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들,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힘든 나날이 계속되자 요들을 배우러 스위스로 떠났다. 내면에서 소리를 터뜨리며 울었고 평안을 찾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갠 하늘 아래 자너슬로흐그라트(Saanerslochgrat)의 설원에서 스키를 몰아 탄 뒤라 다리는 기분 좋게 후들거린다. 산더미처럼 쌓인 볼로네제 파스타에 막 포크를 가져가려던 찰나, 우리 모녀의 스키 가이드를 맡아준 마이크 폰 그뤼니겐(Mike von Grünigen)이 물었다. 올림픽에 네 번이나 출전한 그슈타트 출신 영웅이 우리의 다음 스케줄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보통은 스키 슬로프나 쇼핑을 위해 그슈타트를 찾지만, 나는 아주 엉뚱한 계획을 세웠다.
“요들을 배우러 왔어요.” 조금 쑥스러운 듯 내가 덧붙였다. “적어도 그 비슷한 흉내라도 내볼 생각이에요.” 기막힌 우연이다. 우리의 가이드 폰 그뤼니겐이 열렬한 요들 애호가일 줄이야. “요들 합창단 멤버로 활동 중입니다.” 그가 털어놓았다. “쉰 살에 처음 입문했지만, 사실 농부의 아들인 제게 요들은 태어날 때부터 삶의 일부였죠.” 반짝이는 내 눈을 본 그가 말을 이었다. “여름이면 농부들은 소 떼를 몰고 알프스 깊숙이 들어갔죠. 당연히 휴대폰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고요. 그래서 산등성이 너머로 요들을 외치곤 했습니다. ‘나 여기 살아 있다’는 생존 신호였던 거죠.”

내가 그슈타트를 찾은 진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전무한 지독한 음치인 내게 요들은 미학적 성취가 아닌 영적 탐구에 가까웠다. 유독 혹독했던 한 해를 보낸 뒤,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알프스 산비탈의 작은 샬레에서 따뜻한 토블론 초콜릿 퐁뒤를 즐긴 후 요들을 부르겠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그렸다.
요들의 대가와 마주한 기쁨도 잠시,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뭘 입어야 하나요?” 그러자 그는 기세 좋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요들 합창단 모습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요들 실력은 고사하고, 내 옷장에는 제대로 된 옷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멀지 않은 더 플라워 숍(The Flower Shop)에 핸드메이드 알프스 룩으로 유명한 안니나(Annina)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다. 나의 절박한 상황을 전해 들은 그들은 흔쾌히 리넨 소재 양커(Janker) 재킷을 빌려주었다. 초록색 파이핑 테두리와 정교한 꽃 자수, 그리고 사슴뿔 단추가 어우러진 이 재킷은 단순한 옷이라기보다는 테일러링의 예술 그 자체였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요들의 세계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완성했다.

제대로 갖춰 입은 나는 돌담길을 따라 그슈타트의 호텔 르 그랑 벨뷰(Le Grand Bellevue)로 향했다. 정원 한쪽에 자리 잡은 통나무 오두막이 오늘 밤 나의 데뷔 무대다. 퐁뒤 향기로 가득하던 아담한 레스토랑의 깅엄 체크 테이블은 오늘 밤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었다. 시계가 오후 4시를 알리자마자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스위스인답게 요들 강사 아니타 헤프티(Anita Hefti)와 통역을 맡은 역사학자 클라우디아 폰 지벤탈 푸스트(Claudia von Siebenthal Fust)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타는 베른주의 전통 의상 트라흐트(Tracht)를 완벽하게 갖춰 입고 있었다. 크림슨 컬러와 오닉스 블랙이 교차하는 묵직한 실크 소재의 스트라이프 앞치마와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화이트 블라우스, 그 아래에 수작업으로 완성된 블랙 벨벳 코르셋까지. 반짝이는 버클 장식 블랙 슈즈를 신고 등장한 그녀의 품에는 작은 피크닉 바구니와 화려한 자수 장식의 스위스 아코디언 슈비처외르겔리(Schwyzerörgeli)가 들려 있었다. 수업을 위한 완벽한 세팅이었다.
