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듯 그리고, 연기하듯 노래하고, 그리듯 연기하는 ‘백현진’
최고의 멀티플레이어 예술가를 꼽으라면, 저에게 1순위는 바로 백현진입니다. 10여 년 전, 광주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에서 그가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광주 시내 한가운데, 찻길에 설치된 예술 구조물 위에 서서 걸걸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군요. 한 번도 자신을 전방위 프로젝트라 부른 적 없다는 백현진이야말로 예술의 경계를 종횡무진해온 거의 유일무이한 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자는 시인 백현진(솔직함이 폐부를 찌르죠)이, 누군가는 배우 백현진(지질한 악역은 그가 최고일 겁니다)이, 또 누군가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1세대 인디 밴드의 저력을 따라갈 자는 없지요)이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직업을 훌륭히 완수하더라도,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처음부터 미술가였습니다. ‘노래하듯 그림을 그리고, 연기하듯 노래하고, 그림 그리듯 연기하는’ 예술가입니다.

지난 2016년 <보그 코리아>에 실린 백현진 인터뷰를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이런 답변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우중충한 도시 색깔이 견디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왜 서울은 빨간색도 빨간색이 아니고 파란색도 파란색이 아닐까. 그러다 언젠가부터 서울 색깔이 예뻐 보이는 거다. 우중충한 것도 괜찮고, 아닌 것도 괜찮고. (중략) 내가 바뀐 거다. 지금은 색깔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색깔도 사람들이 정한 거지, 자연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림 작업할 때 컬러를 막 쓰는 거다.” 백현진의 음악과 미술 작품에는 서울이 자리해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서울에 터전을 두고 살아온 이 예술가는 이런 감정과 감성을 PKM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서울 신택스(Seoul Syntax)>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백현진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몇 년 전부터 작업이라는 흔적으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시가 이렇듯 그림 그리는 행위, 그리고 당시 그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옮겨놓은 결과물인 셈인데요. 전시는 특히 백현진이 지난해에 발매한 정규 앨범 <서울식>과 그 궤를 같이합니다. 앨범이 서울을 ‘들리는 것’으로 녹음했다면, 전시작은 ‘보이는 것’으로 기록한 것이죠. 게다가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 작업을 두고 “마음이 어려웠던 시기에 그려낸 것”이라 고백했는데요. 나름의 무거운 시간을 통과한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서울이라는 모티브는 오히려 그의 삶과 예술의 기본 조건에 가깝지 않을까 싶더군요.

‘난제’, 2025, Oil on paper, 213×150cm.

‘갈팡질팡’, 2025, Oil and spray enamel on paper, 213×150cm.
이번에 만난 그림은 지난 2021년 개인전 때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화려한 색감과 거침없는 붓질로 꽉 차 역동적이던 화면이 이번에는 한결 단순하게 비어 있습니다. 밀도가 낮아졌고, 색감이 맑아졌으며, 정적인 와중에도 잔잔한 에너지가 담겼습니다. ‘난제’, ‘갈팡질팡’, ‘출발’ 같은 일상적인 제목의 회화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보다는 감각과 느낌을 조심스럽게 꺼낸다는 느낌인데요. 이와 함께 <빛23>이라는 단편영화도 볼 수 있습니다. 배우 한예리, 홍경표 촬영감독과 협업해 저물 무렵 서울 근교에서 원 테이크로 촬영한 영상이더군요. 날씨 변화와 그보다 더 미묘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시적으로 교차합니다.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 사는 누군가의, 어쩌면 나의 모습이 백현진의 시선으로, 시간의 서사로 펼쳐집니다. 모두를 향한 담담한 고백이 들리는 듯한 전시장에 머물다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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