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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들이 고른 책, 5월의 ‘보그 서점’

2026.04.29

에디터들이 고른 책, 5월의 ‘보그 서점’

5월의 ‘보그 서점’. 이윽고 검지를 책 사이에 담근 시간.

이승우 <사랑의 생애> 위즈덤하우스, 2017

우리는 사랑의 숙주.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받아들이지. 이 소설은 사람을 덮치는 균처럼 사랑을 묘사한다. 맞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한 적 있나. 언제나 당했지. 김나랑 피처 디렉터

마리-헐린 버티노 <외계인 자서전> 은행나무, 2025

여섯 살,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 10년마다 나란 인간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 거란 망상이었다. 열 살이 되면 엄마와 헤어져야 할 거란 착각, 정확히는 나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엄마의 사랑을 받는 아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설정도 곁들여서. 모두가 그렇게 외계인이었던 순간. <외계인 자서전>은 지구에서 태어난 외계인 아디나 조르노가 멸망 위기에 처한 고향 별에 지구인 관찰 일기를 보내는 내용이다. 평론가 이동진은 말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진짜 외계인일까?” 불혹을 맞이하며 인생을 되짚고 곱씹고 짓이기는 요즘. 삶의 후반부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답을 줄 거라 믿으며 골랐다. 황혜원 웹 에디터

조앤 디디온 <상실> 책읽는수요일, 2023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조앤 디디온이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쓴 에세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인이 선물해준 책.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쉽사리 펼쳐보지 못한 채 책장 한쪽에 놓여 있었는데, 만물의 생기가 돋는 봄이 오니 아이러니하게 이 책이 눈에 밟힌다. 만개한 벚꽃 아래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이 책을 완독하리라 다짐한다. 작가가 언급한 ‘혹독하고 달콤한 지혜’가 내게도 필요하니까. 가남희 디지털 에디터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한길사, 2016

두아 리파가 자신의 북클럽 ‘서비스95’를 통해 극찬한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했듯 두 소녀의 평생에 걸친 우정과 연대를 다룬다. 분량은 상당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 겪었을 미묘한 감정, 이를테면 서로를 질투하면서도 동경하고, 때로는 각자의 성장을 돕는 동반자이자 평생의 경쟁자로서 복잡한 애증 관계를 이어가는 전개가 흥미롭다(우리 땐 ‘선희 진희’가 있었기에!).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보그> 5월호가 나올 무렵 책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절친 손에 들려 있겠지. “굳이 나눠보자면 우린 릴라와 레누 중 어느 쪽일까?”라는 질문은 네가 아니면 내가? 이주현 뷰티 디렉터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현대문학, 2004

내면도 거울처럼 보는 둥 마는 둥 눈곱 정도 떼고 싶다. 당분간 미셸 투르니에를 따라 바깥을 살피기로 한다. 하솔휘 웹 에디터

PIER VITTORIO TONDELLI <SEPARATE ROOMS> ZANDO, 2025

책을 사는 것만큼 즐거운 쇼핑은 없다. 그래서 매년 새해의 숙제는 지난해에 산 책을 모두 다 읽는 것이 되곤 한다. 이 책도 지난봄의 발견이다. 1989년 이탈리아에서 세상에 나온 책은 2025년이 되어서야 영문판으로 번역되었다. 독일 출신 청년의 유럽 여행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에서는 조시 오코너가 주인공이 된다. 영화 개봉 전까지는 끝내야 할 일이다. 손기호 패션 에디터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2005

“꿈꾸는 사람이 되자! 2012년 어느 봄, 동우.” 스무 살, 학보사 선배에게 선물 받은 책을 오랜만에 꺼냈다. 어느새 바랜 종이가 시간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꿈꾸는 사람이 되었을까. 2026년 봄, 다시 책장을 넘겨본다. 장소라 비디오 에디터

장 그르니에 <섬> 민음사, 2005

5월이면 습관처럼 이 책을 읽는다. 창밖은 막 돋아난 생명으로 활기찬데, 정작 나는 생의 감각이 무뎌진 채 하루를 버텨내는 계절.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뜨거운 볕 아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반드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을 읽어야 한다. 신은지 패션 에디터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 2011

요즘 시작과 끝이 유난히 자주 교차한다. 뭔가를 새롭게 열어젖히는 동시에, 익숙한 것들과 조용히 작별하는 시간. 욕심 없이 흘러가던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나은 방향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나는 자주 흔들린다. 서른셋의 불안은 예전과는 결이 다르다. 더 이상 단순히 밀어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다음으로 밀어 올리는 동력에 가깝다. 물론 그 불안이 때로는 모든 것을 어지럽히고, 예기치 못한 균열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방향의 감각이 움튼다. <불안>은 그 감정을 해석하기보다 차분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불안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완벽히 준비된 시작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이 책과 함께 불안한 상태 그대로 다음 장면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그 감정까지 포함해 나를 이루는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박기호 패션 에디터

