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너블한 아트 페어

끊임없이 아트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 패션 하우스의 새로운 무대는 바로 아트 페어. 덕분에 깐깐하고 보수적인 아트 페어에도 젊고 패셔너블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매년 6월과 12월이면 미술 애호가들의 마음은 스위스의 바젤과 마이애미로 향한다. 세계적인 갤러리스트로 구성된 아트 바젤과 마이애미는 미술 시장의 현재를 점검하는 바로미터. 나흘로 요약되는 페어에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모여 작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전 세계 수집가들과 딜러들로 북적이는 최고급 파티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마이애미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 1년 내내 서핑과 요트, 클럽 파티가 끊이지 않는 플로리다 남부의 해변 도시로 ‘패션’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있으니까.

2008년부터 해마다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참여해온 펜디는 마리아 퍼게이의 설치 작업과 함께 올해 행사에 참여했다. 모피를 활용한 가구 작품을 거울로 꾸민 몽환적인 공간에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마리아 퍼게이 특유의 상상력이 반영된 작품은 패션과 아트를 동시에 사랑하는 관람객들을 충분히 매혹시켰다. “펜디의 아트 프로젝트는 신인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의미에서 시작했습니다”라고 펜디 하우스는 전한다. “그런 뒤 마이애미로 이어지고 있죠. 아티스트는 매번 바뀌는데, 가죽과 모피 등 펜디 DNA가 담긴 소재를 사용하는 건 변함없습니다.”

예술에 관해 누구보다 일가견 있는 루이 비통 하우스는 마이애미 비치에 그야말로 집채만 한 작품을 마련했다. 1920~60년대 활동했던 건축가 샬롯 페리앙이 스케치로 남겼던 ‘물가 의 집’의 휴양지 컨셉을 구체화시킨 것. “샬롯 페리앙은 20세기 모더니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녀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자 기획했습니다.” 아울러 루이 비통 하우스는 페리앙을 향해 경외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카시나와 합작으로 그 유명한 LC4 체어의 헌정 에디션을 두 번째 프로젝트로 공개했다.

한편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은 디자인 디스트릭트 매장에서 아티스트 카멜로 테데스키(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주얼리 ‘라인O’의 크리에이터)의 조각을 전시했다. 수공예로 완성된 가죽 조각은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로카이유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마이애미의 유명한 아르데코 양식의 버너큘러 건축물과 비슷한 느낌.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도 아트 페어를 적절히 이용했다. <토일렛 페이퍼> 매거진과 협업한 올봄 광고 비주얼을 페어 기간 동안 공개한 것. 마이애미 푸른 상공에 광고 비주얼을 입힌 경비행기를 띄우고 버스를 운행하는가 하면, 광고 이미지가 프린트된 비치 타월을 해변에 전시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이애미 해변에 딱 어울리는 기획!



패셔너블한 영감으로 가득한 아트 이벤트에 마르지엘라 하우스가 빠지면 섭섭하다.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한 주얼리 컬렉션 ‘크리스털 락타이트’를 론칭하기 위해 프랑스 아티스트 밥티스트 드봉버그의 작품 ‘스토커(Stalker)’를 주얼리와 함께 전시했다. 그 밖에도 가구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와 슈즈 브랜드 벨루티의 콜라보레이션 전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아티스트 도쿠진 요시오카 작품과 건축가 다니엘 위드리그의 3D 프린트 주얼리 전시, 갭의 오노 요코가 디자인한 티셔츠 컬렉션, 아트 바젤 기간 동안 진행된 패션 매장 ‘알케미스트’ 와 협업으로 마련한 꼴레뜨의 팝업 스토어, 그리고 비오네를 위한 팀 워커의 필름 상영 등등.

“마이애미에서 패션과 아트 콜라보레이션이 전에 없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아트 컬렉터들과의 네트워킹이 더욱 쉬워졌죠.” 예술 전문가들은 마이애미가 패션계 사람들에게 기회의 도시라고 말한다. 마이애미의 슈즈 디자이너 델 토로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아트 페어 기간 동안 좀 ‘스페셜’하다 싶은 이벤트는 대부분 패션 브랜드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마이애미 페어가 패션 축제 같은 느낌도 들죠. 조만간 마이애미가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아트 시장의 ‘핫 스폿’이 될 겁니다.”

한편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의 설립자 겸 디렉터인 아만다 샤프는 요즘의 모던 아트 페어가 의미심장한 ‘크로스오버’ 과정을 겪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녀는 처음으로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디자이너를 아트 페어에 참가시킨 주인공이다. “‘프리즈’와 맥퀸의 인연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속됐어요. 패션과 아트 커뮤니티는 많이 다르지만, 아트 컬렉터 중엔 패션 브랜드의 잠정적 고객이 될 만한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비엔날레와 달리 아트 바젤이나 아트 바젤 마이애미는 꽤 상업적입니다. 다시 말해 판매가 목적이죠. 미술 경기가 한창 좋을 땐 주류나 담배 회사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아티스트와 함께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좀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선 나쁠게 없죠.” 한국의 어느 딜러는 아트 페어를 통한 패션계의 활동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와 만든 루이 비통 에디션처럼 재미있고 실험적인 패션 아이템이 많이 등장했으면 합니다. 패션이 아티스트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고 기회가 될 테니까요.” 게다가 한겨울에도 따뜻한 마이애미에선 아트와 디자인이 균형을 이룬 쇼핑도 가능하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수집가들과 패션 피플까지. <뉴욕타임스>가 지칭한 ‘fifth fashion week’란 타이틀처럼, 이제 마이애미가 패션 도시로 등극하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