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다 비우고, 단 한 벌만 남겨야 한다면 이 원피스예요
블랙 드레스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역시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옳았습니다.

얼마 전 <러브 스토리> 다섯 편을 보고 난 후 캐롤린 베셋 케네디 식의 미니멀리즘으로 옷장을 완전히 갈아엎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진부하다고요? 네, 맞아요. 그런데 캘빈 클라인을 입은 두 사람이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밀당을 거듭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파리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이 아무리 요란하게 굴러가도 아무 상관이 없어지더군요.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요. 쇼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입어도 되는 드레스(정확히 말하면 너무나 섹시해서 오히려 아무 고민이 필요 없는 옷)’와 ‘있는 힘껏 모든 걸 다 쏟아부은 룩’ 사이에서 갑론을박하는 동안 저는 사라 피전이 입은 블랙 드레스 한 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죠.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는 제 결심을 확고하게 해줬습니다. 그의 샤넬 컬렉션 마지막 룩은 코코가 한때 혁명처럼 내놓은 리틀 블랙 드레스에 바치는 헌사였어요. 앞에서 보면 캐롤린이 출근 후 바로 저녁 약속으로 이어지는 하루에 아무렇지 않게 걸쳤을 것 같은, 매우 유연한 미디 드레스를 닮았죠. 그런데 뒤를 돌면! 양쪽 날개뼈 사이에 매혹적인 카멜리아 한 송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완벽했죠. 블라지가 말한 샤넬의 역설이 그 한 벌에 모두 담겨 있었어요. “샤넬은 기능이고, 픽션이에요. 샤넬은 합리적이고, 관능적입니다. 샤넬은 낮이고, 또 밤이죠.”

Chanel 2026 F/W RTW. GoRunway

Chanel 2026 F/W RTW. GoRunway

블랙의 힘에 대한 사유는 2026 가을/겨울 컬렉션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런던 패션 위크의 소란함을 피해 세이디 콜스 건물에서 별도로 진행된 두로 올로우의 쇼장. 빈티지 보이스카우트 의자에 앉은 그는 블랙의 아름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죠. 볼펜 잉크처럼 단순한 블랙이 아니라, “어떤 색조를 품은 블랙, 어떤 텍스처를 지닌 블랙”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에요. 두로는 그 생각을 손으로 엠보싱한 야자수 잎 문양의 블랙 브로케이드 실크 드레스로 구현했습니다. 광택 있는 가죽처럼 보이는 효과는 대단했고요. “블랙을 아주 감성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어요.” 그는 엄격한 색을 탈형식화하는 것, 옷을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집중했죠.
레이 가와쿠보는 이번 시즌 꼼 데 가르송 컬렉션의 제목을 아예 ‘궁극의 블랙’이라 명명했어요. “결국 블랙이 나를 위한 색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장 강하고, 창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며, 반항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색이죠. 우주와 블랙홀이라는 큰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고요.” 블랙 드레스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매 시즌 이 신념을 지켜온 꼼 데 가르송 마니아를 떠올려보면 됩니다. 생각해보면 준야 와타나베도 블랙의 무한한 신비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블랙은 겸손한 동시에 오만해요. 블랙은 게으르고 쉽죠. 그리고 무엇보다 블랙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신경 쓰지 않으니, 당신도 나를 신경 쓰지 말라고요.”

Duro Olowu 2026 F/W RTW. GoRunway

Comme des Garçons 2026 F/W RTW. Getty Images
<보그> 런웨이 홈페이지를 스크롤해보면 블랙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룩의 수는 압도적입니다. 셀린느, 생 로랑, 돌체 앤 가바나, 발망, 발렌시아가 등 F/W 시즌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숫자죠. 지방시, 장 폴 고티에, 더 로우는 블랙 수트와 셔츠에 새하얀 화이트를 날카롭게 끼워 넣었는데요. 패션 비평가 사라 무어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의 자신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방식입니다. 마이클 라이더는 셀린느에서 ‘날이 선 클래식’을 말했고,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에서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캔버스’를 이야기했어요. 2026년, 나만의 시그니처를 하나 정해야 한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저는 이미 정했습니다. 캐롤린 베셋 케네디 무드의 블랙 드레스예요. 다른 색은 고려할 필요가 없죠.

토템플루이드 슬립 미디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휘슬블랙 저지 크레이프 어시메트릭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리사 양알비나 V넥 맥시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리포메이션아베릴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토템스트랩리스 플랩 포켓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케이트딕시 스퀘어 넥 미디 드레스
구매하러 가기
관련기사
-
패션 아이템
우리는 왜 아직도 케네디의 그녀, 캐롤린을 ‘입고’ 싶은 걸까요?
2026.03.04by 소피아
-
패션 뉴스
1990년대 미니멀 패션의 아이콘, 캐롤린 베셋 케네디
2023.11.22by 황혜원, Sunita Kumar Nair
-
셀러브리티 스타일
내가 입으면 밋밋, 남이 입으면 세련된 미니멀 룩의 비밀
2026.02.04by 황혜원, Alexandre Marain
-
뷰티 아이템
캐롤린 베셋 케네디가 사랑한 시그니처 향에 대하여
2026.02.26by 오기쁨
-
엔터테인먼트
캐롤린 베셋 케네디로 완벽 변신한 사라 피전
2025.06.17by 오기쁨
최신기사
추천기사
-
패션 뉴스
'성별이나 계절을 허무는 디자인', 존 갈리아노 자라로 패션계 복귀
2026.03.18by 황혜원, Nicole Phelps
-
뷰 포인트
사실 뒷담화는 아주 건강한 행동입니다
2026.02.13by 박수진, Gary Grimes
-
워치&주얼리
스와로브스키,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한 두 번째 캡슐 컬렉션 공개
2026.03.18by 최보경
-
패션 아이템
청바지가 점점 좁아지는 요즘,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까요?
2026.03.19by 하솔휘, Renata Joffre
-
엔터테인먼트
영화와 드라마가 된 소설 7편
2026.02.28by 강병진
-
패션 아이템
청바지도 하렘 팬츠도 시들, 2026년 새 주인공이 될 팬츠!
2026.03.14by 황혜원, Tatiana Ojea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