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조’, 현실을 비추는 아포칼립스 연극
연극 <회수조>는 태양 흑점 폭발로 은행 데이터가 모두 손상된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채무 기록으로 국민을 통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과 치솟은 물가, 아포칼립스 같은 첫인상은 곧이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바뀐다. 이전 직업은 ‘유튜버’였다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는 한국 날씨가 고국 미얀마와 닮아간다고, 혹은 군인으로서 국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른바 ‘떡밥 회수’라 불리는 탄탄한 서사적 장치가 모두 현재와 과거에 뿌리를 둔다. 현실을 꼬집는 관찰력으로 이야기를 힘차게 이끄는 TV 시리즈 <이어즈&이어즈>(2019)나 영화 <돈 룩 업>(2021)을 재미있게 감상했다면, 이 연극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연극 <회수조>의 관찰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를 통해 근현대를 끈질기게 비집고 들어가는 극을 선보여왔다.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 <패션의 신>, <깐느로 가는 길>, <타자기 치는 남자>, <세기의 사나이>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레퍼토리가 벌써 여럿이다. 이번 작품 역시 “한 편의 영화 같다”, “의미와 재미 모두 챙긴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난민과 군인, 이민자와 한국인, 채무자와 회수자로 사회의 여러 집단을 표현한 만큼 출연자가 많은 것도 이 연극의 묘미다. 20명이 넘는 연기자들의 현실적인 연기가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중심에는 국가의 명령이 곧 정의인 군인 ‘조상인’ 대위, 미얀마계 한국인으로서 공존의 미덕을 지키려는 그의 아내 ‘메이’가 있다. 이웃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지키려는 과정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더 깊어진다.
연극이 끝나고 공연장을 벗어나면 진한 숲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꿈의숲아트센터가 자리한 북서울꿈의숲은 단풍 숲과 잔디밭, 연못을 끼고 있어 앉을 곳도, 걸어 다닐 곳도 넉넉하다. 한동안 숲에 머물며 언제까지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연못의 오리 울음소리가 애틋하다. 공연은 11월 17일까지, 예매는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유재경
- 포토
- 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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