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옷 잘 입는 사람들은 쇼핑보다 ‘이것’에 집착합니다
미우미우 런웨이에 설 일도 없고, 자미로콰이 보컬과 데이트할 일도 없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고민합니다. 세수할 때 쓰던 머리띠를 블레이저 룩에 더하거나, 패딩에 샌들을 신어보죠.


패션은 사람을 들뜨게 해야 합니다. 정확히 뭘 갖고 싶게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패션 위크를 보고 나선 일단 뭐라도 해보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죠. 이제 니삭스를 샌들과 매치해도 쿨해 보이고, 반지는 열 손가락에 다 끼워도 과해 보이지 않습니다. 엄지에 묵직한 시그넷 링을 끼는 것도 클래식이 됐죠. 니트를 스카프처럼 무심하게 묶고 셔츠를 세 겹 덧입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런웨이는 늘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을 새롭게 만들죠.

@lottavolkova

@lottavolkova
이제 스타일링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창작의 영역에 진입했습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유명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를 소개하는 릴스에 이런 댓글이 달렸더군요. “런웨이에 디자이너가 있는데 스타일리스트가 대체 뭘 하는 거야?” 패션계는 이렇게 답합니다. 스타일리스트는 예쁜 옷을 골라 입혀주는 보조자가 아니라,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는 ‘큐레이터’에 가깝다고요. 디자이너와 함께 ‘옷’이라는 물질을 다시 읽고, 비틀고, 엇갈리게 놓는 미학적 재배치를 하는 거죠.
이번 시즌 발렌티노는 인조 모피 코트를 맨살 위에 입고, 레더 벨트로 허리를 느슨하게 묶었습니다. 모델은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어슬렁거리는 듯한 여유를 풍겼고요. 완벽하게 차려입은 옷보다, 방금 자다 일어난 듯 나른한 몸짓이 그만의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런웨이 곳곳에서 고정관념을 비껴가는 낯선 시도가 이어졌죠. 발렌시아가는 오페라 글러브를 블랙 레더로 만들어 전통적인 우아함과 현대적인 긴장감을 충돌시킵니다. 지방시는 티셔츠를 터번처럼 머리에 둘러 중세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룩을 연출했죠. 로에베는 스카프로 온몸을 감싸고, 스텔라 맥카트니는 스카프를 드레스 자락처럼 길게 늘어뜨렸고요. 이제 무엇 하나 제자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Loewe 2026 F/W RTW

Stella McCartney 2026 F/W RTW
1950년대에 투피스가 등장하면서 디자이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해준 대로 입던 시대가 끝났습니다. 칼 라거펠트와 미우치아 프라다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스타일을 과감하게 섞는 ‘패러독스 드레싱’을 패션의 절대 원칙으로 세웠죠.
마티유 블라지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그런지한 체크 셔츠 위에 섬세한 꽃 자수를 놓거나 반듯한 트위드 수트에 차가운 메탈 메시를 더해 낯선 감각을 깨웁니다. 이렇게 아이템은 서로 만나는 순간 의미가 달라집니다. 슬립 드레스도 파자마 팬츠와 입느냐, 아찔한 펌프스와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완성하니까요.

세컨드핸드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온갖 시대의 옷들이 카테고리 없이 쏟아져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죠. 그렇게 계획 없이 산 아이템이 의외로 내가 가진 옷들과 어울릴 때, 옷 입는 재미가 시작됩니다. 정신분석가 실비아 리피(Silvia Lippi)는 저서 <욕망의 결정(The Decision of Desire)>에서 욕망을 ‘무의미함의 경험’이라 말했습니다. 이 무의미함은 마찰과 불협화음, 이전에 없던 리듬 속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요. 스타일도 같습니다. 끝없이 다시 조합할 수 있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인스타그램이 정해준 ‘OO 코어’ 같은 판박이 공식이 꼴 보기 싫어졌다면, 이제 직접 나설 차례입니다. 스스로 마음껏 멋 내보세요. 슬립 드레스에 털모자를 쓰고 승마 부츠를 신어도 됩니다. 남들이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뻔한 차림 말고, 누구에게도 쉽게 해독되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로 한발 나아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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