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와 블루 너머의 아동복, 자라와 카라멜이 만든 새로운 미학
아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카라멜의 디렉터 에바 카라이아니스(Eva Karayiannis)가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와 만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하는 옷에 대한 그의 다정한 답변.

어릴 때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 기억하나요?(웃음)
저는 취향이 꽤 분명한 아이였어요. 어머니도 제가 뭘 입고 싶고 입기 싫은지 의견이 아주 확고했던 아이라고 자주 얘기하시는데요.(웃음) 돌이켜보면 다소 점잖은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코듀로이나 니트 소재 아이템, 유럽풍의 클래식한 옷을 즐겨 입었어요. 지나치게 프릴이 많은 옷은 싫어했고요. 더플 코트와 트위드 케이프, 흰색 부츠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걸 한꺼번에 입지는 않았어요!(웃음)
법을 전공한 패션 디자이너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법학적 사고방식이 컬렉션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법학은 규율, 구조, 정확성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패션은 겉으로 보기엔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영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함이 아주 많이 필요한 영역이죠. 비율, 균형, 구조, 실용성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수학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사물을 더 면밀하게 분석하는 방식도 법학을 공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거예요.
‘카라멜(Caramel)’은 어떻게 시작된 브랜드인가요?
사실 저는 아테네에서 법학을 공부해 패션이란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소더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그 과정에서 창의적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이 세계를 탐험해보라고 격려한 게 ‘카라멜’ 론칭으로 이어졌어요. 당시 아동복 시장은 너무 획일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지나치게 기능성만 강조됐죠. 그래서 좀 더 사려 깊고 세련된 뭔가를 만들 여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현대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아동복을 만들고 싶다는 본능에서 시작된 브랜드예요.
“뻔한 핑크나 블루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여긴 브랜드 설립 초기의 구체적인 기억이 궁금해요.
사실 핑크와 블루는 당시 아동복 시장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카라멜은 여러 고정관념과 규칙을 깨는 브랜드였다고 생각해요. 아동복에 캐시미어를 사용했으며, 세련된 방식으로 리버티 프린트를 적용하고, 또 드롭 숄더 실루엣의 해리스 트위드 코트도 선보였죠.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영국 감성을 담은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지금도 아동복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컬러 팔레트와 텍스처를 보여주는데요, 소재와 컬러 선정 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저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색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소재의 촉감에 아주 민감해요. 아이들은 옷을 촉감으로 먼저 경험하니까 편안하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러운 소재를 골라요. 모든 원단을 직접 만져보며 결정하고, 구조적인 형태를 가진 옷이라도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으면 합니다. 바닥에 앉고, 뛰고, 음식을 흘리고, 차 안에서 잠들기도 하는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도록 옷을 편안하게 느끼는지 직접 입혀보고요.
“아이들의 개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인상적이에요. 옷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요?
아이들을 어른들의 미적 취향이나 기대를 투영하는 대상처럼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옷 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신체적으로는 물론이고 감정적으로도 그래야 해요. 그래서 옷이 아이들의 개성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때론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옷을 입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기도 해요. 양말을 짝짝이로 신거나 어울리지 않는 색을 섞어 입거나 옷을 거꾸로 입는 것처럼요. 그런 모습엔 솔직함이 담겨 있잖아요. 그리고 가장 사랑스러운 스타일링은 의외로 우연히 탄생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1999년 런던의 식탁에서 시작된 작은 브랜드가 오늘날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지키고 싶었던 ‘카라멜만의 가치’는 뭔가요?‘자유’죠. 트렌드를 지나치게 따르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자유 말이에요. 저는 카라멜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따르는 브랜드가 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적인 정신을 잃는 순간 브랜드의 영혼도 사라지는 법이죠. 지금도 저는 모든 컬렉션에 직관적으로 접근합니다. 작업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거든요.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와의 협업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요?
저는 늘 더 많은 이들이 카라멜의 옷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자라와의 협업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방법이었죠. 게다가 영화, 사진, 이미지 메이킹 분야의 뛰어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창의적으로 큰 영감을 줬어요. 훨씬 더 폭넓은 고객층과 만날 수 있으면서도 창작의 자유와 신뢰를 충분히 보장받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잖아요. 저에게는 꿈같은 프로젝트였어요. 런던 스튜디오에서 세심하게 디자인한 제품이 전 세계 수많은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다니, 민주적이면서도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죠.
소재 선정부터 비주얼 디렉션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죠.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뭔가요?
천연 소재, 아름다운 실루엣, 세심한 구조 설계를 통해 가능한 한 장인 정신의 많은 요소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컬렉션이 진정으로 카라멜답게 느껴지는 것이었어요. 색감과 분위기, 특유의 부드러움까지요.
이번에 아동복뿐 아니라 여성복 캡슐까지 확장했죠.
카라멜과 함께 성장한 여성 고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자신의 아이들에게 카라멜을 입혔던 분들이 이젠 자신을 위해 같은 감성을 경험하고 싶어 하더군요. 전략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매우 자연스러운 확장이죠.
이번 컬렉션을 통해 카라멜을 처음 접하는 고객에게 ‘카라멜다운 것’을 딱 한 가지로 정의해준다면 무엇일까요?
‘조용한 완벽함(Quiet Perfection)’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순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것이죠. 카라멜은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강한 브랜드입니다. 저는 언제나 모든 디자인을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완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트렌드를 넘어 ‘오래도록 가치 있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소재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요? 어떤 옷을 ‘오래도록 가치 있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여기는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지속 가능성은 창의성에서 시작됩니다. 제품은 시간의 가치를 획득해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더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제품은 오래 간직하고, 물려주고, 수선해서 다른 누군가가 다시 입게 돼요. 지금도 여러 어머니들이 한 가정에서 여러 아이가 입었던 카라멜 옷을 보여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큰 감동을 받습니다. 타임리스한 옷은 대개 매우 단순합니다. 좋은 소재, 아름다운 비율, 정직한 제작 방식.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옷이죠.
이번 컬렉션을 입고 뛰어놀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이 남기를 바라나요?
아주 평범한 추억이면 충분해요. 정원에서 뛰어놀고, 휴가를 보내고, 생일을 맞이하고, 부엌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그런 순간들이요. 아동복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에게 추억의 일부가 된다는 데 있거든요.
- 이미지
- 자라(Z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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