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른의 천진난만함을 입는다, 조머

2025.08.29

어른의 천진난만함을 입는다, 조머

디자이너도 경력직 시대.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 진출자 중 3개 브랜드에 물었다. 경쟁적인 패션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브랜드를 키워나간다는 것에 대하여.

Zomer 2025 S/S RTW. Deonté Lee

어깨 위에 올린 ‘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무채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때 유일하게 초록색을 입고 있었다는 점도 아니고.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 리스트가 결정되었을 때 브랜드 ‘조머(ZOMER)’가 가장 눈에 띄었던 이유는, 그들이 (적어도 내게는) ‘뉴 페이스’에 가까워서였다. 물론 알렉산더 왕, 끌로에, 버버리, 루이 비통까지 디자이너 다니얼 아이투가노프(Danial Aitouganov)의 경력을 따져보자면, 신예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인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LVMH 프라이즈에서 신선함을 충족시켜준 건 조머뿐이었다. 건축적 구조감, 장난기 넘치는 시선, 장난감에서 영감받은 듯한 컬러 활용법, 조머의 공동 대표인 임러 아샤(Imruh Asha, 아마도 다니얼 어깨에 있던 인형이 그를 형상화한 듯)가 구상한 근사한 패션쇼와 캠페인까지, 시선은 새로웠고 메시지는 확실했으며, 완성도는 뛰어났다.

조머의 디자이너, 다니얼 아이투가노프. 어깨에 있는 인형은 임러 아샤로 추정된다.

10대 시절 만난 친구, 패션계 동료이자 이제는 동업자가 된 다니얼과 임러.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건 2016년경이었지만, 경력을 쌓은 뒤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2023년이었다. 완숙함과 신선함, 절제력과 천진난만함, 경력자이지만 신예,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 두 가지 축에서 똑똑하게 시소를 즐기는 조머의 다니얼 아이투가노프를 만났다.

우선, 2025년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걸 축하한다. 조머는 현재까지 아시아에선 중국과 일본의 편집숍에만 입점돼 있는 걸로 안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브랜드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다니얼 아이투가노프(이하 DA) 조머는 유머러스한 터치에 지적인 면모가 숨겨진 브랜드다. 동업자이자 친한 친구인 임러와는 청소년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났다. 브랜드는 어릴 때부터 만들고 싶었지만, 네트워크나 자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우선 업계에서 경력을 쌓기로 결정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가 되었고, 나는 끌로에, 버버리, 루이 비통 같은 하우스에서 일했다. 그리고 2년 전 드디어 조머를 세상에 내놨다. 조머는 네덜란드어로 ‘여름’이란 뜻인데, 여름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고, 생기와 색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우리 브랜드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브랜드 창립을 생각한 건 2016년이었지만, 2023년에 조머를 론칭한 게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 생각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2025년의 다니얼이 2016년의 다니얼을 떠올렸을 때, 부러운 성향 같은 게 있을까?

DA 그때는 겁이 없었다. 정말 순수하게 용감했다. ‘모르는 게 약이다(Ignorance is Bliss)’라고 하지 않나.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의 무지함, 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입을 수 있는 옷인가?’, ‘사람들이 입고 싶어 할까?’, ‘화보에 등장한다면 어떨까?’, ‘메시지는 무엇일까?’ 등등.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었다. 그런 무모함과 용기는 조금 그립다.

조머의 임러 아샤(왼쪽)와 다니얼 아이투가노프(오른쪽). Courtesy of Zomer

끌로에, 버버리, 그리고 루이 비통까지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각 브랜드에서 배운 점을 하나씩 이야기한다면?