김동식 <회색 인간> 요다, 2017

억지로 읽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까,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다. 평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빌 브라이슨, 혹은 제이디 스미스처럼 묘사가 탁월하거나 유머러스하거나 담담해서 더 세련되고 섹시하거나, 어쨌거나 문장력이 훌륭한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중 어느 쪽도 아니다.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 출신으로, 단 한 번도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워본 적 없는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 공포 게시판에 연재하던 글을 엮어낸 단편집. 문장은 우아하기보단 둔탁한 편이고, ‘세상이 멸망한 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성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만화와 SF 장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익숙한 배경이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놀랍도록 참신한 부분이 분명하다. 철저하게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책이다. 단편 중에서도 특히 짧은 24개 이야기를 파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쉽게 끝냈다. 순수하게 재미있다. 영화 보듯 술술 읽힌다. 권민지 디지털 디렉터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열린책들, 2001

‘벽돌책’ 읽기 중이다. 책 선정 기준은 하나, 두껍되 한 권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이 책은 SF와 로맨스가 뒤섞인 추리소설에 가깝다. 수없이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과 인용구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700쪽을 가뿐히 읽을 정도로 유쾌하다. 지하철 안에서 몰입하다 하차 역을 지나칠 수 있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김다혜 패션 에디터

이상 <이상 선집> 더스토리, 2025 / 1949년 백양당에서 발행된 오리지널 초판본의 디자인을 차용한 미니북

‘매일 독서 1시간’은 올해 세운 목표 중 하나지만 달성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 시간과 장소는 자연광으로 꽉 채워진 고요한 오전의 우리 집이지만 이른 저녁 산책 후 생맥주와 함께 하는 독서도 꽤 매력 있다. 아름다운 이 계절, 문득 몇 년 전 출장 가는 길에 공항 서점에서 사 읽었던 이상 소설집이 생각나 산책길에 다시 꺼내 들었다. 이상의 글은 우울한 울림이 있다. 손은영 패션 디렉터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2002

나는 가끔 지나치게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한다. 돌이켜보면, 나를 괴롭히는 고민의 대부분은 과거에 대한 반추와 미래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다. 이번 봄에는 더 유연하게 살고 싶다. 현재에 집중하며, 흐르듯 살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다. 조영경 디지털 에디터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페이지2북스, 2024

사랑에는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요즘의 나는 그중에서도 ‘잘 자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장 크게 믿는다. 누군가가 오늘 밤, 아무 일 없이 푹 자는 것. 그리고 내일 아침, 조금 덜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뜨는 것. 그 단순한 바람이야말로 어른이 된 후에야 겨우 이해하게 된 사랑의 형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유난히 다정한 방식으로 내게 도착했다. 오랜 친구가 “너 좀 편히 자야 할 것 같아서”라며 건넨 한 권. “우린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해”라는 책 속 문장을 함께 남겼다. 지금은 아직 책장 한쪽에 조용히 기대어 있지만, 이번 마감이 끝나면 가장 먼저 펼쳐볼 생각이다. 그 문장을 다시, 조금 느린 속도로 읽어보면서. 오늘 밤은 누군가의 마음 덕분에, 조금 더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전수연 뷰티 에디터

박완서 <나목> 세계사, 1970

지난달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과 인터뷰하며,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길,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성경이나 불경처럼 원형적인 것은 아닐지 짐작했다. 그리고 끝내 <나목>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알 것 같으나 정작 또렷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드문 서른 후반, 나는 균열을 기다린다. 나와 멀지 않은 나이에 첫 작품 <나목>을 쓰던 박완서 선생도 그랬을까. 메마른 고목이 아니라 새순을 품은 나목이기를 바라며. 유승현 컨트리뷰팅 에디터

그렉 브레이든 <디바인 매트릭스, 느낌이 현실이 된다> 김영사, 2021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는 끌어당김의 법칙. 다소 비현실적인 망상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난 이 이론을 믿는다. 현재도 꾸준히 끌어당기는 것이 있는데, 굳이 지금 밝히지 않아도 곧 모두 알게 될 거다. 지금은 상상뿐일지언정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신서영 뷰티 에디터

JACK KEROUAC <ON THE ROAD> PENGUIN RANDOM HOUSE, 2002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예술을 사랑한다. <길 위에서>는 비트 세대의 선구자 잭 케루악이 2주 넘게 집에 틀어박혀, 약물에 잔뜩 취한 채 쉼 없이 써 내려간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는 횡설수설로 가득한 여행기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어떤 내러티브도 없이, 치기로 무장한 채 미국 전역을 유랑한 시절을 마음 가는 대로 기록해놓은 그의 글은 심장을 뛰게 만드는 동시에 묘한 위안을 남긴다. 안건호 웹 에디터

하솔휘

하솔휘

웹 에디터

2025년 4월 <보그>에서 시작했습니다. 패션 감각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글을 씁니다. 많이 듣고, 다니고, 읽고,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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