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땅으로 내려왔고, 나비는 정원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아갑니다. 밀라노의 4일 차는 우리에게 혹독한 현실에도 나아가는 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한 베르사체는 1980년대 후반 브랜드의 전성기, 즐거웠던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갔고요. 블루마린의 정원에는 나비 말고도 다양한 곤충이 살고 있음을 데이비드 코마가 보여주려 애썼죠. 그리고 두 브랜드 모두 사랑을 말합니다. 즐거움도 두려움도 전부 그 사랑에서 온다고 말이죠. 4일 차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사랑의 징표를 찾아보세요.

베르사체(@versace)

“신화는 신과 여신들이 자기들끼리 연애하는 것에 싫증을 느껴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인간과 함께 걸으면서 시작됐습니다.“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에 바닥 청소용 드레스가 한 벌도 없었던 이유죠. 베르사체 가문 출신이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든 첫 베르사체는 현실적이었으며, 1980년대 지아니 베르사체 시절의 디스코 무드를 연상시켰습니다. 코발트 블루, 오렌지 레드, 하늘색에 에메랄드 그린을 조합하는 컬러 감각과 베르사체의 시그니처인 프린트를 재해석한 모습이 그랬죠. 하지만 이날 우리를 압도한 건 비탈레의 실루엣이었습니다. 하이 웨이스트 청바지는 바짝 당겨 입었고, 가끔 벨트가 풀려 있었으며, 지퍼가 열린 채 런웨이를 걸어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옆구리가 깊이 파인 톱은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고, 캐시미어 카디건은 엉덩이에 묶어 연출했죠. 그건 처음 만나는 신선한 베르사체였습니다. 그것이 베르사체인지는 다음 시즌까지 지켜봐야겠지만요. 일단 그는 자신을 ‘방문자’로 설정했고, 이번 쇼를 ‘각성’이라 칭했습니다.

Versace 2026 S/S R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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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린(@blumarine)

블루마린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데이비드 코마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여름으로 데려왔습니다. “으스스하면서도 매혹적인 이탈리아의 여름에 펼쳐지는 어두운 동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라며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자, 연약함과 그 연약함 속에서 힘을 찾는 이야기입니다”라는 말로 컬렉션을 소개했죠.

이제 블루마린의 상징인 나비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소설 주인공처럼 자신의 정원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옵니다. 매혹적인 팜므 파탈로서요. 연약한 나비는 광활한 세상에서 사랑을 찾아 나아갑니다. 섬세하게 짜인 레이스, 넘실대는 러플, 하늘하늘한 시스루 소재가 블루마린의 여성적 유산을 기린다면, 강렬한 애니멀 패턴과 볼드한 주얼리는 여전히 이곳이 고딕 세계임을 어필하죠. 데이비드의 지휘 아래 블루마린은 소녀적인 외피를 벗어던지고 더 어둡고 위험한 빛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드라큘라 딸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면면은 섹시하고 강렬했죠. 나약한 나비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가 넘실거렸고, 수정이 박힌 거미들은 굽 높은 샌들 위에 올라탔습니다. 살아남은 몇몇 나비는 누드 시폰 위에 3D 자수로 박제됐고요. 한때 투명했던 잠자리 날개는 갑옷과 같은 은빛으로 빛났습니다. 데이비드 코마의 정원은 확실히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Blumarine 2026 S/S R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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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S MILANO FASHION W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