연 벨기에다.

벨기에가 어떻게 세계적인 패션 인재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앤트워프 패션 박물관 모무(MoMu)에서 열리는 ‘앤트워프 식스’의 40주년 기념 전시가 답이 될 것이다. 지난 3월 27일 열린 <앤트워프 식스(The Antwerp Six)> 전시 오프닝은 놀라운 사회적 재회의 장이었으며, 오늘날 패션계 전반에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스며든 벨기에적 유대와 태도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과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는 직접 만든 설치 작업을 설명하며 저마다 마법 같은 세계에 몰입했다. 베르사체에 합류하기 전 앤트워프로 돌아온 피터 뮐리에는 디르크 비켐베르흐스(Dirk Bikkembergs)의 설치를 감상하며, 어린 시절 자신의 시그니처 부츠를 산 기억을 떠올렸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여러 세대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를 길러낸 대모 린다 로파(Linda Loppa)를 끌어안고 있었다. 마르니의 메릴 로게는 디르크 반 세인(Dirk Van Saene)이 움직이는 회로 위에 재현한 자동 인형 ‘쇼’에 감탄했다. 또 다른 벨기에 창작자 무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리나 이(Marina Yee)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에 모여 벽을 가득 채운 그녀의 유려하고 역동적인 드로잉을 확대한 이미지를 보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의 독립적인 학생들이 어떻게 작은 북서 유럽 국가인 벨기에에 엄청난 명성을 안겨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앤트워프의 리테일러 헤이르트 브륄로트(Geert Bruloot)의 지원 아래 힘을 모은 그들은 1987년 빌린 트럭을 타고 런던으로 가 자신의 옷을 전시했고, 이어 웨스트웨이 스튜디오에서 비공식 게릴라 쇼를 열었다(이 일로 영국패션협회가 런던 패션 위크에서 퇴출시켰다). 이 모든 과정은 당시의 잡지 기사 스크랩과 영상, 각 디자이너가 제작한 홍보 전단과 초대장, 앞선 감각의 이미지 카탈로그에 기록되어 있다.
드리스 반 노튼의 회상에 따르면, 앤트워프 식스 이야기의 시작은 교실이었다. 그곳에서 각자의 개별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갔고, 여성스러운 단정함을 강요하던 보수적인 교사에 반항했으며, 런던 펑크의 DIY 정신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 사이에는 늘 일종의 경쟁이 있었습니다. 건설적인 경쟁이었죠. 친구끼리 어울리며 즐기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의 컬렉션과 세계를 만들어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다른 학생들과 달리 런던으로 간 그 여섯 명은 이미 자기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다. 그것은 수업 중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건 배운 게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학교에서 직접 찾은 자기만의 사진가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런 팀이 구성되어 있었던 거죠. 물론 앤 드멀미스터는 이미 남자 친구 패트릭 로빈(Patrick Robyn)과 함께였고요.”
드멀미스터와 로빈은 그녀가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에 결혼했다. 많은 디자이너의 초기 컬렉션을 담은 로빈의 인상적인 사진 작업은 이번 전시와 함께 출간된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1990년대 파리 쇼의 마지막에서 엄마와 함께 걸었던 어린아이로 기억되는 그들의 아들 빅터 로빈(Victor Robyn)은 전시의 그래픽 디자이너다.
드멀미스터는 자신이 디자인한 어두운 공간에 서 있었다. 새까만 거울 플랫폼 위에 선 가늘고 긴 검정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비스듬히 재단된 롱스커트, 미끄러지듯 흐르는 가죽 벨트, 깃털 장식 주얼리, 우아한 비대칭 재킷과 메탈 니트의 반짝임을 두고 그녀가 설명했다. “밤 속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를 원했습니다. 실루엣이 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요. 그리고 아주 차가운 달빛 같은 느낌이죠.”
그것은 드멀미스터의 열정적인 커리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정성, 그리고 2014년 브랜드를 떠나 예술과 가구 작업을 하기 전까지 그녀가 구축해온 세계의 완결성까지 말이다. “친구를 고르듯 선택했습니다. ‘그래, 좋아, 그녀랑 함께하자. 그를 데려가자’ 하는 식이었죠. 너무 많이 고민하지 않고요.”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냥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옷 자체를요. 앤 드멀미스터가 무엇인지.”
