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낭만이 머무는 곳, 남인도 코치

2026.06.05

대항해시대의 낭만이 머무는 곳, 남인도 코치

울지 마라. 힘드니까 사람이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해서 아시아로 떠났다. 인도 코치에서 인생의 지정 생존자가 되다.

대항해시대의 낭만, 인도 코치

인도 북부에 자리한 리시케시에서 한 달간 요가를 수련하며 매일 인도철학과 역사 수업을 들어야 했다. 덕분에 그들의 사상과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활력과 자유분방함 또한 내겐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만 스무 번 다녀온 친구는 남인도는 더 여유로운 분위기라며 또 한 번 여행을 부추겼다. 그렇게 인도 남서부 케랄라주 코치(Kochi)로 떠났다. 한국에서는 직항 노선이 없어 싱가포르에서 경유했다. 부킹닷컴(booking.com)은 종종 급부상하는 여행지를 발표하는데 전 세계 여행객의 코치 검색량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으며, APEC 및 글로벌 상위 10대 목적지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인 이국적 풍경에, 그 시절 저택이나 창고를 개조한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다는 점이 기대를 높였다. 방문 당시는 인도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인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Kochi-Muziris Biennale)가 열리기도 했다.

내가 선택한 호텔은 코치의 윌링던섬에 자리해 고즈넉한 수로를 보며 아침을 먹을 수 있는 타지 말라바 리조트 & 스파(Taj Malabar Resort & Spa)다. 도착하자 전통 무언극 카타칼리(Kathakali)로 환영 인사가 시작됐다. 천연색소로 과장되게 분장한 남성들이 눈동자와 표정, 손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극이다. 중국의 경극 혹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과 비슷했다.

15세기경 코치에 유입된 중국식 어망의 움직임이 현대미술품 같았다. 대나무에 거대한 그물을 매달고 무거운 돌을 이용해 올리는 식이다.

저녁은 이곳만의 전통식을 먹고 싶어 케랄라 사디아(Kerala Sadya)를 주문했다. 주로 축제나 결혼식 같은 특별한 행사에 먹는, 전통 채식 정찬이다. 갖가지 채소와 소스, 밥이 들어 있는 그릇을 서버들이 줄지어 들고 나온다. A3 사이즈만 한 바나나잎에 보통 20~30가지 요리를 조금씩 올려 먹는다. 토마토와 후추 등으로 만든 맑은 국 라삼(Rasam), 묽은 요구르트 격인 모루(Moru) 등을 설명을 들으며 하나씩 맛보았다. 매번 느끼지만 인도는 채식주의자들이 여행하기 편한 나라다.

다음 날엔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를 둘러봤다. 코치에서도 문화유산과 예술적 분위기가 집약된 구시가지 포트 코치(Fort Kochi)의 폐공장, 향신료 창고, 식민지 시절 저택 등에 작품을 전시하며, 주로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작가를 대변한다. 관계자에게 왜 비엔날레에 무지리스라는 이름이 함께 들어가는지 물었다. 무지리스(Muziris)는 고대 로마, 그리스, 이집트 상인들이 후추 같은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찾아가던 코치 인근의 무역항이었다. 대홍수가 나면서 코치 지역이 아라비아해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한다. 그 역사를 비엔날레의 이름으로 다시 가져온 것이다. 대항해시대를 상상할 때면 두근거리는데, <신밧드의 모험>을 비롯해 <천일 야화>를 읽으면서 어릴 때부터 느낀 설렘이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런 모험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국적인 여행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구시가지인 포트 코치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인 건축물이 이국적인 풍경을, 곳곳의 수로가 정취를 자아낸다.

코치에서는 포트 코치를 중심으로 관광한다. 이곳은 인도의 작은 유럽으로 불린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에 지배당한 시절이 남긴 문화유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 최초의 유럽식 교회인 성 프란치스코 교회다.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이후 포르투갈로 이장했다.) 그는 아랍을 거치지 않는 유럽과 인도의 향신료 수출입 항로를 개척한 이다. 그 모험의 여정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뛴다.

교회에서 나와 18세기 향신료를 보관하던 창고를 개조한 페퍼 하우스 카페(Pepper House Cafe)에서 남인도식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듣던 대로 묵직하면서 고소하다. 카페 정원에서 아라비아해로 향하는 수로가 보인다. 어딜 가든 마주하는 수로 때문인지 코치는 ‘정취’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지역이다. 대항해시대부터 여러 수로를 통해 향신료를 실은 선박이 내륙에서 항구로 물자를 날랐고, 현재도 주민들의 출퇴근길이다.

포르투갈인이 세우고 네덜란드인이 개보수한 마탄체리 궁전(Mattancherry Palace) 옆에는 유대인 거리(Jew Town)가 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은 뛰어난 상술로 향신료 무역을 주도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많이 떠나고 현재는 소수만 남았지만,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하다. 유대교 회당인 파라데시 시나고그(Paradesi Synagogue)는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8세기 중국에서 들여온 핸드 페인팅의 푸른색 타일, 벨기에산 크리스털 샹들리에 등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폭염에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와중에도 말이다. 회당을 나오면 골동품 숍이 즐비하다. 목가구와 조각상 등이 넘치지만 자신이 없어 흥정을 하지 못했다. 요즘 서울 답십리 일대가 골동품을 구입하려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나도 안목을 기르고 싶다. 골동품 대신 근처에 자리한 향신료 골목에서 주민이 만들던 천연 인센스와 향수를 몇 개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인센스에 불을 붙이자 이국적인 향기가 방 안 가득 번지고 연기는 창문 너머 수로로 날아갔다.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바라본 푸른 타일의 그림과 폐공장을 채운 비엔날레 작품의 기억도 수로의 물처럼 흘러갔다. 코치 여행은 대항해시대 같은 모험은 없었지만 그 물결만큼 평안했다. VL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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