DA 끌로에에서는 3D 기반의 작업을 많이 배웠다. 종일 모형(Moulage)을 만들고, 드레이핑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나타샤 램지는 옷을 깊이 이해하는 디자이너였는데, 덕분에 아틀리에와 밀접하게 일하며 옷의 구조를 배울 수 있었다. 버버리에서는 리카르도 티시 밑에서 일했고, 초창기엔 하루 종일 스케치만 했던 기억이 난다. 추후에는 3D도 병행했는데,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난 뒤 많은 디자이너들이 버버리로 와서 피비가 했던 3D 접근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배운 스케치와 3D를 혼합하는 방식은 지금 조머에서 활용 중이다.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다음 루이 비통에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테크니컬 스케치’를 배웠다. 공장과의 소통이 원활했고, 모든 과정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제대로 된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시기였다.

Zomer 2024 F/W RTW. GoRunway
Zomer 2025 S/S RTW. GoRunway

남을 위해 일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해 꿈꿀 여유가 부족하지 않나. 2016년부터 브랜드 론칭을 꿈꿔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7년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힘들지 않았나?

DA 나는 늘 상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스케치를 보여줬을 때 “이건 마음에 안 들어”라고 하면, “왜요?”라고 묻곤 했으니까. 남을 위해 디자인할 때는 상대의 취향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지겹게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래도 브랜드가 원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좋은 디자이너의 자질이니까. 임러도 마찬가지다(임러는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매거진의 패션 디렉터였다). 포토그래퍼와 훌륭한 이미지를 만들어냈을 때도, 브랜드로부터 ‘가방이 잘 안 보인다’는 불만을 들었다. 브랜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가 너무 멋진 경우라면? 임러도 일련의 일을 겪으며 ‘내 브랜드에서만 원하는 걸 전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완벽히 자유롭다!

하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할 때는 모든 게 내 몫이 되지 않나. 열정과 창의성을 쏟아야 하는 대상이 유명 브랜드가 아닌 나 자신이 됐을 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DA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된다는 건 때론 고통스럽다. 그것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고. 나의 경우 디자인은 업무의 30~4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물류, 생산, 경영, 재무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일과 완전히 단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파티에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패션과 전혀 관계없는 걸 하는 거다. 최근에는 승마를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모든 신경을 몸과 말에만 집중해야 하니까! 리셋할 계기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2024 F/W 컬렉션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도전적이고 규범에서 자유로웠다고 해야 할까? 특히 컷아웃 드레스가 기억에 남는다. 조머만의 완벽한 창작물처럼 보였다.

DA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컬렉션이다. 당시 루이 비통 소속이었기 때문에, 컬렉션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모든 걸 직관에 의존해, 빠르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컬렉션 전에는 겁도 났지만, 반응이 좋아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Zomer 2024 F/W RTW. GoRunway
Zomer 2024 F/W RTW. GoRunway
Getty Images
Getty Images

컬렉션을 보며 건축가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가 떠올랐다. 실제로 폰타나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평소 관심 있는 주제를 발굴하는 방법도 궁금하다.

DA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순수예술가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어릴 때부터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예술을 사랑했다. 지금도 3D 기법을 활용해 옷을 조각하곤 한다. 폰타나를 떠올리면, 캔버스 위 간단한 ‘제스처’가 그토록 강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받은 충격이 생생히 떠오른다. 금색을 쓴 작품에서 컬러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하고, 폰타나는 늘 우리 무드 보드에 숨 쉬고 있다. 이브 클랭(Yves Klein) 역시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2015년쯤 처음 알게 된 뒤 ‘언젠가는 이브 클랭에 대한 컬렉션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린느가 이브의 그림이 그려진 드레스를 선보였다. 나보다 먼저 하다니!

2025 F/W 컬렉션 이야기를 해보자. 컬렉션을 구상할 때 늘 어린아이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지난번 컬렉션은 조금 달랐다.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고 중요한 것이 부재해도 사람들은 모른다는 메시지가 읽혔다.

DA 시작점은 역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세상과 개인적인 문제를 고쳐나가는 상상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임러가 “모든 걸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재킷 위아래를 뒤집었지만, 점점 복잡해졌다. 컬렉션이 완성될수록, 이 테마가 시의적절하다고 느껴졌다. 지금의 세상 역시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덕분에 시대정신(Zeitgeist)을 담은 컬렉션이 완성된 것 같다.