월터 반 베이렌동크는 왕립예술학교에서 다른 이들보다 1년 선배였고, 마르탱 마르지엘라와 동기였다.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 둘 다 작은 마을에서 왔고,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서로에게서 받은 자극이 만들어낸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겠다는 결심뿐이었다. 반 베이렌동크의 경우, 앤트워프 언더그라운드 퍼포먼스 신에 참여한 것까지 포함이다. 그의 밝고 다채로우며 장난기 넘치는 컬렉션은 어두운 시대에 맞서는 퀴어 프라이드의 선구적 선언이자, 안전한 성관계와 반인종차별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들은 지금도 1980년대 후반만큼 강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오늘날에는 수집 열풍의 대상이기도 하다. “패션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세상과의 관계와 참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시에서는 후디 안에 자리한 디지털 ‘월터’의 얼굴이 맞은편에 서 있는 그의 상상 속 로봇 친구 푹푹(Puk-Puk)과 대화를 나눈다. 월터의 유쾌한 얼굴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에게 창의성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한계는 단지 다르게 생각하라는 초대일 뿐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밀어붙이고 있어요.” 모두가 ‘월터’라고 부르는 반 베이렌동크는 오랫동안 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 교수로 재직하며 린다 로파의 뒤를 이었다. 이 학교가 이렇게 많은 세대에 걸쳐 인재를 배출하는 비결은 뭘까? “학생에게 훌륭한 기반을 제공하는 놀라운 학교입니다. 깊이 있는 교육을 하죠. 4년 동안 자기 정체성에만 집중하며 방해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학교에서 했던 작업이 커리어의 진짜 기반이 되는 것을 여전히 볼 수 있어요. 뎀나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죠.”
월터의 영향력은 수많은 인재를 만들어냈다. 패션계의 주요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인 올리비에 리조(Olivier Rizzo)가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다. 동문인 사진가 윌리 반데페르(Willy Vanderperre)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겁니다. 월터는 정말 궁극적인 멘토예요. 나뿐 아니라 많은 패션 키즈에게 말이죠. 우리는 정말 패션에 완전히 빠져 있으니까요.” 그가 말을 이었다. “월터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내 안에서 올바른 가능성을 봐주었으며, 늘 지지해주었습니다.”
라프 시몬스 역시 린다 로파에게 왕립예술학교 입학을 거절당한 뒤 월터 반 베이렌동크 밑에서 첫 패션 인턴십을 시작했다. 그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왕립예술학교가 그를 망칠 거라고 말했죠! 그는 산업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거든요.” 로파는 말을 이었다. “그는 교육이 필요 없었어요.”
모무의 수석 큐레이터 카트 데보(Kaat Debo)와 게스트 큐레이터 헤이르트 브륄로트, 로미 콕스(Romy Cockx)가 기획한 전시는 각 디자이너에게 스스로 연출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이들 스스로 예상치 못했지만 역사적인 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움직임의 일부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유망한 신인 패션 인재를 위한 ‘골든 스핀들(Golden Spindle)’ 상을 만든 계몽적인 사회주의 정부의 지원도 받았고, 그들을 벨기에 제조업체, 직물 공장과 연결해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현대 패션 전시 사고의 중심지로 꼽히는 모무의 설립 역시 이 작은 항구도시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생되는 창의적 문화와 깊이 맞닿아 있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벨기에는 국제 무대에서 그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앤트워프 식스의 진정성, 야망, 근면성은 이 나라에서 뒤이어 등장한 모든 이에게 본보기가 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같은 학교 출신의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세트 디자이너, 쇼 프로듀서와 협업하는 방식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브뤼셀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라프 시몬스에게 발탁되어 함께 일하게 된 피터 뮐리에가 설명했다. “라프는 내 졸업 심사위원이었죠.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 교육 방식과 우리가 가진 롤모델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요. 우리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가 전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럼에도 국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다릅니다. 틀에 덜 맞추고, 훨씬 더 열려 있습니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나 브뤼셀의 라 캉브르, 혹은 다른 예술 및 디자인 학교 출신이든 간에, 현재 럭셔리 패션계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출신 또는 벨기에 교육을 받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숫자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프라다의 라프 시몬스,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구찌의 뎀나, 에르메스의 나데주 바니,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 베르사체의 피터 뮐리에,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 꾸레주를 떠난 니콜라 디 펠리체(곧 다른 곳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마르니의 메릴 로게가 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벨기에의 흐름은 다음 세대까지 계속 이어질 거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기 다르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는 없는 또 하나의 특별한 특징이 있다. 바로 소박하고 현실적인 평범함과 우정이다. 마지막으로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2008년 졸업생 메릴 로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금 논란이 될 말을 해볼게요.” 그녀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앤트워프는 ‘가르치지 않는’ 방식이에요. 이론 수업 같은 몇 가지 부수적인 것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여러분이 만들어야 하는 여섯, 아홉 혹은 열두 벌의 룩입니다. 그걸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뭐, 아주 조금은 가르치지만, 바느질이나 패턴 메이킹은 가르쳐주지 않아요. 물론 과장한 것도 있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게도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뭘 좋아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 컬렉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정말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요.” 그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아시죠, 우리는 서로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뭉쳤어요.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유대감이 강한 거예요.” VK
- 글
- Sarah Mower
- 사진
- Philippe Costes, Stany Dederen
- Courtesy of
- MOMU ANTW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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