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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을 다 비우고, 단 한 벌만 남겨야 한다면 이 원피스예요

2026.03.19

옷장을 다 비우고, 단 한 벌만 남겨야 한다면 이 원피스예요

블랙 드레스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역시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옳았습니다.

FX ‘러브 스토리: 존 F. 케네디 주니어 & 캐롤린 베셋’ 스틸 컷. Copyright 2026, FX. All rights reserved

얼마 전 <러브 스토리> 다섯 편을 보고 난 후 캐롤린 베셋 케네디 식의 미니멀리즘으로 옷장을 완전히 갈아엎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진부하다고요? 네, 맞아요. 그런데 캘빈 클라인을 입은 두 사람이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밀당을 거듭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파리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이 아무리 요란하게 굴러가도 아무 상관이 없어지더군요.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요. 쇼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생각 없이 입어도 되는 드레스(정확히 말하면 너무나 섹시해서 오히려 아무 고민이 필요 없는 옷)’와 ‘있는 힘껏 모든 걸 다 쏟아부은 룩’ 사이에서 갑론을박하는 동안 저는 사라 피전이 입은 블랙 드레스 한 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죠.

FX ‘러브 스토리: 존 F. 케네디 주니어 & 캐롤린 베셋’ 스틸 컷. Copyright 2026, FX. All rights reserved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는 제 결심을 확고하게 해줬습니다. 그의 샤넬 컬렉션 마지막 룩은 코코가 한때 혁명처럼 내놓은 리틀 블랙 드레스에 바치는 헌사였어요. 앞에서 보면 캐롤린이 출근 후 바로 저녁 약속으로 이어지는 하루에 아무렇지 않게 걸쳤을 것 같은, 매우 유연한 미디 드레스를 닮았죠. 그런데 뒤를 돌면! 양쪽 날개뼈 사이에 매혹적인 카멜리아 한 송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완벽했죠. 블라지가 말한 샤넬의 역설이 그 한 벌에 모두 담겨 있었어요. “샤넬은 기능이고, 픽션이에요. 샤넬은 합리적이고, 관능적입니다. 샤넬은 낮이고, 또 밤이죠.”

Chanel 2026 F/W RTW. GoRunway

Chanel 2026 F/W RTW. GoRunway

FX ‘러브 스토리: 존 F. 케네디 주니어 & 캐롤린 베셋’ 스틸 컷. Copyright 2026, FX. All rights reserved

블랙의 힘에 대한 사유는 2026 가을/겨울 컬렉션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런던 패션 위크의 소란함을 피해 세이디 콜스 건물에서 별도로 진행된 두로 올로우의 쇼장. 빈티지 보이스카우트 의자에 앉은 그는 블랙의 아름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죠. 볼펜 잉크처럼 단순한 블랙이 아니라, “어떤 색조를 품은 블랙, 어떤 텍스처를 지닌 블랙”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에요. 두로는 그 생각을 손으로 엠보싱한 야자수 잎 문양의 블랙 브로케이드 실크 드레스로 구현했습니다. 광택 있는 가죽처럼 보이는 효과는 대단했고요. “블랙을 아주 감성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어요.” 그는 엄격한 색을 탈형식화하는 것, 옷을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집중했죠.

레이 가와쿠보는 이번 시즌 꼼 데 가르송 컬렉션의 제목을 아예 ‘궁극의 블랙’이라 명명했어요. “결국 블랙이 나를 위한 색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장 강하고, 창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며, 반항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색이죠. 우주와 블랙홀이라는 큰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고요.” 블랙 드레스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매 시즌 이 신념을 지켜온 꼼 데 가르송 마니아를 떠올려보면 됩니다. 생각해보면 준야 와타나베도 블랙의 무한한 신비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블랙은 겸손한 동시에 오만해요. 블랙은 게으르고 쉽죠. 그리고 무엇보다 블랙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신경 쓰지 않으니, 당신도 나를 신경 쓰지 말라고요.”

Duro Olowu 2026 F/W RTW. GoRunway

Comme des Garçons 2026 F/W RTW. Getty Images

<보그> 런웨이 홈페이지를 스크롤해보면 블랙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룩의 수는 압도적입니다. 셀린느, 생 로랑, 돌체 앤 가바나, 발망, 발렌시아가 등 F/W 시즌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숫자죠. 지방시, 장 폴 고티에, 더 로우는 블랙 수트와 셔츠에 새하얀 화이트를 날카롭게 끼워 넣었는데요. 패션 비평가 사라 무어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의 자신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방식입니다. 마이클 라이더는 셀린느에서 ‘날이 선 클래식’을 말했고,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에서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캔버스’를 이야기했어요. 2026년, 나만의 시그니처를 하나 정해야 한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저는 이미 정했습니다. 캐롤린 베셋 케네디 무드의 블랙 드레스예요. 다른 색은 고려할 필요가 없죠.

소피아

소피아

프리랜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입니다. 패션 매거진 <더블유>, <하퍼스 바자>, <엘르>에서 근무했으며, 패션 하우스 홍보 담당과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17년 이상 패션 기사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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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Newbold
사진
FX, Getty Images, GoRunway, Courtesy Photos
출처
www.vogu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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