Zomer 2025 F/W RTW. Courtesy of Zomer
Zomer 2025 F/W RTW. GoRunway
Zomer 2025 F/W RTW. Courtesy of Zomer
Zomer 2025 F/W RTW. Courtesy of Zomer

앞선 질문에서 ‘착용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한국에 밸런스 게임이란 게 있는데, 둘 중 단 한 가지만 택해야 한다. ‘입기에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과 ‘웨어러블한 옷을 만드는 것’ 중 무얼 선택할 건가?

DA 재밌는 질문이다. 조머를 입은 사람을 볼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낀다. “정말 멋있는 쇼였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그래도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이 옷 정말 사고 싶어요” 혹은 “입어보고 싶어요”라는 코멘트다. 임러는 아마 나와 반대일 것이다. 그의 답은 “정말 기발한 쇼였어요!”일 것이다. 그래서 조머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도 궁금하다. 몬드리안을 연상시키는 배색을 보며 이브 생 로랑을 떠올리기도 했고, 몇몇 사람들은 조머를 마르지엘라에 비교하기도 한다.

DA 마르지엘라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몰랐다. 로에베를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조나단처럼 우리도 장난스러운 방식으로 패션을 바라보고, 컬러풀한 옷을 선보이니까. 조나단은 무척 뛰어난 디자이너지만, 직접적인 영감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제2의 로에베’처럼 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 좋아하는 건 레이 가와쿠보와 피비 파일로. 피비 파일로는 갖고 싶은 옷을 만들고, 레이 가와쿠보는 깊은 인상을 주는 옷을 만든다. 양극단에 있는 둘을 꼽고 싶다.

2025 S/S RTW. Getty Images
2025 S/S RTW. Getty Images
2025 S/S RTW. Getty Images

어린아이 같은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는데, 어떤 아이였는지도 궁금하다.

DA 한마디로 고집스럽고 시끄러운 아이였다. 지금은 침착해 보이지만.(웃음) 공부 외의 방식으로 친구와 선생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해서 부모님이 자주 학교로 불려 오셨다. 옷에 까다롭기도 했다. 어머니가 주는 옷은 입기 싫어하고, 입고 싶은 옷을 고집하는 식으로 말이다. 임러는 기억하는 한 굉장히 착한 친구였다. 물론 그 또한 어렸을 때는 말썽쟁이였다고 들었다.

컬렉션부터 캠페인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실로 꿰어져 있는 느낌도 받는다. 올해 초 발간된 <Travel to the Sun>도 그랬다. 모델 대부분이 꽃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고, 꽃은 늘 태양을 바라보니, 이 모든 게 의도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계획하는 편인가?

DA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하다 보면, 모든 게 맞아떨어지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캠페인을 보며 이런저런 감상평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방금 들은 이야기만 해도, 완전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2025 LVMH 프라이즈 우승자는 누가 될 것 같은가? 작년에 듀란 랜팅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호다코바가 우승할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실제로 그랬고! 듀란은 장 폴 고티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달라.

DA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다른 후보 브랜드들의 세계에 빠져들 시간이 없었다. 무례하기도 싫고, 허세를 부리기도 싫지만 말이다. 알랭폴과 토리셰주, 올인은 익숙하지만, 다른 브랜드들에 대한 정보는 아직 많이 없다. 질문에 답하자면,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세 브랜드 중 하나가 우승할 것 같다.

조머를 어떤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가?

DA 조머는 나만의 브랜드가 아니다. 조머가 브랜드로서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모든 이들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들이 더해주는 가치만큼의 월급을 주고 싶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직원들 월급도 잘 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아티스트들을 후원하거나, 갤러리를 신설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 어쩌면 가구를 만들 수도 있고! 라이프스타일 쪽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도 재밌겠다.

2025 LVMH 프라이즈

포토
Deonté Lee, Instagram, GoRunway,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섬네일 디자인
한다혜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