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우리 맥주가 달라졌어요!

2016.03.17

by VOGUE

    우리 맥주가 달라졌어요!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굴욕에 시달리던 우리나라 맥주 맛이 달라졌다.
    하이트진로에 이어 오비맥주에서도 제대로 깊고 진한 에일(ale) 맥주를 출시한 것!
    건국 이래 이토록 생경한 맥주 맛의 전쟁은 없었다.

    2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솔직하게 혹평했다. 이전부터 맛없고 싱겁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받아왔건만,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며(가령 홍콩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블루 걸’은 오비맥주가 생산한다는 식으로) 애써 국내 주당들의 볼멘소리를 모른 체하던 맥주 그룹들도 얼굴을 붉혔던 걸까? 지난해 가을 하이트진로에서 영국식 에일 맥주 퀸즈에일(Queen’s Ale)을 선보여 편의점 품귀 현상까지 빚더니, 올봄 대한민국 맥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오비맥주에서도 에일스톤(Alestone)을 출시해 맞불을 놓았다. 이 낯선 에일 맥주는 4월 세상에 나오자마자 일주일 남짓 35만 병을 팔아 치웠다. 조만간 신세계에서도 프리미엄 에일 맥주를 선보인다니, 그야말로 건국 이래 이토록 생경한 맥주 맛의 전쟁은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마셔온 대한민국 맥주는 모두 라거(lager)였다. 몇몇 애호가를 제외하고, 우리는 맥주 맛도 몰랐던 셈이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에일과 라거, 램빅(lambic)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집트 벽화에서도 볼 수 있는 전통 방식 에일 맥주는 실내 온도와 비슷한 18~25℃에서 짧은 시간 발효시켜 제조한다. 19세기 기계 문명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간 라거는 7~15℃ 저온에서 장시간 숙성시켜 대량 생산하며,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는 램빅은 자연 발효 맥주다.

    발효 시 위에 떠오르는 효모로 만들어 상면(上面)발효맥주라 불리기도 하는 에일 맥주의 대표 주자는 영국의 존스미스, 아일랜드의 기네스, 벨기에의 호가든. 눈치챘겠지만 깊은 맛과 진한 향이 특징이다. 세계 맥주의 30%를 차지하는데, 그동안 한국산 에일 맥주 브랜드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은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획일적이고 안일한 국내 주류 업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일면이었다(2012년에야 중소 맥주 생산 업체 세븐브로이에서 에일 캔 맥주를 선보였으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탓에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라거는 하면(下面)발효맥주로 에일 맥주보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체코 필스너를 필두로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 월드와이드 맥주 브랜드가 라거에 집중하면서 현대 맥주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가볍게 갈증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들이키는 우리나라 소비 패턴을 보자면, 청량감이 두드러지는 라거가 대세 맥주에서 밀려날 리는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쓴맛이 더한 에일 맥주는 진득하게 음미해야 제격이므로, 서둘러 주거니 받거니 하는 우리네 술 권하는 사회 풍속도와 어울리지 않는 것. 하지만 믹스커피가 창궐하던 시절 무설탕 아메리카노의 쌉싸래한 맛이 만인의 혀끝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에일 맥주의 묵직한 맛과 향이 견고한 트렌드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대한민국 다수는 이미 전 세계를 두루 섭렵하며 세련된 영국식 에일 맥주의 진면목을 확인해왔고, 이마트만 가도 골라 담기 힘들 만큼 다양한 세계 맥주 전시장을 목격하며 천편일률적인 국내 시장의 라거 맥주 라인업에 질리지 않았던가. 이때를 놓칠세라 하이트진로는 라거와 확연히 다른 맛과 향으로 무장한 에일 맥주 퀸즈에일 브론즈와 보다 쓴맛을 내는 퀸즈에일 엑스트라 비터로 차별화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세계 3대 주류 품평회라 일컬어지는 브뤼셀의 2014년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에일 맥주 부문 금상까지 받아냈다. 후발 주자로 나서며 기꺼이 가격을 더 낮춘 오비맥주는 알코올 도수를 달리해 에일스톤 브라운 에일(5.2도)과 에일스톤 블랙 에일(5.0도)을 선보이며 역시 흡족한 성과를 내달리는 중이다.

    도수 낮춘 술의 강세와 함께 신선한 맥주 맛을 고르려는 열망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자유무역협정(FTA) 영향으로 몸값 낮춘 수입 맥주는 지구 곳곳 마트와 편의점마다 그득하다. 이제 밍밍한 국산 맥주로 목 축이는 것에 만족하겠는가? 남의 맛도 모르고! 30년 넘게 오로지 라거에 기대어온 대한민국 맥주 종가들이 이제라도 새로운 맛을 구현해냈다는 건 주당이 아니라도 춤출 만한 일이다. 그것이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처럼 맥주가 폭발적으로 판매되는 시즌을 겨냥한 일시적 출사표라 할지라도 말이다. 참고로 에일 맥주는 냉장고에서 꺼내 차갑게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 상온에 5~10분 두었다가 천천히 들이켰을 때 움츠렸던 제맛과 향이 살아난다.

      에디터
      글 / 정명효(자유기고가), 피처 에디터 / 이미혜
      포토그래퍼
      KANG TAE HOON
      스탭
      스타일링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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