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우리 모두의 펜디_보그 런웨이
‘우리’가 공명하는 법.


“나보다 우리(Less I, More Us).” 런웨이 바닥에 스텐실 기법으로 프린트된 이 문구는 일부 백의 스트랩에도 등장했다. 이날 오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가 펜디(Fendi) CCO로 선보인 첫 쇼는 유대감과 다원주의, 협업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키우리의 지휘 아래 이뤄진 작업이었다. 쇼 직전에 그녀는 실루엣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피날레 인사를 할 때쯤엔 그녀가 룩의 윤곽만큼 펜디라는 하우스를 재정의하는 데 몰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키우리의 복원 작업에서 가장 대담한 시도는 모피를 강조하는 방식을 재설계한 것이었다. 펜디의 핵심 기술은 모피지만, 여러 시장에서 반대에 부딪치며 최근 몇 년 동안 소외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에서는 옷단이나 칼라, 스터드 장식, 애니멀 패턴 베스트의 프린지, 트렌치 코트 안감, 손으로 자른 꽃 모양을 레이스처럼 이어 붙인 블랙 가죽 롱 코트 등에서 모피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장 화려하고 풍성한 모피를 입은 모델은 전부 남자였다. 21번 룩의 빈티지풍 여우 모피, 긴 털을 초록색으로 염색한 51번 룩의 블레이저 재킷, 각기 다른 털을 패치워크한 38번 룩의 복슬복슬한 재킷 등. 여자 모델이 입은 재킷 중에는 모피 조각을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이어 붙인 것도 있었다. 이 룩은 키우리의 새로운 프로젝트 ‘에코 오브 러브(Echo of Love)’를 드러냈다. 에코 오브 러브는 고객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피를 펜디 아틀리에와 협업해 리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모피라는 소재에 개인적인 의미를 담는 ‘감정적 내구성’ 개념까지 아우른다. “제 옷 중에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몇 벌 있어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삶의 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옷과 갖는 유대감은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 키우리가 말했다. 최근 모피가 부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빈티지 모피는 뉴욕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는 펜디가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컬렉션에서 키우리의 개인적인 디테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탈착 가능한 칼라였다. 화이트 코튼, 블랙 레더, 블랙 모피 등 다양한 소재의 칼라는 칼 라거펠트의 아이코닉한 힐디치앤키(Hilditch&Key) 맞춤 셔츠를 연상케 했다. 이는 오마주인 동시에 하나의 선언처럼 보였는데, 남성복과 여성복이 공존하는 쇼에서 여자 모델만 칼라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이자 궁수인 사그 나폴리(SAGG Napoli)와의 협업도 일종의 헌사였다. 아티스트는 모피 축구 스카프와 티셔츠로 자신의 ‘이탈리아 남부 미학’을 표현했으며, 이는 키우리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함께 일한 펜디 다섯 자매와의 강한 연대감을 선언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뿌리내리고 있지만 갇히지 않은(Rooted but Not Stuck)” “화산 같지만 파괴적이지 않은(Volcanic but Not Destructive)”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협업은 미렐라 벤티볼리오(Mirella Bentivoglio)의 유산을 활용한 것으로, 언어에 담긴 많은 성 불평등을 탐구하기 위해 벤티볼리오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디자인의 펜디 주얼리와 (티셔츠) 그래픽을 재발매했다.

벤티볼리오의 냉소적이고 체제 전복적인 자의식, 주체와 객체를 뒤바꾸는 작업 방식은 키우리가 가장 화려한 아이템을 남자 모델에게 입힌 것과 이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벤티볼리오식 방점 찍기를 실험하는 동시에 공유된 문법을 수립하는 작업에도 집중했다. 더블 브레스트 노치트 칼라 재킷, 스트랩으로 여미는 싱글 브레스트 재킷, 더블 데님 룩, 동키 재킷 스타일 코트 등 공유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입은 남녀 모델이 거듭해서 런웨이에 등장했다.
남녀가 공유하는 아이템에 대한 펜디 하우스의 접근 방식은 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우리는 처음 펜디에서 일할 때 액세서리 팀 일원으로 바게트 백 개발에 참여했으며, 셀러리아(Selleria, 안장 제작에서 유래한 가죽 장인 기술)는 펜디의 두 번째 핵심 기술이다. 그녀는 바게트 백을 처음 만들 때 지향한 철학을 되살리고자 하우스의 전문적인 장인 기술로 비즈나 모피 자수 장식을 적용했다. 그 디자인은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새로운 세컨드 스트랩에 추가됐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키우리가 스케치한 주요 실루엣 중에는 X 형태를 그리는 것도 있었다. 깊이 파인 브이넥의 연장선에서 좁아지는 실루엣의 스커트나 재킷의 펄럭이는 단으로 이어지는 선이었다. 발렌티노와 디올에서 그녀의 여정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이번 컬렉션에서 알아챌 수 있는 그녀의 시그니처 중 하나였다. 나보다 우리를 지향하지만 매우 그녀다운 컬렉션이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파올라, 안나, 실비아, 가족들, 그리고 여기서 오랫동안 일해왔고 제가 어릴 때부터 기억하는 이들 모두요.” 키우리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면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죠.”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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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 신은지
- 글
- LUKE LEITCH
- 사진
- COURTESY OF FENDI
- SPONSORED BY
-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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