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의 작은 교토, 일본 소도시 ‘히타’

후쿠오카 여행 패키지 중에는 ‘히타’라는 소도시에 들렀다가 유후인이나 벳푸로 향하는 일정이 꽤 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나 후쿠오카에 머무는 내내 낯선 지명에 자꾸 마음이 끌려 결국 히타 당일치기를 계획하게 되었다. 아무런 기대도 정보도 없이 도착한 도시는 소박하고 자그마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이 옛 일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했다. 해 질 무렵까지 산책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작은 간장 가게, 조용한 카페, 그리고 너무나 맛있는 히쓰마부시까지.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았다.

히타는 후쿠오카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쯤 떨어진 곳에 있다. 복잡한 도시와는 거리가 먼, 낮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히타. 도시보다 ‘마을’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히타를 수식하는 말이 꽤 많은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규슈의 작은 교토’, ‘간장 마을’ 같은 별명이다. 교토에 가본 적이 있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건만, 히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풍경을 품고 있었다.

골목마다 오래된 건물들이 숨어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 마메다마치(豆田町)가 아마 그 별명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길 양옆으로 길게 줄지어 선 가옥들은 오래된 나무 창살과 하얗게 칠한 흙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지은 건물들이 지금은 상점과 창고로 쓰인다. 과거 한복판에 슬며시 섞여든 현대의 풍경. 구석구석 자리 잡은 옛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어쩐지 옛날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 도시만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마메다마치는 히타의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무턱대고 걷다가 우연히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 일행을 만났다. “저쪽으로 가면 유명한 간장 가게가 있어요”라는 가이드의 말을 엿듣고,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타는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해 사케와 간장이 맛있다고 한다. 천황에게 진상할 만큼 깊은 맛과 역사를 자랑한다는데, 그게 무려 170년이라고. 문 닫기 직전인 간장 가게로 후다닥 들어섰다. 일본 특유의 친절한 응대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간장을 맛보고, 결국 구매까지 이르렀다. 분명한 건 한국 간장과는 다른 감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무척 매혹적이라는 것. 어떤 요리에나 잘 어울릴 만능 간장이 있는가 하면, 생선이나 고기에 곁들이기 좋은 것도 있었다. 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정도밖에 모르는 요리 문외한에게는 하나같이 신박한 상품이었다.

가게 주인이 식당을 추천해준다. 간장이 유명한 마을이니 꼭 간장 요리를 먹고 가라면서. 워낙 작은 마을이라 오후 5시 전에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데, 다행히 그곳은 열려 있었다. 가게 이름은 ‘센야(千屋)’. 들어설 때만 해도 손님은 겨우 두 테이블뿐이었지만, 알고 보니 늘 대기 줄이 있을 만큼 인기 높은 식당이었다. 대표 요리는 장어덮밥 ‘히쓰마부시’. 하얀 쌀밥에 간장 양념을 입힌 장어를 가득 덮어서 내온다. 먹는 방법은 세 가지. 밥과 장어 먹기, 유자 후추 양념 곁들여 먹기, 그리고 마지막엔 녹차를 부어 오차즈케로 먹기. 셋 중 가장 맛있는 건 묘하게도 오차즈케였다. 시원한 녹찻물에 밥을 말고 장어 한 점을 얹어 먹으니 입안 가득 풍미가 번졌다. 먹는 내내 음식이 줄어드는 게 아깝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3,000엔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비싸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사이즈로 주문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녹찻물에 장어가 비릴 것 같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감칠맛이 상당했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히타에 머문 시간은 겨우 4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 조용한 마을에서의 산책,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보낸 여유로운 티타임이 인상적이었다. 카페 사장님은 색종이로 개구리를 접어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간장 가게에 들렀다가 나도 모르게 두 병을 손에 쥐고, 알고 보니 이름난 식당에서 인생 최고의 장어덮밥을 맛보기도 하고. 우연한 순간이 모이면 풍요로운 여행이 된다. 얼마나 많이 보고 경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여행 중 충동적인 계획이 더없이 소중하다.
- 포토
- 엄지희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