마이크의 짐작대로 강사는 아니타였다. (알고 보니 아니타 부부와 마이크 부부는 매주 함께 요들을 부르는 합창단 멤버였다.) “여긴 이웃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 만큼 작은 마을이거든요.” 그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사람 수만큼 소가 살고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까요. 인구 1만1,000명에 소도 1만1,000마리라는 거죠.” 세월의 흔적이 묻은 통나무 벽면과 앤티크 워낭이 매달린 경사진 천장 아래, 우리의 요들 워밍업이 시작됐다. 아니타의 청아한 목소리를 따라 음을 맞추는 과정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그녀는 두성과 흉성을 구별하라고 우리를 독려했지만, 솔직히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제발 음 이탈만 없기를!
드디어 시범이 시작됐다. 아늑한 양털 벤치에 둘러앉아 모두 아니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녀의 낭랑한 음성이 작은 오두막을 빈틈없이 채웠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요들 특유의 꺾는 발성이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들어놓았다. 그 옛날 광활한 허공을 향해 산비탈에 홀로 서서 노래로 “나 여기 있어”라고 대담하게 외치던 이들의 뒷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옆에 있던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군.”
아니타는 우리의 눈물이 낯설지 않은 듯했다. “요들은 지극히 영적인 행위예요.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의 여러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죠.” 그녀가 클라우디아의 통역을 통해 분명한 어조로 전했다. “노래한다는 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이니까요.”
정확한 통찰이다.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풀어내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8년 전 처음으로 뉴욕에 살 때 나는 타린 투미(Taryn Toomey)의 ‘더 클래스(The Class)’에 완전히 중독돼 있었다. 소리를 도구 삼아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이 매혹적인 운동을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밀폐된 방음실 안에서 1시간 동안 미친 듯이 뛰고 소리를 지른 뒤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곧 움직이는 에너지예요. 그렇게 본다면 소리를 내는 건 몸속에 갇힌 에너지를 밖으로 흐르게 하는 명쾌한 방식이죠.” 보컬 릴리스(Vocal Release)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타린 투미는 이렇게 답했다. 과학적으로도 타당한 설명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행위는 우리 몸의 미주신경을 자극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매주 이어지는 요들 연습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묻자, 마이크는 앞선 이들과 비슷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합니다. 매일의 삶에 소소한 기쁨과 뜨거운 열정을 불어넣고요.” 그는 신체적인 변화도 불러온다고 언급했다. “호흡 조절이 한결 나아졌고 폐활량도 늘었어요. 전반적인 컨디션이 좋아졌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요들을 부를 때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도 기분 좋게 들뜨는 느낌이에요. 소리를 내는 이 단순한 행위가 제 삶에는 참으로 깊은 울림을 주거든요.”
요들은 단순히 심신 치유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문화적 자산이다. 현재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요들러는 약 1만2,000명, 합창단은 700팀이 넘는다. 요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촘촘히 스위스의 일상에 스며 있다. “20년 전만 해도 요들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었죠. 지금은 달라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요들은 어느 때보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클라우디아가 덧붙였다. “우리는 이 전통이 이어지도록 온 마음을 다해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르 그랑 벨뷰의 오너 다니엘 쾨처(Daniel Koetser)가 요들을 호텔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디즈니 같은 인위적인 연출은 사절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장인, 농부, 예술가를 투숙객과 직접 연결해주는 것이 우리 역할입니다. 진정성이 그 자체로 울림을 주죠.”
마지막 선율을 끝으로 여운이 잦아들 무렵 나는 되뇌었다. 작은 오두막에 둘러앉은 여자들이 함께 서로의 목소리를 찾아가던 1시간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는지. “요들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던 마이크의 말이 비로소 가슴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것은 노래다. 하지만 단순한 노래 이상이다. 그것은 당당하게 서서 두 팔을 내리고 대지를 굳건히 디딘 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시간과 전통 속에 뿌리내리고, 스위스인이 자신의 문화에 느끼는 거대한 자부심을 온몸으로 공유하는 일이다. 겨우 1시간의 요들 수업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마주했다. ‘나 여기 살아 있다.’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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